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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오니스 Mar 05. 2022

정약용 18년 강진 유배의 시작. 사의재

정약용이 전하는 인생의 지침

강진 사의재 


전라남도 강진을 가기 위해 광주로 내려왔습니다. 광주에서 하룻밤 머물고 아침 일찍 유스퀘어로 이동합니다. 강진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찾은 곳은 사의재입니다. 사의재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 처음으로 머문 곳입니다.



유스퀘어에서 한 번에 강진까지 가는 경우도 있고, 중간에 나주를 거쳐 가기도 합니다. 제가 탄 버스는 강진까지 한 번에 갑니다. 내릴 때 버스표를 냅니다. 유스퀘어에서 1시간 20분쯤 달려 강진에 도착했습니다. 다산초당까지 가는 농어촌버스(시내버스)가 1시간 뒤에 있습니다. 터미널에 그냥 있을 수 없습니다. 터미널 부근에 갈만한 곳을 찾아갑니다. 


400m 정도 올라가면 영랑생가가 있다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영랑생가 입구에 오니 관광안내도가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 사의재가 있습니다. 이따 다산초당을 갈 예정이기에 사의재를 보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의재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사의재 가는 길에 강진군청을 지나갑니다. 강진군은 전라남도 남쪽 해남군, 장흥군, 영암군 사이에 있습니다. 인구가 4만 명이 안되는군요.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남도 답사 1번지로 강진이 소개되었습니다.     






강진경찰서 앞에 청자 장식에 눈길이 갑니다. 사의재 화장실에 세면대도 청자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려청자의 시작이 강진이라고 합니다. 강진의 토양이 청자를 만들기에 좋다는군요. 강진군 대구면에는 강진청자박물관이 있습니다.      






강진터미널에서 15분 정도 걸어 사의재에 도착합니다. 돌담이 있습니다. 강진에도 돌담이 많더군요. 돌담 안으로 초가집 2채가 있습니다. 정면에 보이는 것이 사의재입니다. 사의재(四宜齋)는 '네 가지를 마땅히 해야 하는 방'이라는 뜻입니다. 네 가지는 맑은 생각, 엄숙한 용모, 과묵한 말씨, 신중한 생각입니다. 






정약용은 정조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정조가 죽으면서 정약용은 정조 반대파에 의해 유배를 가게 됩니다. 강진에 도착했으나, 강진 사람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기거할 곳이 없던 그때 주막집 주모와 딸이 정약용을 맞이합니다. 정조는 사의재라 이름 짓고 머물게 됩니다. 지금의 초가는 당시 주막은 아니고 최근에 복원한 것입니다. 


정약용은 사의재에 머물면서 제자들을 지도합니다. 상례사전, 아학훈편의 등의 저술활동을 합니다. 사의재에서 4년을 머물다가 보은산방, 이학래집을 거쳐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사의재에 마루에 앉아 앞마당을 바라봅니다. 서울에서 강진까지 머나먼 유배길을 이어온 정약용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처음에는 맘을 잡지 못했을 것도 같습니다. 아무튼 정약용은 강진에서 18년을 머물게 됩니다. 강진에서 정약용은 자신의 사상을 완성해 갑니다.  






사의재 뒤 한옥체험관, 왼쪽 동상은 정약용을 도와준 주모와 딸입니다. 






사의재 구경을 하고 영랑생가로 향합니다. 영랑생가로 가는 길에 정약용이 살아온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그중에 '사의재기'가 있습니다. 사의(四宜)가 무엇인지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막상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사의재기를 읽으며 제 모습을 뒤돌아봅니다. 

   

사의재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 유배 왔을 때 처음으로 머문 곳입니다. 낯선 강진에서의 생활은 다산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어떻게 보면 초가집 하나일 수 있겠으나, 위대한 학자인 다산의 정신을 이해하는 출발점으로서 찾아가볼만한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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