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7. 요대로만 있어주면 안 될까?

  간직하고 싶은 순간

      

가장 예쁠 때, 좋을 때 이 순간이 그대로였으면 생각할 때가 있다. 동생과 우스개 소리로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예쁜 리즈시절은 4살에서 5살 때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떼도 늘고 자기주장도 강해지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말이 조금씩 통하는 그때. 외모도 아가티를 조금씩 벗고 유아인생 귀여움을 가장 뿜뿜 할 때가 그때 같다고. 그 시기의 아이들을 보면 ‘안 크고 요대로 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조잘조잘 떠들다가 코 자는 모습을 보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꽃도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시기가 있다. 봉오리가 막 터져서 얼굴을 활짝 펴 꽃이 지기 전 벌과 나비를 유혹하려 미모를 불사르는 시기가 있다. 화형과 화색이 가장 예쁜 시기 그때의 꽃을 보면서 ‘요대로 그냥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꽃을 배우러 학원을 다니며 실습한 꽃을 집으로 가지고 온다. 며칠 지나 시드는 꽃을 보면 아깝다. 어떻게든 조금 더 간직하고 싶어 말려도 보지만 예쁘게 말리는 것이 쉽지 않다. 습도에 따라 곰팡이가 피며 썩기도 하고 햇빛을 많이 받으면 색이 바랜다. 운 좋게 잘 말랐다 해도 보관이 쉽지 않다. 예쁘게 건조해서 오래 보관할 방법이 없을까 싶어 찾아보니 있었다. 생화를 보존하는 방법에는 건조화, 압화, 프리져브드플라워가 있는데 그중 실리카겔건조가 눈에 들어왔다. 실리카겔은 습기를 빨아들이는 흡습제다. 조미김이나 건어물의 소포장에 들어가는 그것이다.      


또 요놈의 호기심이 꿈틀대며 건조화 만드는 방법이 배우고 싶다. ‘시간 있을 때 창업하기 전에 꽃에 대한 건 다 배울 거야’ 하는 조급함도 한몫 거들었다. ‘이걸 써먹을 수 있을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나의 호기심과 배우고자 하는 욕구를 이기지 못했다.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자’는 생각에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양주까지 갔다.      

건조화는 자연건조와 실리카겔에 하는 방법 외에도 다양했다. 열풍에 찌거나 냉동건조하는 방법도 있었다. 열풍은 고열에 꽃의 색이 변하고 냉동은 동결건조식품을 만들 듯이 빠르게 급속냉동을 해야 해 시설이 필요했다. 건조화를 배우러 간 곳은 실리카겔을 큰 알갱이 형태가 아닌 모래처럼 곱게 갈아 생산했다.     


먼저 이론 수업을 듣고 실습을 했다. 큰 플라스틱통에 모래처럼 고운 실리카겔과 꽃을 켜켜이 넣었다. 2주에서 3주 정도 두면 습기를 빨아먹어 건조가 된다고 했다. 배우면서 실습한 것 말고도 꽃은 학원에서 연습하고 가져온 꽃이 지천이니 집에서도 배운 데로 예쁜 꽃으로 골라 묻었다.  2주 후 열어보니 꽃잎이 얇은 꽃은 다 말랐고 두꺼운 꽃은 덜 말라서 좀 더 두었다.      


실리카겔에 건조하기


건조된 꽃은 생화보다는 색이 좀 연해졌다. 모양은 침전하는 기술에 따라 찌그러지기도 접히기도 했지만 예뻤다. 건조화의 단점은 부스러지는 것인데 코팅제를 발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건조한 꽃을 형태보존화라 부른다. 형태는 보존이 돼도 안타깝게 색상은 보존되지 않는다. 색상의 유지기한은 1년 정도라고 했다. 습기를 조심하고 그늘에 놓으면 색상이 더 오래가기도 한다는데 실습을 한 나의 형태보존화는 2년 정도 지나니 색이 바랬다.      


형태보존화는 부케를 말려서 유리돔이나 액자에 보관하는 용도로 많이 쓰인다. 부케를 100일 동안 보관하면 신랑 신부가 잘 산다는 속설도 있다고 하니 더욱 유행하는 듯하다. 꽃집에 있으면 종종 부케 말려주냐는 문의가 온다. 꽃집 사장은 비용대비 손이 너무 많이 간다고 거절한다. 그러다 어느 날 혼자 가계를 지키고 있을 때 부케 말려서 유리돔 만들 수 있냐는 문의가 왔다. 꽃집 여기저기 전화를 다 해보는 중인 듯했다. 너무 간곡하게 부탁을 해서 꽃 상태를 봐야 하니 가지고 오라고 했다. 물에 꽂아 놓았다고는 하는데 받은 지 며칠이 지나 꽃의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다 못 말려도 되니 해달라고 하도 부탁을 해서 좀 귀찮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러마 했다.     


'잘될까?' 배우기는 했지만 실전에 써먹는 건 첨이라 내심 걱정이 되었다. 집으로 가지고 와 최대한 형태를 살려서 실리카겔에  묻었다.  다른 장미보다 꽃잎이 얇고 장수가 많은 품종의 꽃이라 잘 마를까 걱정스러웠다. 일주일 뒤 통을 열어보니 상태가 좋다. 3주 정도 지나니 완전히 건조가 되었다. 건조된 꽃을 부케모양으로 잡아 유리돔에 넣어 고객에게 전달했다. '와 너무 이쁘다 감사합니다' 연신 인사를 했다. 그 뒤로도 그 손님은 꽃집에 올 때마다 부케유리돔의 안부를 전했다. 친구가 너무 좋아했고 아직도 잘 보존되고 있다고 하며 소식을 전해줬다. 나의 첫 부케유리돔 형태보존화는 성공적이었다.  

    

좌측 말리기 전 부케   우측 완성된 부케
배울때 했던 형태보존화


그 고객을 처음 봤을 때 부케를 말려서 준다는 행위보다 친구의 행복을 비는 마음이 느껴졌다. 행복한 순간을 오래 간직하게 해주고 싶은 고객의 예쁜 마음. 누구에게나 간직하고 싶은 추억, 기억, 순간이 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듯해도 그때가 행복했던 순간이고 그 시간이 쌓여 살아가는 힘이 되는 것을 알기에 그녀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더불어 나도 그 순간 행복했다.  문득 행복하다 느껴질 때,   이 순간이 그대로였으면 생각할 때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6.  꽃이 왜 좋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