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소유권이 없는 나라의 기괴한 부동산 생태계 관찰기
중국 아파트가 10년 만에 슬럼가처럼 변하는 이유
10년 된 신축이 30년 된 은마아파트보다 낡은 이유
지난 편에서,
토지 소유권이 없음에도 중국인들이 왜 그토록 아파트에 열광했는지, 달러와 주식이 막힌 체제 속에서 어떻게 거대한 자본이 콘크리트 위로 쏠리게 되었는지 그 뼈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이토록 막대한 자본과 욕망을 먹고 자란 중국의 아파트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동네를 채우고 있을까?
나는 칭다오에 오기 전, 지도를 보며 막연히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지어진 지 10~20년밖에 안 된 아파트들이니, 내가 이전에 살던 한국의 30년 된 구축보다는 훨씬 깨끗하고 살기 좋겠지?' 하지만 현지에 도착해 직접 발품을 팔며 마주한 현실은, 나의 얄팍한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중국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보드게임 판에 떨어져 겪고 있는 초보 이방인의 두 번째 멀미, 그 기괴한 부동산 생태계에 대한 관찰 기록이다.
한국의 30년 된 아파트는 낡긴 했어도 꽤나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대치동 은마아파트처럼 건물이 아무리 낡아도, 그 아래 깔린 '대지지분'과 '입지'라는 절대 불변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른바 '몸테크'를 하며 재건축의 희망을 품거나, 전월세를 통해 해당 입지의 인프라를 톡톡히 누린다.
하지만 중국은 완전히 달랐다. 10년만 지나도 아파트 외벽 페인트는 흉물스럽게 벗겨져 있고, 현관이나 복도 같은 공용 공간은 무서운 속도로 슬럼화되어 있었다. 이유는 아주 명확하고 현실적이다. 땅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실거주보다는 투자 목적으로 사둔 집주인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그 낡은 아파트가 굳건한 가치를 유지하는 이유는, 그 입지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언젠가 내 땅이 새 아파트로 바뀔 거란 '재건축'에 대한 뚜렷한 기대수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의 투자용 주택은 상황이 다르다. 앞서 말했듯, 토지는 개인 소유가 불가하다. 따라서 어차피 70년 뒤면 국가에 반납해야 할 땅이고, 영원한 입지에 대한 확신도, 낡은 아파트를 싹 부수고 다시 지어줄 거란 재건축의 기대도 없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초거대 1선 도시의 핵심 요지가 아닌 이상, 정부 입장에서도 권리관계가 복잡해진 낡은 아파트를 부수고 보상금을 주느니, 그냥 외곽에 널린 빈 땅에 새로운 신도시를 올리는 게 비용적으로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인구는 우리보다 약 27배 많지만, 영토는 무려 96배나 넓다. 즉, 인구 밀도가 우리보다 3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굳이 내 돈을 들여 내부 인테리어를 고급스럽게 하거나 낡아가는 공용 공간에 돈을 바를 동기가 전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집값이 예전같이 오르지 않는 침체기에는 집에 추가적인 투자를 하는 것을 더더욱 꺼리게 된다. 시멘트 덩어리에 돈을 바를 바엔 차라리 새 아파트로 갈아타는 편이 낫다고 계산하는 듯했다.
(참고로 70년 토지 사용권이 만료되면 어떻게 되냐고 물었더니, 일정 비용을 내고 연장하는 식이라고만 들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중국의 부자들은 동네가 낡기 시작하면 그곳을 고쳐 쓰지 않는다. 새롭게 지어지는 신도시 신축 아파트로 우르르 옮겨간다.
한국의 부동산이 강남이라는 '입지 불변'의 성격을 띤다면, 중국의 부동산은 '입지 늘변(항상 변함)'에 가깝다.
내가 겪고 있는 칭다오만 해도 그렇다. 과거엔 구도심인 시남구가 최고 부촌이었지만, 현지 부동산 사장님과 중국인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칭다오의 부는 이미 잘 정비된 '라오산구'로 서서히 이동 중이라고 한다.
내가 머물고 있는 청양구 역시 20년 전만 해도 휑한 벌판에 공항 하나 덩그러니 있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물류와 유통이 발달하면서 우후죽순 아파트가 들어섰고, 지금의 거대한 신도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재건축이나 재개발보다는 끊임없이 외곽 신도시 구축을 장려하는 국가의 방향성이 피부로 와닿는 대목이다.
앞으로 10~20년 뒤에는 또 어느 새로운 빈 땅으로 부자들이 옮겨갈지 모른다. 영원한 불패의 입지란 찾아보기 힘들다.
