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처음으로 해고 당한 날.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난걸까. 아님 그 조차도 시작일까.

by 라온




버스 창밖으로 수많은 불빛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내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무언가를 이뤄낸 것도, 그저 살아남은 것도 아닌 채. 고작 3주 만에 내쳐진 현실 앞에서 나는 말 그대로 산산이 부서진 채 버스 한가운데 서 있었다.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불안감은 나를 짓눌렀고, 나는 여전히 이 세상에서 나 혼자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누구도 나의 '시작'을 기다려주지 않았고, 내가 얼마나 절실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함께 일하기 '불편하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아주 쉽게, 너무도 조용히 지워졌다. 울음을 멈추고 나니, 손에 쥐어진 봉투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건 월급이 아니라 내가 버티며 일했던 3주에 대한 위로금 이었다. 얼마나 억세게 꼬옥 쥐고 있었는지, 봉투는 버스에서 내릴 때 까지 손바닥을 데우고 있었다.


어쩐지 그게 참, 서글펐다.








어찌보면 회사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결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에 대한 뒷담 아닌 뒷담을 했던 선배의 말이 아니었더라도, 언젠가는 같은 일이 벌어졌으리라 생각한다. 그도 그럴것이 툭하면 쓰러지는 비실비실한 직원을, 좋아 할 오너는 없을테니까 말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열정보다 조심성이 앞섰고, 마음보다 몸의 증상이 먼저 선을 넘었으며, 무언가를 해내기 전에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 그게, 나였다. 그런 나를, 나 조차 인정하는 데에 시간이 꽤 오래 걸렸었다. 아니, 인정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싸웠다고 해야 맞겠다.


3주. 딱 3주. 그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너무 짧아서, 내가 제대로 한 게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모든 걸 걸고 있었다고 확신한다.


매일 출근 전, 가방을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증상 진단서, 물, 약, 응급처치 매뉴얼까지. 누가 들었으면, 진지하게 군대라도 가는 줄 알았을 거다. 진단서는 왜 들고 있었냐고? 만약 병이 도져서 못 걷게되는 상황이 오면 꼭 보여줘야 할 필수템 이기 때문이다.


'나 정말로 아픈거 맞아요. 진짜에요.' 하고. 말로만 해서는 또 믿지 않을까봐, 나는 언젠가부터 늘 진단서를 챙겨 다녔다. 내가 나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신분증 같은 거 였다.



내겐, 단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던 ‘정상적인 하루’. 겨우 몇 날 연장 될 뿐이라 해도, 나는 버텨내고 싶었다.

그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얼마나 조심스럽게 살았는지, 하루하루 얼마나 죽기살기로 버텼는지. 그 날이 지나서야, 나도 나를 제대로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 대망의 그 날,

그 어떤 예고도 없이 아주 가볍게 해고되었던 그 날. ‘괜찮아, 다음 기회가 있잖아.’ 그 흔한 위로 한마디도 스스로에게 할 시간 없이, 한순간의 노력이 끝이났다. 무언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단지 불편하다는 이유. 그 한 문장으로 나는 배제되었다. 그때, 누군가의 의견 앞에서 ‘존재 자체가 문제’라는 판단을 받은 느낌이었다.



능력이 아닌. 태도가 아닌. 그저 내가 나인 것만으로 불편함이 된다는 것. 그건 어떤 책에서도 배울 수 없는 종류의 아픔이었다. 내가 정말 잘못한 걸까? 나라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불편한 존재였을까? 그 질문을 품고 집으로 돌아오던 버스 안, 눈물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터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그 공간에서,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억울하고, 수치스럽고, 그리고 무엇보다… 절망스러웠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여태까지의 노력이 많이 부족했던 건가.


3주간의 급여가 들어있는 작은 봉투. 내가 증명하고 싶었던 시간의 무게와, 다시 시작해보려 했던 용기의 무게가 뒤섞여 어깨가 점점 굽어 져 갔다. 우루사가 올라 탄 마냥, 너무너무 무거웠다. 어쩌면 이 하루가, 기껏 조금 끌어 올려 놓은 내 용기를 앗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리고 그건. 너무도 허망하게 끝나버린 ‘처음’의 무게였다. 스무살 가을의, 어느하루. 그 하루는,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던 날 참 외롭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지."
"스무 살 땐 다 그런 거야. 액땜했네."
"어차피 사회는 원래 그런 곳이야."


아니다. 사회란 곳은 '나 같은' 아픈 사람이 살아내기엔 더욱, '최악 중에서도 제일 최악' 이었다.

물론, 더 끔찍한 스무살을 보낸 사람도 있겠지만, 내겐 그 3주가 누군가의 평생보다 절실했다. 그건 나에게 평범한 하루를 가지고 싶어서 이 악물고 노력했던, 필사적인 도전이었다.

이해받지 못하고 지워지는 순간, 사람은 스스로를 지우고 싶어질 만큼 무너진다. 그리고 그런 기억은 아주 오랫동안, ‘다음’이라는 이름의 도전들까지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해고되던 그 순간의 공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이상할 만큼 차가웠고, 나는 그 이후로 한동안 면접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트라우마는 '한의원' 자체도 꺼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6개월은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만 쳐박혀 살았더랬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거기서 끝났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그 일은 내게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이었다.

말없이 잘려나간 자리에서 나는 한참을 무기력하게 앉아 있었지만, 결국엔 일어났다. 상처는 컸지만, 그만큼 내가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증명하는 흔적이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 해 보면, 그날의 나는 무너진 게 아니라 더 이상 흔들리지 않기 위해 바닥을 단단히 딛고 있던 중이었던 것 같다.


스무 살의 나는 생각보다 강했고, 그 강함이 오늘의 나를 그리고 이 글을 만들어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