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특이한가?

보통이 없는 세상을 꿈꾸며

by 왜가리







한강진 파란 네모 공연장 죽순이를 하면서 알게 된 유명한 도넛 가게가 있다. 인스타그램에 공연 사진을 올릴 때마다 공연장 해시태그를 달았었는데, 인기 게시물에 공연장 사진보다 그 가게의 도넛 사진이 더 많이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배우들의 일상에도 그곳의 도넛이 종종 등장하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몇 날 며칠을 벼르다가 종일반(낮 공연, 밤 공연을 연달아 보는 일)을 하던 날 사이 시간에 들러보았더니 대기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다행히 테이크아웃은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마저도 인기 제품은 이미 다 팔리고 남은 것이 얼마 없었다.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직접 먹어보니 바로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햄버거만 한 커다란 사이즈며 그 안에 가득 찬 진한 크림의 풍미, 도넛마다 붙은 이름에 충실한 재료들까지 냉장고에 가득 채워두고 먹고 싶은 그런 맛이었다.


공연이 없는 지금도 종종 그곳에 들러 도넛을 산다. 집이 멀어 자주 가지 못하니 갈 때마다 여섯 개들이 박스를 가득 채워서 돌아온다. 그 날은 대충 주워 입은 꼴로 조조영화를 보고 돌아가는 길에 이곳의 도넛을 먹고 싶은 마음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고민이 됐다. 가게에 가면 항상 화려하고 세련된 젊은이들이 트렌디하게 인테리어 된 공간 속에서 이 맛있는 도넛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쩐지 재투성이 같은 꼴로 들어가기가 민망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칼로리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나의 체구와 가장 큰 상자를 꽉 채워 구매하는 것까지, 가게의 인테리어만큼이나 멋지고 세련된 직원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좀 신경이 쓰였다. 먹순이로 살아가며 면전에 "돼지"라고 말하는 듯한 시선을 자주, 또 오래 받다 보니 겪는 오래된 고충이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고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지만, 쌓여온 경험들은 아직도 종종 욕망에 솔직하는 것에 제동을 건다. 그러나 창피한 건 잠깐이고 그 맛이 주는 행복은 크다. 이제는 얼굴도장을 익힐 만큼 자주 가는 것도 아니니 괜찮겠지, 하면서 도넛을 주문했다. 마스크 뒤에 얼굴을 숨길 수 있는 것도 용기에 한몫을 보탰다.













그런데 물건을 받고 돌아서는 기분이 좀 이상했다. 햄버거만 한 도넛을 8개나 샀는데 봉투에 담지 않은 채 상자 두 개만 건네받은 것이다. 환경에 부담을 줄이고자 되도록 봉투를 거절하곤 했지만 오늘은 주문 내내 한 번도 "아니오"를 말하지 않았다. 봉투 oo원인데 필요하세요? 소리도 듣지를 못했다. 나는 말한 적이 없는데, 내가 봉투를 거절할 것을 어떻게 아셨지?


봉투를 거절하는 손님이 많지 않아서 인가? 이전에도 같은 가게에서 봉투를 거절했는데도 담아주시기에 빼 달라고 한 게 한번, 귀찮아서 그냥 받아간 일이 한번 있었다. 봉투값을 계산하지 않고도 습관처럼 담아주실 만큼 대부분의 손님이 일회용 봉투를 사용한다는 뜻이겠지 하며 씁쓸해했었다.


혹시 화려한 마스크 때문인가? 핑크색에 빨간 장미가 가득 그려진 내 마스크는 오페라의 유령 내한공연에서 크리스틴을 맡았던 배우 클레어 라이언이 한국업체와 손을 잡고 판매를 시작한 마스크로, 아직까지 한국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아 쓰는 사람이 한정적이다. 무늬도 색상도 화려해, 무대에서 배우들이 알아볼 정도였다. 같은 이유로 팬 친구들은 마스크 구매를 망설이기도 했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에는 너무 눈에 띄어서 부담스럽다는 것이었다. 나는 '누가 나를 신경 쓴다고?' 하며 매일같이 애용했는데, 나도 모르는 새 강한 인상을 심은 것 같았다.







요즘 나의 최애 마스크 The Masque co. 의 잉글리시 로즈







아니면 설마, 비만한 체형으로 고칼로리 도넛을 한 번에 잔뜩 사가서 그런가? 종종 이상한 것이 빵이나 도넛, 아이스크림 같은 고칼로리 식품을 파는 곳에서 비만한 체형을 가진 사람, 특히 그런 여성을 마주친 적이 없다. 물론 그 한 명이 나여서 일수도 있지만, 왜 두 명은 없단 말인가? 단순히 우연이라고 하기엔 우리 사회에 비만한 여성을 향한 혐오가 얼마나 짙던가. 뭘 먹을 때마다 '그러니까 살이 찌찌', '살만 빼면 예쁠 텐데'라는 말과 그런 시선을 숨 쉬듯 받으며 살아온 비만한 여성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식욕을 돈으로 계산해야 하는 도넛 가게의 문턱은 그 칼로리만큼이나 높다. 스스로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후부터 내가 원하지 않는 시선들에 흔들리지 않으려 노력해왔지만, 점원이 나를 기억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비만하기 때문인가?' 생각할 만큼, 사회적 학대를 받아온 것이다.


찜찜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도넛 한 개를 먹어치웠다. 도넛은 여전히 맛이 있었고,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는 것으로 환경도 지켰다. 점원을 붙잡고 물어보지 않는 이상 이 날 일의 답은 절대 모른다. 봉투에 담아달라 해놓고 순간 잊어버린 나의 착각일 수도 있고, 단순히 본인 업무에 충실했던 점원의 친절일 수도 있다. 어쩌면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심각하게 생각하는 내가 제일 문제 일 수도 있다. 단 하나 내가 바라는 것은, 내가 추리(?) 한 것들이 특별하지 않은 것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환경을 위해 봉투 사용을 줄이는 것이 모두의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고, 각양각색의 마스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비만한 여성이 도넛을 사면서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 평균이 없고, 보통이 없고, 일반적인 게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실천하고 신념을 지켜가는 것이 유별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내가 나다워지는 일이 가장 특별하면서도 가장 보통의 일이 되기를 바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