땅도 내 것이 아니고 건물은 무서운 속도로 썩어가는데, 도대체 이 거대한 거품은 어떻게 유지되었던 걸까. 거기엔 기형적으로 꼬여버린 사회 문화적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식스 포켓'과 '후커우(호구)' 제도다.
마오쩌둥 시대의 인구 폭발을 잠재우기 위해 1970년대 후반 덩샤오핑 시절부터 강력한 '1가구 1자녀 정책'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지금의 중국 청년 세대는 친조부모, 외조부모, 부모까지 총 6명의 어른이 평생 모은 부를 독차지하는 구조가 되었다. 이를 이른바 '식스 포켓(Six Pockets)'이라 부른다. 이 막대한 자본이 단 한 명의 자녀를 위한 부동산과 교육으로 철저하게 몰빵 된 것이다.
게다가 중국은 거주지 제한 제도인 '후커우'가 워낙 강력하다. 한국에서는 굳이 집을 사지 않아도 합법적인 전월세 계약 후 전입신고만 하면 그 동네 학교에 아이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다르다. 좋은 학군에 속한 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키려면, 반드시 그 학군의 집(학군방, 學區房)을 '소유'해야만 우선순위가 주어지는 시스템이다. 6명의 어른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한 아이에게 쏟아지니, 중국의 학구열은 이미 한국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게다가 남자가 번듯한 집을 소유하지 못하면 결혼조차 성사되기 힘든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을 단단히 한다.
썩어가는 시멘트 덩어리라도 내 자식의 미래와 6명 어른의 노후를 갈아 넣어 사야만 하는 처절한 굴레다.
그렇게 치열하게 집을 사고 고학력자로 키워낸 결과는 어떨까?
중국의 1인당 평균 소득 수준을 감안해 보면, 현재 중국의 석사, 박사 비율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높다. 최근 베이징에서는 한 해 배출되는 '대학원 졸업생 수'가 '학부 졸업생 수'를 추월했다는 충격적인 기사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고성장 시대가 끝나고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실 이는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된 현실이기도 하다.)
결국 가방끈이 무색하게 배달(메이투안)이나 우버(디디추싱) 기사 등 블루칼라 노동으로 빠지는 고학력 청년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그 살인적인 스펙 경쟁마저 지쳐버린 이들은 결국 '탕핑(躺平, 평평하게 눕다)'을 선언해 버렸다.
집도, 결혼도, 취업도 포기한 채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하며 방에 누워버린 것이다. 이 거대한 사회적 무기력증은 치솟은 부동산과 숨 막히는 경쟁이 낳은 가장 아픈 부작용이다.
이곳의 부동산 생태계를 훑어보며, 나는 요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한국에서는 '내 땅 한 평' 갖겠다고 아등바등 살아왔는데, 여긴 애초에 내 땅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나라다. 그 사실을 처음 마주했을 땐, 내가 평생 누려온 자본주의의 그 당연한 소유권이 얼마나 대단한 자유인지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면... 글쎄.
'자유'라는 것이 단순히 내 명의의 땅문서를 쥘 수 있느냐의 문제인지, 아니면 그저 내가 길들여진 체계에 대한 막연한 익숙함인지 요즘은 정의 내리기가 참 어렵다.
자본주의라는 게임은 인간의 지독한 '이윤동기'를 철저히 이용해 돌아간다. 개인에게 땅을 온전히 소유하게 하고, 그것을 '자유'라 부르며, 서로 미친 듯이 경쟁하게 만든다. 반면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국가가 토지라는 가장 거대한 자본을 쥐고 판을 통제하며 룰을 강제한다.
표면적으로는 두 나라 모두 아파트라는 콘크리트에 미친 듯이 열광하는 똑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그 작동 원리를 들여다보면, 그저 국가가 만들어둔 '서로 다른 룰의 부루마불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다.
룰은 완전히 다르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의 체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영혼까지 끌어모아 베팅하고, 때로는 그 무게에 짓눌려 무기력하게 쓰러지는 모습은 어딘가 묘하게 닮아 있었다.
한국이라는 보드게임 판에서만 40년 가까이 주사위를 굴리던 내가, 룰이 완전히 다른 낯선 보드게임 판에 뚝 떨어져 겪고 있는 이 멀미.
당분간은 이 낯선 도시의 룰을 관찰하며,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상식들이 어떻게 뒤집히는지 지켜보는 것.
그것이 내 칭다오 생활의 가장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