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 현금 비중과 어설픈 자산 배분을 버리고 '투자 근육'을 선택한 이유
주식 시장에서 리스크 관리를 논할 때, 나는 하락빔을 맞을 땐 맞더라도 억지로 현금 비중을 챙기는 편은 아니다. 종목을 팔고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 일시적으로 현금을 크게 쥐고 있을 때도 있지만, 일부러 일정 비율의 현금을 떼어두려 신경 쓰진 않는다.
하락장을 맞는 공포보다 현금을 쥐고 있으면서 시장의 상승을 온전히 따라가지 못할 때 오는 ‘FOMO(Fear of Missing Out)'가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 가장 두려운 시나리오는 존재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라는 뉴노멀을 맞이한 이래, 우리는 어쩌면 진짜 하락장다운 하락장을 아직 겪지 않았다.
미중 패권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중동 사태까지 굵직한 위기들이 있었지만 끝을 모르는 대세 하락장은 아니었다.
물론 코로나19라는 엄청난 폭락장(고점 대비 -37%)이 있었지만, 그 기간이 너무 짧았다. 각국 정부가 유동성이라는 치트키를 써서 돈이란 돈을 다 풀었고, 순식간에 시장을 돈으로 메워버렸다. 유동성 앞에 장사가 없음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문제가 바로 거기에 있다. 돈으로 구멍을 메워보니 표면적으로는 기업도 살고 경제도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국 이 방식은 '돈이 돈을 버는 구조'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
국가 간, 기업 간, 그리고 개인 간의 자산 격차는 돌이킬 수 없이 벌어졌다. 자산을 쥔 자들은 유동성을 타고 더 부유해졌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제자리에 머물거나 상대적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 양극화는 비단 코로나 때문만이 아니라, 2008년 금융위기를 돈으로 덮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가속화'되고 있었던 자본주의의 고질병일 것이다.
절대다수의 서민층이 억눌리고 억눌리다 결국 임계점에 달하면, 이 시스템이 온전히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근원적인 우려도 든다.
그렇다면 다음 위기가 찾아왔을 때, 각국 정부는 또다시 더 큰돈을 찍어내어 막을 수 있을까?
지금처럼 금리를 조절하며 버티다가 양적완화를 반복하면 자산 가치는 오르고 화폐 가치는 하락한다.
부채의 절대적인 숫자는 같아도 실질적인 가치는 떨어지니, 정부 입장에서는 부채 부담을 덜어내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미정부 부채 규모는 무려 39조 달러, 한화로 약 5경 7000조 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 팽창된 신용의 고리 어딘가가 끊어진다면?
전쟁 자금이 통제할 수 없이 유출되거나, 글로벌화가 끝나고 철저한 자국 보호주의로 돌아서서 서로에게 관세를 물어뜯는 구조가 격화된다면?
끝없이 돌고 돌던 유동성이 순식간에 말라버려, 더 이상 돈을 찍어내는 것조차 불가능한 순간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에 불과하지만, 그때는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거대한 하락이 올지도 모른다. 회복 기간마저 기약할 수 없는 진짜 위기 말이다.
이런 상상을 하다 보면 대비를 안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일개 개미인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째, 매크로(거시경제) 분석?
택도 없다. 세계적인 기관이나 정부조차 예측에 실패하고 무너지는데, 개인 투자자가 매크로를 분석해 시장의 타이밍을 맞추겠다는 건 애초에 자만이다.
둘째, 현금 비중 확보?
이것도 내게는 정답이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 시장의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는 FOMO를 견디기 힘들다. 억지로 현금을 쥐고 있는 건 이른바 '인디언 기우제'와 같다. 속으로 폭락만 와라, 폭락만 와라 빌게 된다.
막상 폭락이 오면? 어느 시점에, 어떤 종목에 그 현금을 투입할 것인가 하는 더 큰 난제에 부딪힌다. 바닥인 줄 알고 샀다가 지하실을 구경하는 일도 허다하다.
남은 현금 비중 때문에 뇌 구조가 자꾸 하락을 기대하는 쪽으로 틀어지고, 정작 크게 베팅해야 할 상승장에서는 주저하게 된다. 내가 20%의 현금 룰을 폐기한 이유다. (물론 목표 수익에 도달해 매도한 후, 마땅히 살 종목이 없어 자연스럽게 현금이 쌓이는 경우는 예외다.)
셋째, 자산 배분?
