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핏하면 울던 울보였던 내가 울지 않게 된 이야기

데일리 일기#1

by 라온제나









그러고 보면 시간이 지나 문득 알아차린 게 있다. 걸핏하면 울었던 울보 내가 어느새 우는 일이 잦아졌다는 거다.

어릴 때 심지어는 담임선생님이 나한테 “너네 쌍둥이 언니는 성적 좋니?”라고 그냥 호기심에 물은 질문에 고개도 못 들고 눈물을 훔쳤었던 기억이 난다. 또 한 번은 겨울에 너무 추워서 집에 오자마자 침대에 엎드려 엉엉 울었던 것도. 10대 시절을 지나 20대에 들어선 나는 여전했다. 울 일은 여전히 많았다. 화가 나도 울고, 슬퍼도 울고, 억울해도 울고, 당황해도 울고, 놀라도 울고, 그냥 울고.

20대 초반에는 많이 활발해지고 외향적으로 변한 성격 덕에 이제 아이처럼 울지 않는다고 착각하고 살았다가 된통 아픈 기억을 가져버리는 바람에 이후 몇 년간은 또 우울한 울보가 되었었다.

20대의 울보는 더했다. 아이처럼 보이지도 않기에 더 엉엉 울 수는 없었기에 숨어서 울어야 했고, 소리를 참으며 베갯잇을 적셔야 했다.
'그게 뭐가 울 일이라고?' '울지 마' '울면 지는 거야' 이런 말들이 제일 싫었다.


작년에 긴 장기여행을 가서도 나는 울었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올라와 울었고, 언니랑 안 맞아서 울었고, 불안해서 울었고, 힘들어서 울었다.
그러면서 신기하게도 알게 되었던 건 나라는 사람은 우는 행위가 다른 여러 감정표현의 수단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화가 나면 욕을 하거나, 큰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나처럼 울거나 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화가 나면 우는 게 감정표현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오랫동안 몰랐다. 왜냐 생각해보면 우는 건 자존심이 진다고 알고 있어서였고, 우는 건 약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너무 쉽게 우는 것 같아서 그런 나를 오랫동안 자책하고 왜 우는 거밖에 못하냐고 다그쳐왔었다. 장기여행과 명상을 통해 차근차근 나의 여러 내면의 모습들을 마주하면서, 상처 받은 내면 아이를 인정해주고 안아준 것 같다. 그러니 지금은 더 이상 나 자신에게 미안해서 우는 일은 없다.
이제 더 이상 스스로에게 미안하지 않다.
그토록 인정에 목말랐던 나에게 그동안 정말 제대로 봐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스스로 토닥여주기 시작하자, 많은 것들이 바뀌어 갔다.
물론 여전히 나는 아직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고, 스스로를 다그칠 때가 있어 우울할 때도 있지만 더 이상 이유 모를 허망한 마음에 엉엉 울어버리고 싶은 이상한 마음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내 영혼이 많이 안정된 것 같다.

내가 지금 제일 바라는 것은 그저 꾸준히 조금씩 매일매일 내 마음을 돌아보는 일, 그래서 이렇게 여유와 공간을 가지고 글로 풀어내게 되는 것.

글 쓰는 일이 좋으면서도 꾸준히 하지 않았던 것에는 또 그만큼 내 영혼을 잘 돌아보지 않았던 게 아닐까.

내가 많이 안정되어서 고맙다.

내 마음아, 내 몸아, 오늘도 잘 있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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