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시작되니 출근하기 싫어졌다. 늘 하던 일도 재미없고 힘들게만 느껴졌다. ‘나에게 꽃을 배우게 해 주고 일자리도 준 고마운 곳인데 이렇게 그만두는 것이 맞나? 힘들다고 도피하려는 것일까?’ 하는 고민에 잠을 설쳤다. 명분을 찾아야 했다 나와 타협할 명분. ‘창업을 안 해도 더 다닐 수 있지만 계속 다니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 창업을 하려 했을 때야 배워야 하니 감수했지만 통행료와 기름값이 너무 많이 들어 부담이 된다. 이제라도 아이들에게 더 신경을 쓰자 9시에 출근해서 6시 퇴근하는 회사로 가면 아이들과 함께 저녁밥을 먹을 수 있다. 꽃집에서 일할 때보다 개인시간도 많아질 것이다’라고 나를 설득했다.
처음에 꽃을 배울 때는 더없이 행복했다. 취업을 기다릴 땐 조마조마하고 초조했다. 꽃집에서 일하러 오라고 날 불렀을 땐 그렇게 감사하고 고마울 수가 없었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해도 되는 건가? 슬그머니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막상 꽃집을 그만두려 하니 나이 먹은 내가 취업할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꽃집사장님께 퇴사하겠다 말하고 이직할 곳을 알아보았다.
퍼스널브랜딩과 글쓰기를 하며 내 안의 본질을 알아낸 것은 성실하다는 것과 생각보다 식물을 엄청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그동안 해온 일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꽃집에서 마케팅업무를 하면서 그동안 했던 경험이 다 도움이 되었다. 그 어떤 지시사항도 긴 설명 없이 다 알아들을 수 있었고 일을 하는데 겁나지 않았다. 사회적 기업 서류들이 꽤나 많은데 보고서와 사업비를 따는 사업계획서를 쓸 때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하기 싫다는 생각에 빠져 그동안 쌓인 경험치를 통한 내공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그간의 경력이 있으니 나이는 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이력서를 넣어보자.
3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그중 안경테를 만드는 밴처기업에서 제일 먼저 연락이 왔다. 안경테 생산하는 곳으로 알고 갔는데 용접할 때 만드는 도구도 만들어서 수출하는 곳이었다. 두 개의 사업은 자리를 잡아 신경 쓸 것이 없고 사우나를 개발 중이라 했다. ‘사우나요? 처음에는 연장이름 중에 사우나라는 연장이 있는 줄 알았다.’ 핀라드식 사우나를 개발 중이고 현재 예비사회적 기업 1년 차 라고 했다.
면접을 본 후 미팅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 만나기 전 어떤 회사인지 샅샅이 뒤져 정보를 찾았다. 월급이 안 나오거나 업무도 그리 힘들 것 같지 않았다. 급여와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사무실에 상시 있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일만 잘해주면 사무실이던 집이던 카페던 근무장소는 자유롭게 해도 된다고 했다.
다른 곳에서 면접을 보라고 연락이 왔지만 가지 않았다. 좀 놀랐다. ‘그동안 나를 너무 과소평가했구나 세상은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구나’ 취업이 안될 줄 알았다. 이렇게 빨리 취업이 될 줄 몰랐다. 꽃을 배우기 전 꿈을 찾을 때도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창업 말고는 답이 없다 생각했다. 다른 곳으로 이직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경력은 많지만 이 나이에 ‘나 이거 잘해요’ 하고 뭐 하나 똑 부러지게 내세울 것이 없다 생각했다. 젊고 똑똑한 애들도 많을 텐데 나이 많은 나를 누가 써주겠어라는 생각만 했다. 그동안 살면서 자존감이 낮아져 마음에 병이 들어있던 것이다. 꽃을 배우고 꽃집에서 마케팅일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기고 치유가 된 것 같다. 다시 당당한 나를 만났다.
다시 직장인으로 회사에 들어가지만 꿈을 접은 것은 아니다. 창업이 아닌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만의 정원을 만들 것이다. 꽃만 있는 정원이 아닌 채소와 꽃 풀 나무가 어우러져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것이다. 좀 더 여력이 된다면 북카페 같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 창업할 자금으로 작은 터를 하나 마련했다. 막내까지 대학을 보내놓으면 거기에 집을 짓고 정원을 가꿀 것이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꽃집 그만뒀어’ ‘응 왜? 그럼 꽃 괜히 배웠잖아’ ‘아니야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얻은 게 더 많아 그동안 힘들었던 삶을 치유받은 느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