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처럼 살지 못한다는 죄책감
내 세상은 늘 시끄러웠다. 겉도, 속도.
칠판을 긁어 대는 것 같은 이명 소리. 아무리 크게 틀어도 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은 TV볼륨. 손등으로 벅벅 문질러도 뿌옇게만 보이는 눈앞. 연체동물이라도 된 듯 흐느적거리는 다리.
이건 실질적인 '병'에서 오는 증상 외에, 매일 나를 괴롭혔던 것들이다.
내 몸의 상태를 인지했을 때. 나는 내가 겪어 온 모든 것을, 남들도 다 겪는 일인 줄 알았다. 그랬기 때문에. 너무 당연하게도, 그 당연하지 않은 상황들을 버티고 버티고 또 버티며 살아야 했다. 남들도 잘 참으며 사는데, 나 혼자 유난 떠는 거라고 자책도 하면서. 그렇게, ‘내가 이상한 건 아닐까’ 하고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정말로 노력했다.
내가 아팠던 게 당연한 일이 아니듯이, 내가 이토록 피 토하며 노력해서 '평범'에 가까워진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이를 악물고 더 노력했으니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언정, 정말로 그저 딱 남들처럼만 살고 싶은 마음 하나로 최선을 다 해 한 발짝 내디뎠다.
그 첫발이 두 번째 사회생활. 직장을 갖는 것이었다. 솔직히 그럴 수 있는 몸도 멘털도 안되었기 때문에, 다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될 거라고만 반복해서 말했다.
일단은 건강 해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건강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생산적인 활동은 가능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런 이유로, 스무 해를 살아 낸 어느 날. 난생처음으로 운동할 마음이 생겼더랬다. 걷고, 쓰러지고, 실려가고. 무한 도돌이표였지만, 또 나갔다. 저러다 말겠지. 엄마의 차가운 눈총이 이 따랐으나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내가 무얼 한들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사람이니까.
근육이 자리 잡혀 가는지. 다리에 힘이 좀 붙은 기분이었다. 기분 탓인가, 싶기도 했지만 썩 나쁘지 않은 몸 상태였다. 나는 곧바로, 이력서를 썼다. 더 늦기 전에 가족들 비롯,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당시에는 인터넷으로 이력서를 내는 형식의 지원이 아니었다.
"여보세요? ㅇㅇ보고 연락 드리는데요, 사람 구하셨나요?"
전화를 하고. 이력서 종이에 나름대로의 내용을 적어 넣어, 직접 가져가야 했다. 내 성격에, 저 멘트를 하는데 까지도 전화기를 몇 번을 들었다 놨다 했는지 모르겠다. 겨우겨우 전화를 몇 군데 돌려, 이력서를 챙기고는 면접 투어를 다녔다.
1. 숫기 없어 보임.
2. 허여멀 건한 게 허약 해 보임.
3. 눈치도, 센스도 없어 보임.
4. 일 머리도 없어 보임.
5. 그런 첫인상을 가진,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대학생.
지금 생각해 보면, 나 같아도 직장 오너라면 채용할 거 같지 않은 조건(?)들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어릴 땐 몰랐는데, 내가 노력해야 했던 건 '건강'만이 아니었던 거다.
최대한 용기를 끌어 모아 도전한 '면접'이란 난제에서, 이 또한 당연하게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꽤 여러 번.
의기소침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알게 되었다.
"나 꽤나 근성 있잖아?"
하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그런 날들도 익숙해지려던 찰나. 10여 군데 면접 중 마지막으로 문을 연 작은 한의원 원장님의 다정한 말투를 끝으로, 내 면접투어는 끝이 났다.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정상'의 기준이 뭘까.
“정상적인 학생이라면...”
“정상적인 사회인이라면...”
“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는 안 해.”
사람들이 너무 쉽게 말하는 그 기준 앞에서, 나는 언제나 ‘벗어난 존재’였고, 그 '벗어남'은 내 삶 전체에 죄책감을 뿌렸다. 숨 쉬는 것조차 잘못인 듯 느껴졌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 내 몸을, 감정을, 행동을 자꾸만 조정해야 했으니 말이다.
말했듯이. 아픈 건 죄가 아니지만, 직장에서 아픈 건 죄가 된다.
그날도 어김없이, 호전되었다고 생각한 '그놈'이 찾아왔다.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는 또 선배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한 채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중얼중얼 읊어대는 게 어느새 당연해질 정도로.
그럴 때마다 머릿속을 강타하는 '나쁜 마음'이 욕지기를 뱉는다.
‘왜 나는 항상 죄인이 되어야 하지?’
내가 세운 견고할 줄 알았던 벽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걸 느꼈다. 그리고 3주. 딱 3주 만에, 원장님이 호출했고, 날 채용했던 그 다정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던졌다.
"내일부터는 안 나와도 돼."
함께 일하던 선배가, 나와 일하는 게 많이 힘들다고 말했다 한다. 꽤 영향력이 컸던 그 직원의 고자질 아닌 고자질로, 그날이 마지막 출근이 되었다.
버스 타고 돌아오는 내내 엉엉 울었다.
난 역시 안되나 보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게 모두 맞나 보다. 나 따위가... 머릿속이 엉망진창인 생각들로 꼬였고, 그 스트레스로 또 어지럼증이 도졌다. 그렇게 사람 시선을 싫어하던 내가,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 퇴근길 버스 안에서 하염없이 울어댔다. 억울하고. 분하고. 짜증 나서.
내 손에는 60만 원 남짓 되는 돈이 넣어진, 봉투 하나가 꼭 쥐어져 있었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누군가는 쉽게 건너가는 징검다리가, 누군가에겐 간신히 건너야 하는 심연이 되기도 한다. 또 누군가에겐 하찮은 3주가, 누군가에겐 목숨 걸고 버틴 시간일 수도 있는 거다.
그래서 나는 그날의 내가 참으로 안쓰럽고, 너무나 대견하다.
그날 울면서 돌아오던 스무 살의 내가, 그저 약한 아이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 울음마저도, 살아내기 위한 최후의 힘이었다는 것을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