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
올해 김장배추 농사를 망쳤다. 나만 망친 게 아니니 괜찮다. 나는 초보 농부라 괜찮지만 전업 농부들이 농사를 망쳤을 생각을 하니 맘이 안 좋다. 이번 가을 한참 배추 속이 안을 시기에 비가 많이 와서 한숨이 나왔다. "배추 다 썩겠네" 걱정이 됐다. 아니나 다를까 삼분의 일이 자빠져 있었다.
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처음 김장배추를 심었을 때는 머릿니 잡듯이 배추 속을 뒤져서 아침저녁으로 애벌레를 잡아주고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겠다고 한살림에서 목초액과 em 발효액을 사서 뿌려주었다. 그 덕이었는지 하늘에서 도왔는지 병충해 약은 지인이 한번 쳐준 것 말고는 약을 안치고 수확을 했었다.
올해는 꽃 배우러 학원을 다니느라 잘 보살피지 못할걸 알지만 그래도 심었었다. 배추 약 몇 번 칠 생각을 하고 심었는데, 벌레만 안 퍼지면 된다 생각했는데 하늘에서 돕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배추는 뿌리가 썩어서 넘어갔고 지난주에 가보니 반도 안 남았다.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것도 살펴보니 진딧물이 꼈다. 아깝긴 하지만 차라리 맘은 편했다. 밭에서 뜯어서 나르고 절일 생각을 하니 걱정이 되었는데 절인 배추를 살 생각을 하니 맘은 편했다.
솔직히 김장을 하기 위해서는 절인 배추 사서 하는 게 더 경제적이다. 거름과 살충제 뿌리고 밭 갈아서 비닐 씌우느니. 배추를 심는데 드는 비용으로 다된 김치를 사 먹거나 절인 배추를 사서 김장을 하는 게 비용적으로는 싸다. 그래도 심는 이유는 작물 자라는 걸 보는 재미와 수확할 때의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다 지인들과 나눠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올해는 하는 수 없이 절인 배추를 사서 이른 김장을 했다. 그래도 농사지은 배추가 아까워 대체로 멀쩡한 배추는 겉잎을 다 떼네고 골라내니 20포기 정도는 건졌다. 요즘은 주변에 김장한다고 하면 김치를 사 먹지 힘들게 왜 하냐고 한다. 어릴 때부터 봐온 게 있어서 인지 하게 된다. 잘 못해도 직접 담근 김치가 사 먹는 김치보다 맛있다. 힘들지만 다 같이 모여서 김장을 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힘들 때 수육에 막걸리를 한잔하면 피곤이 가신다. "아이고 허리야 팔이야" 하면서도 해놓고 나면 뿌듯하다.
나는 서울 여자로 농사에 농자도 모르고 자랐다. 결혼 후 농촌에서 7년 정도 시어른들과 같이 살다 보니 자연히 농사를 접하게 되었다. 어른들의 농사는 전업 농사이고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인지 재미가 없었다. 그냥 의무로 돕는 농사였다. 그러다 재작년부터 나만의 텃밭에 농사를 짓는다. 게으른 농법이라는 핑계로 풀도 잘 안 뽑고 야채도 그냥 막 자라게 두어 꽃을 본다. 아욱 , 상추 겨자채의 꽃등, 생각보다 야채 꽃은 이쁘다. 특히 치커리 꽃은 딱 내 취향이다. 치커리의 진한 초록에 보라색 꽃은 정말 아름답다.
내년농사는 야채는 약간만 심고 꽃을 심어보려고 계획 중이다. 내가 심은 꽃으로 원데이 클래스를 해보고 싶다. 내년에 심으려고 많은 씨앗을 모아 두었다. 채소 농사와는 다르게 꽃 농사는 또 어떤 난관이 있을지 기대가 된다.
참! 올해는 김장을 할 사람들은 되도록 김장을 빨리 할 수록 쌀것 같다. 올해 전반적으로 배추농사가 망해서 안그래도 김장철에 비싼 야채값이 더 비싸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