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진즉 할 생각을 못했을까!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봄이 되면 항상 식물을 사고 죽이기를 반복했다. 나 역시도 똥손이었다. 1층 아파트라 해가 잘 들지 않아 그런지 나의 식물들은 잘 자라지 않았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아이들 챙기랴 회사 다니느라 바빠 물 주는 주기도 들쑥날쑥했다. 낮에는 집이 빈다고 문도 꼭꼭 닫아 놓아 통풍도 안되었다. 식물이 잘 크지 못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도 기술이 생겼는지 식물들이 죽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일까? 아침방송에 개그맨 00씨가 결혼을 한다고 했다. 부인의 직업은 플로리스트였다. 그때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에 대해 처음 알았다. 꽃을 항상 볼 수 있고 그 꽃으로 아름답게 장식한다는 것이 괜히 질투가 나며 부러웠다. 동경만 할 뿐 해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두근두근 콩닥콩닥 설렘에 잠이 안 온다. 운전을 하고 가는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에서 연둣빛 새순이 돋고 있다. 하늘은 미세먼지 없이 파랗다. 기분이 최고다. 교실 입구에 들어서니 꽃향기가 났다. 얼굴이 커다란 핑크색 수국, 처음 보는 꽃인 보라색에 야구공크기만 한 포실포실한 알리움, 싱그러운 그린의 유칼립투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인생의 첫 꽃 수업, 수업을 위한 꽃을 한 아름 받고 보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선생님이 능숙하게 시범을 보이면 따라 했다. 한 송이 꽃을 포장하는 법을 배우고 바구니에 꽃을 꽂았다. 행복함과 함께 눈물이 핑 돌았다. 아! 이걸 왜 이제야 배울 생각을 했지? 억울한 생각마저 들었다. 진즉 배웠으면 더 빨리 행복했을 텐데. 꽃을 만지는 내내 그동안 살아온 나의 인생을 수고했어! 하며 위로받는 것 같았다.
꽃집 사장님이 추천해 준 학원은 내일 배움 카드로 다닐 수 있는 국비지원이 되는 학원이었다.
한 달 반동안 주말에 플로리스트 기초반을 다닌 후 학원원장님과 상담을 했다. 꽃집사장님의 추천으로 왔고 꽃을 배워서 창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창업반 과정도 있지만 사업과 꽃에 대한 경험이 없으니 화훼장식산업기사 과정평가형을 해보라 했다.
과정평가형은 100일 동안 하루 6시간 교육을 받고 시험을 보면 자격증을 딸 수 있는 것이었다. 학원비는 내일 배움 카드가 있으면 국비로 지원이 되고 자부담은 크지 않아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없었다. 6개월 동안 생화꽃꽂이와 꽃다발은 물론 건조화나, 프리져브드등 꽃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과정이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배워서 시작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직장생활의 업무는 첫 회사 지도제작하는 곳 말고는 전공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일이었다. 캐드를 할 줄 아니 포토샵과 일러스트프로그램을 독학으로 금방 배웠고 실무에서 필요한 기능만 쓰다 보니 자격증을 딸생각도 하지 않았다. 흥미도 적성도 뭔지 모르게 닥치는 대로 마케팅업무나 디자인업무를 실무로 익혀 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 지나면 더 이상 실력이 늘지 않고 관심도 줄어갔다.
화훼장식산업기사 과정평가형을 하기 위해 그동안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매일매일 새로운 꽃을 만질 수 있고 기술을 배우는 과정평가형은 재미있었다.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은 총 16명이다. 하나의 관심사로 온 사람들이다 보니 대화도 잘 통하고 금방 친해졌다.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원주에서 성남으로 왕복 3시간을 6개월간 다녔다. 힘들기도 하지만 꽃집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