과거 레이 달리오의 '올웨더 포트폴리오(주식, 채권, 금, 원자재 등에 분산 투자)'를 열심히 공부한 적이 있다. 사계절 내내 방어력(최소 MDD)을 유지하며 자산을 굴린다는 개념은 훌륭하다.
하지만 양적완화 이후 미친 듯이 오르는 상승장에서 다른 사람들은 주식으로 30% 수익을 내는데, 내 방어적 포트폴리오는 5% 오르는 데 그친다면 어떨까? 그때 느끼는 소외감과 상대적 박탈감의 고통은, 하락장에서 덜 깨졌다는 안도감을 훨씬 뛰어넘어 버린다.
인간의 심리상 이를 덤덤하게 견뎌내기란 무척 어렵다. 일개 개인이 개별 주식을 넘어 채권과 원자재,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분석하며 리밸런싱을 완벽하게 해내기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물론, 본업이 사업과 같이 주식보다도 더 리스크가 있는 분야라면, 오히려 투자는 신경을 안 쓰면서 안정적으로 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결국 허망하게도, 완벽한 대응책이란 없다.
뻔한 소리지만 자신의 기질과 자산 규모, 즉 '투자 근육'에 맞게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매달 고정적으로 빠져나가는 생활비와 대출 원리금이 빠듯해, 당장 주식 계좌에 구멍이 나면 현실의 생계가 흔들리는 상황이라면 무조건 덜 깨지는 '지키는 포트폴리오'가 맞다.
반대로, 필수 고정비를 제외하고도 여유 자금이 있거나, 아직 부양할 가족이 없는 사회초년생, 혹은 기질 자체가 공격적인 경우, 자산을 한참 불려야 하는 단계에 있다면 변동성을 감내하더라도 ‘공격적인 포트폴리오’가 더 알맞다.
하락장도 직접 뚜드려 맞아본 사람들이 다음 하락장에서 덜 당황한다. 아프긴 매한가지지만, 멘탈이 붕괴되지 않고 버티는 근육이 생기기 때문이다. 일단 시장에서 퇴출당하지만 않으면, 오래 머무는 동안 알아서 근육이 붙고 강해진다.
그래서 나의 결론은 아주 단순하다. 다가올 미래의 하락장을 대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하락이 오면, 그냥 온몸으로 맞아야지 어쩌겠나.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지켜야 할 절대적인 전제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레버리지(빚)'다.
하락을 온몸으로 견뎌내려면 레버리지가 과도하면 안 된다.
신용대출(주식담보대출) 같은 일반 레버리지는 피 말리는 이자와 반대매매의 공포로 멘탈을 조각낸다.
반면 2배, 3배짜리 레버리지 ETF 같은 상품은 횡보장에서도 '음의 복리'로 인해 계좌가 수학적으로 녹아내린다. 즉, 시장이 단기간에 확실히 올라주지 않으면 구조적으로 죽게 되어 있다.
그리고, 레버리지는 한 번 맛보면 끊기가 너무나 어렵다. 내 돈으로 30% 오를 걸, 2배 레버리지를 쓰면 60%를 먹으니 그 달콤함이 엄청나다. 코인 시장의 100배 레버리지처럼 한 방에 도파민이 터지는 도박 상품들도 있다.
우리는 돌부처가 아니기에, 대출 비율이 높아질수록 심리적 안정감은 지수함수처럼 훅훅 꺾여버린다.
시장에 오래 머물며 자연스럽게 투자 근육을 키워야 할 시간에, 스테로이드를 과다하게 꽂아 스스로 수명을 갉아먹는 셈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뼈저리게 다짐한다. 하락장이 오면 어쩔 수 없이 뚜드려 맞자. 하지만 레버리지는 절대 쓰지 말자.
시장이 평온할 때도 쓰지 말고, 막상 폭락장이 왔다고 해서 바닥을 잡겠답시고 섣불리 쓰지도 말자. 나의 알량한 판단으로 섣부르게 레버리지를 쥐었다가는, 정말 피가 낭자하는 하락장의 수렁 속으로 영영 빠져버릴 수 있으니까.
레버리지만 없다면, 계좌에 뼈아픈 대미지를 입을지언정 결코 시장에서 퇴출당하지는 않는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웅크리고 있으면, 결국 그 처절하게 뚜드려 맞는 구간이야말로 나의 '투자 근육'을 가장 빠르고 단단하게 펌핑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가 될 것이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살아만 남아 있자. 그것이 일개 개미가 험난한 자본주의의 야생에서 살아남는 가장 투박하지만 확실한 생존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