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움직인 원동력
나는 '메니에르 증후군'이라는 선천적인 희귀병이 있다.
보통은, 살아가면서. 어른이 된 이후에 주로 발병한다고 했지만, 나 같은 경우는 4살 즈음 처음 증상이 발견되었었다. 의사는 의아해했고, 특이한 케이스라고 했다. 완치되는 병이 아니거니와, '스트레스'가 주요 발병 원인이라 평생 관리 하라는 임무까지 주어 졌다.
그러나.
내 환경. 가족. 학교생활. 그 어디에서도 나는 안전할 수 없었다. 스트레스의 굴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말이다. 덕분에 병은 착실히 키워져 갔고, 마음도 함께 죽어 갔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그런 생각을 달고 살았다.
'나는 왜 태어난 거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왜 다른 애들처럼 평범하게 걸을 수 없는 거지?'
나한테만 야속한 것 같은 이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말할 수 없이 속상했다. 그 마음에는 살이 붙어,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한 거 같고, 웃고 있는 사람들만 봐도 부아가 치미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나 빼고 다들 즐거워 보여서, 한동안 머리를 들고 다닐 수 없기도 했다. 웃는 낯이 꼴 보기가 싫어서.
그래. 부정하지 않겠다. 내 모난 성격, 나도 인정한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그런 눈빛'을 받는 게 힘들어서였다. 툭하면 쓰러 져 길 한복판에서 엉엉 울고 있어도, 사람들은 내게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린아이가 우는 걸 그저 지켜만 보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다. 당연히, 도움의 손길 따위 내미는 어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신, '그런 눈빛'을 줬다. 측은함. 혹은 조롱. 더러는 동정이었고, 또 더러는 비웃음이었다. 그저 진상 아이가 마트에서 초콜릿 사달라고 떼를 쓰며 바닥을 뒹구르는. 그런 장면을 보는듯한 눈 같았다.
어지러워 미치겠는 머리보다, 날 더 상하게 한 건 말보다 날카로운 침묵.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었다.
그 말들, 눈빛, ‘암묵적인 기대 없음’이 나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부숴갔다.
그건 조용히, 그러나 폭력적으로 내 안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말을 삼킬 때마다, 눈물을 삼킬 때마다, 숨을 참을 때마다, '분노'는 내 속에서 날카로운 뿌리를 내려갔다.
누군가는 그걸 보고 “네가 변했다”라고 했지만, 그들이 모르는 진짜 내 모습은 이러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참기가 싫었다. 무시당하는 것도, 아프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그저 ‘약한 아이’로만 남는 것도.
그러나, 의외로.
분노는, 생각보다 쓸모 있었다. 그건 나를 망치기도 했지만, 나를 일으켜 세우기도 했으니까. 다들 내가 쓰러질 거라 말할 때. 할 수 있겠냐고 의심할 때. 나는 더욱더 이를 악물었다.
'그래. 내가 얼마나 버티는지 두고 봐.'
'내가 이 몸으로 어디까지 가는지 봐.'
'정말로 안 되는지, 내가 직접 증명할 거야.'
아마도 사춘기가 시작될 그즈음. 나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분노를 연료처럼 삼았다. 귀가 울리고, 세상이 돌아도 이불을 발로 걷어찼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두고 보자. 이를 갈았고, 현기증이 올라오면 벽을 붙잡고라도 억지로 서 있었다. 더 이상 병 앞에 무릎 꿇고 주저앉기 싫었다. 심장이 뛰어도, 나는 돌덩이라도 된 마냥 움직이려 하지 않은 두 다리를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얼굴이 새하얘질 정도로.
“괜찮아. 할 수 있어.”라는 말 대신 “그만둬라. 할 수 없다.”는 말이 더 익숙했던 내 세상 속에서, 나는 나에게, 매일 주문을 걸며 세뇌시켰다.
“한 번만 더 해보자. 딱 한 발짝만 더 가보자. 제발.”
무려 20년 전인데,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조무사 자격증을 딴 뒤, 두어달 때쯤 지났을 때. 내가 선택한 첫 직장은 작은 한의원이었다. 일이 수월하고, 크게 움직이는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지원했더랬다. 직원이 나 포함 둘이고, 의사도 젊고 선한 인상이어서 꽤나 안심했다.
그 첫 직장에서 나는, 사회생활 시작한 지 3주 만에 해고되었다.
나는 아파도 일했다. 그 시절은 감추고 일하는 법을 몰랐어서, 겉으로 보기에 표시가 아주 많이 났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끔 너무 어지러워 앉아 있으면, 선배가 다가와서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럴 거면 왜 나왔어?”
“집에서 쉬지 그래?”
입사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신입이, 툭하면 어지럽다고 주저앉아 있으니. 일하기 싫어 농땡이 부린다고 생각되어도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조롱 섞인 말을 받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아픈 건 죄가 아니었지만, 직장에서 직원이 아픈 건 그저 일에 지장을 주는 방해꾼일 뿐이었으니까.
그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은, 생존이 아니라 전쟁이었다. 그 전쟁을 나는 오기 하나로 버텼다. 그건 어쩌면 슬픔이었다. 아니,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세상에 보이고 싶은. 나 자신을 지키고 싶은, '처절함'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얼마나 참아 왔는지를 다시 생각해 본 날. 봉투에 단 80만 원을 넣어서 내 손에 쥐어주며, "내일부터 안 나와도 된다"라고 들었던 그날. 분노의 불씨가 역대급으로 활활 타오르는 걸 느꼈다.
사람들은 분노가 나쁘다고 말한다. 그러나 온몸이 무너져버릴 것 같을 때, 분노는 내게 마지막 남은 뼈대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했을지 몰라도, 그건 내 생존의 기술이었다. 당시, 내 안에서 계속 자라나는 이 마음은 나를 움직이게 했고. 결국에는 나를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물론 그 분노만으로는 끝까지 갈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무엇이든 시작은 할 수 있었고, 버틸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시작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나를, 세상을, 직장을, 관계를.
그 무게를 견디기엔, 나는 아직도 아픈 사람 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여즉 '그것'을 내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에너지'로 '이용'하고 있다. 그러니 다음 이야기를 읽기 전에, 당신도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어보길 바란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할 때 '분노'를 쏟고 있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