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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가는 중입니다.

나는 아픈 아이였고, 아픈 어른이 되어버렸다.

by 라온


나는 어릴 때부터 ‘정상이 아닌 몸’으로 살아왔다.


눈앞이 빙빙 돌고,

귀가 먹먹해지고,

세상이 기울어지는 감각.


크게 겉으로 드러나는 병은 아니었던지라

사람들은 그저

'허약하게 태어난아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몸은 오래전부터

이상신호를 꾸준히 보내고 있었다.


그 신호에 이름이 붙은 건 한참이 지나서였다.


메니에르병.
귀 속의 평형기관에 이상이 생겨 일어나는

희귀병이라고 했다.
호전은 가능하지만, 완치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 병과 함께,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덮쳤다.

당연한 수순들이었다.


친구들과 가족들 앞에선 늘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감정의 깊이를 감당하지 못해

무너질 것 같던 날들이 속절없이 나를 괴롭혔다.


혼자가 되면 소리없이 울고,

스스로에게 돌을 던졌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꼭 아프게 태어난 내 잘못인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인 내가 너무너무 안쓰러우면서,

아이러니 하게도 너무너무 좋았다.

더이상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그 모든걸 감당해야 했던 나이,

고작 열일곱살 이었다.


몸도 마음도 고장난 어린아이는

그대로 어른이 되어 버렸다.

아픈 아이에서 더 아픈 어른이.


스무살무렵,

간호조무사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건강을 돌보며
“나도 괜찮아지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내 병은 그곳에서 더 악화됐다.
몸은 지쳤고, 마음은 닳았다.
아픈 걸 숨긴 채 출근하고,
출근을 마친 후엔 하루를 견딘 나에게 눈물이 났다.


그렇게 나는,

살아있는 것과 살아가는 것 사이 어딘가에서
꾸역꾸역 버티고 있었다.


그러다 서른.
요가를 만났고, 운동을 시작했다.


시작은 단순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도구였고,
그저 내 병을 어떻게든 이겨보려는

마지막 발악 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매트 위에서 나는 처음으로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그 짧은 순간 속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가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때쯤 문득 깨닫게 되는것이 있었다.


나는 여지껏

나자신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는 것을.

그저 이기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싸워서 이길게 아니라,

병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갔어야 했다.


그리고 오늘,

오래도록 묵혀놓았던 이야기를 꺼내 본다.
말하지 못했던 그 시간들,
아무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그 기억들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에게도

감히 말하고 싶다.

완벽해지려는 마음 대신

하루하루 무사히 지나온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우리는 그렇게,
아직도 살아내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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