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부> 꽃집사장이 될 줄 알았지 Ⅰ

꽃집일은 재미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늘 컴퓨터만 하다가 몸을 움직이니 좀 자유로운 느낌이 들었다. 몸은 고되지만 머리가 복잡하지는 않았다. ‘이 집꽃은 참 오래가 여기 오면 항상 예쁜 게 많아’ 상품을 만들고 손님들이 사가면서 예쁘다고 말해주면 보람 있었다. 상품으로 진열된 화분들도 시장에서 올 때보다 더 예뻐지는 것을 보면 대견했다.


마케팅 직원으로 채용이 된 만큼 홈페이지를 기획하고, 카탈로그를 구성했다. 꽃집 블로그에 글을 쓰고 꽃집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메시지 카드와 스티커를 디자인했다. 아직 꽃다발을 만드는 실력이 한참은 부족하지만 서서히 늘고 있는 것 같아 나름 만족했다. 이렇게 꽃집일과 사무일을 병행하자니 늘 바빴다.

꽃집에서 일을 한 지 1년이 채 안되었을 때 창업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1년 배우고 창업할 생각을 하고 왔지만 막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고정수입이 있어야 했다.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이라도 창업은 할 수 있었다. ‘과연 내가 한 달에 꽃집을 유지하고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생활비를 벌 수 있을까? 월세를 벌 수 있을까? 과연 손님이 올까?’ 기우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 창업은 너무 무모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 꽃집사장도 자리를 잡는 동안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도 고향에서 창업을 한 것이라 지인들이 있어서 큰 도움은 아니어도 자리를 잡는데 도움이 되었다 했다. 그 지역에서 제일 오래 불 켜진 꽃집 쉬는 날 없이 하루 12시간 이상 일을 했다고 했다. 동생이 도와주기는 했지만 상품 만들고 홍보하고 서류업무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 했다. 그러다 플라워핸들링케이스를 발명했고 그게 홍보가 되면서 자리를 잡았다 했다. 그 제품덕에 화훼자재도매도 같이 한다. 화훼자재도매점에 납품하는 꽃집이었다. TV프로그램 생생정보통에 나올 정도로 화훼 쪽에서는 나름 유명해졌다.

인터넷에 꽃집을 검색하면 어마어마하게 많다. 꽃집만 많은 것이 아니라 미용실도 치킨집도 많다. 동일 업종의 가계가 많아도 오픈을 하면 다 자기 손님 있다고 한다. 그런 생각에 나는 안 망한다는 생각으로 오픈을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잘될 거야라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자신감 있게 시작해도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겁을 내서는 할 수가 없었다.

3년이 지나면 막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위에 두 아이는 직장인이 될 것이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내 바람이지만 그때는 고정지출비용이 줄어들 것이다. 그때까지 미루자 생각해 봤지만 그때는 내 나이 반백살이었다. 지금까지도 치열하게 살았는데 나이 50에 창업을 해서 또 치열하게 살기 싫었다.

근본적인 나의 인생목표를 생각해 본다. 왜 창업을 하고 싶었는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일단 오랜 직장생활에 지쳐 벗어나고 싶었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삶,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며 사색이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이 말을 들은 지인이 한마디 했다. “그건 백수잖아 은퇴를 해야 가능한 일이야” 그랬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너무 꿈만 꾸고 있었나.’ 동생이 말했다 “언니 피터팬 증후군 있어” 피터팬증후군은 성인이 되어서도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어른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타인에게 의존하고 싶어 하는 심리를 뜻하는 것이었다. 동생의 눈에는 열심히 해보라고 응원을 하기는 했지만 내가 많이 이상해 보였던 모양이다.

결국 꽃집을 창업할 생각은 접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직업을 바꾸었으니 이만하면 되었다 생각했다. 그동안 배운 것이 아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포기하자 맘먹으니 차라리 맘은 편했다. 달라진 건 창업을 접은 마음뿐인데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하던 일이 시들해졌다. 창업교육을 받고 꽃집을 하는 사장님들의 인스타를 보면 마음이 시끄러웠다. ‘저들도 힘들 거야’ 현실적인 상황을 아니 부러운 것은 아닌데 뭔가 맘이 불편했다. 패배감이라고 해야 할까?

집에서 꽃집까지는 1시간이 걸린다 출퇴근 시간이 왕복 2시간이다. 창업을 하려고 배운다는 생각으로 다닐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 다 그 정도씩은 걸려서 다니잖아.’ 근무시간도 10시에서 7시로 집에 오면 8시였다. 몸이 피곤하니 집에 와서 아무것도 못하고 잠을 잘 때가 많다.

아이들은 내가 미리 해놓은 국과 반찬으로 밥을 먹었다. 워킹맘을 둔 아이들은 스스로 차려먹는 것이 단련되었지만 이것도 오래되니 지겨운지 귀찮으면 굶고 배달음식을 시켜달라 했다. 같이 밥을 먹은 지가 언젠지 가물가물했다. 문득 드는 생각이 ‘아! 내가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고 챙겨줄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큰아이는 서울로 대학을 가서 자취를 하고 있고 나머지 아이들도 대학을 가면 내 품을 떠날 터였다. ‘창업 안 할 거면 집 가까운 곳으로 이직해야 할까?’ 그만두어야 하나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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