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 입기

마지막 한장은 벗지 않기로 해요

by 왜가리

도쿄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시절, 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향해 달려가다가 좌회전을 하던 트럭에 퉁, 부딪혀 나가떨어지고 만 것이다. 나는 분명히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횡단보도에서 3~4미터쯤 떨어진 맨홀 뚜껑 근처에 쓰러져있었다. 머리가 아스팔트 바닥에 부딪히던 순간, 아주 짧게 정신을 잃었던 것 같기도 했지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것 말고는 의식이 아주 말짱했다. 지나가던 행인이 일으켜 주며 괜찮냐 묻는 말에도 평소처럼 괜찮다 대답했고, 스스로의 두발로 일어나 떨어진 소지품을 주웠다. 다만 머리를 부딪힌 것이 걱정이 되어 행인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가 검사를 받았다. 두피에 아주 큰 혹이 생기고 손가락 뼈에 금이 가긴 했지만 큰 이상은 없다는 소견이었고, 그 길로 경찰서에 들러 조서를 썼다. 그때까지 차에서 내려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은 운전자가 괘씸하긴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운전자도 갓 스무 살을 넘긴 어린 청년이었다. 나만큼이나 그이도 무서워서 그랬으려니. 보상만 받으면 상관없다 연락처를 남기고 나오는 길에 경찰 아저씨가 “자전거는 다 망가져서 폐기 처분해야 할 것 같아.”라고 말했다. 아저씨가 들고 나온 나의 빨간 자전거는 트럭 앞부분의 모양새를 본뜬 것처럼 기역자로 휘어 다시는 탈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자전거가 나 대신 모든 충격을 흡수하고 숨을 거둔 것은 아닐까.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으로 자전거 대신 경찰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는 미뤄두었던 피로감이 쏟아져, 하루 종일 답답했던 바지만 벗어놓고는 바로 쓰러지듯 잠이 들었더랬다.


눈을 뜨니 사방이 온통 어두컴컴한 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러운 사고로 몸도 마음도 많이 놀랐던 모양이었다. 일단 방에 불을 켜야겠다, 생각하며 바닥을 짚고 일어나다가 나는 휘청 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이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어지럼증이 몰려와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다시 한번 일어났다가 풀썩, 또 한 번 풀썩.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아침의 사고로 머리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책과 드라마에서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은 후 아무렇지 않은 듯 멀쩡하다가 수일 후 죽어버린 캐릭터들이 수십 명 떠올랐다. 나도 그렇게 죽는 건가, 이 작은 방 안에서 혼자? 일어서려는 시도가 다섯 번째 실패했을 때, 이대로는 안 되겠다, 구급차를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머리맡에 두고 잔 휴대전화를 손에 쥔 순간 퍼뜩, 내가 바지를 입고 있지 않다는 것이 떠올랐다.


안돼, 지금 죽더라도 속옷 차림으로 죽고 싶지는 않아! 구급대원들에게 티셔츠에 속옷 차림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니, 창피한 건 죽어도 싫었던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바지를 입어보려 했지만. 이대로 누워서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바지에 손이 닿지 않았다.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도움을 청해야 해. 병원에 가기 전에 바지를 입혀줄 사람을 찾아야겠다. 하지만 이제 대학생활을 시작한 지 고작 1년, 가까이에 사는 친구들 중에는 바지를 벗은 모습을 보여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전화 한 통에 한걸음에 달려와 줄 가족도, 친척도 없다. 휴대전화 속에 단 한 명, 오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에서부터 10년을 넘게 알던 친구. 친구는 내가 살던 곳에서 전철로 2시간도 넘게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지만, 지금 일본에 있는 사람 중에는 유일하게 내 속옷 차림을 보여도 괜찮을 사람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바지 좀 입혀줘! 바지 좀! 아무도 읽지 않는 메시지만 공허하게 남았다.


눈물이 났다. 동경에 와서 그 어느 때 보다 절망적인 외로움을 느꼈다. 이렇게 나약한 순간에, 혼자 두발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이 순간에 아무도 곁에 없다는 것이. 익숙했던 내 방의 새하얀 천장조차 두렵게 느껴졌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정말 이대로 죽으면 어떡하지? 그렇게 아무도 내 시신을 발견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혼란스러운 내 머릿속과는 다르게 방안에는 고요한 정적만이 흘렀다. 아주 무겁고,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정적이었다. 절망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구급차를 불러야겠다. 죽을 만큼 창피하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한국과 같은 번호 119를 누르자 여성분이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세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럴 수가.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어지럼증이 일본어로 무엇인지 몰랐던 것이다.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기 때문에, 온갖 병명이며 증상에 대한 일본어를 줄줄 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딱 하나, 어지럼증이 무엇인지를 배운 적이 없었다. 어지럼증을 느끼는 사람은 대부분 병원에 가기 때문이었다. 일본 생활 3년 차, 일본어 잘한다는 소리를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 필요한 단어 딱 하나를 모르니 다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상이기 때문에 손짓 발짓도 전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한참을 어어, 으음 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 건너편에서 무슨 일이세요? 괜찮으세요? 하며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쩌지, 어쩌지 고민하다 그 순간 퍼뜩 떠오른 단어를 외쳤다. “구루구루! 텐죠가 구루구루 시마스!”(빙글빙글! 천장이 빙글빙글해요!)

그 순간의 내 다급함을 가장 빠르게 전해줄 내가 아는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다행히 나의 엉망진창 일본어가 통한 모양인지, 접수원이 어지럽다는 말씀이시죠? 하고 되물어왔다. 듣고도 무슨 말인지 몰라 나는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다. 천장이 빙글빙글해요! 머리가 빙글빙글해요! 몇 번을 되물어도 같은 말만 반복하는 내게 지친 듯 상대방은 “예 알겠습니다, 구급차를 보내겠습니다.”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이제 어떻게든 될 것이다. 이 방에서 홀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구급대원들을 기다리며 바닥을 등으로 기어가서 가까스로 바지를 입었다. 다행이다. 일어서지는 못해도 등으로 기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속옷 차림을 보이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다. 누군가 나를 구하러 와줄 거니까 다행이다. 몸이 건강할 때는 몰랐던 절망이었다. 가족과 함께 할 때는 몰랐던 안도감이었다. 모국어를 쓸 때는 몰랐던 당혹스러움이었다. 혼자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외로움 말고도, 고독 말고도, 도움이 절실한 순간에 혼자서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구나.


나의 어지럼증은 병원에서도 원인을 알지 못했고, 그 이후로도 지속되어 한 달 후에나 퇴원할 수 있었다. 교통사고 이후에 원인 모를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꽤 있다고 했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온몸을 흔들고 간 충격은 흔적을 남기기 마련인 듯하다. 그렇게 퇴원 한 후로 나는 절대 속옷 차림으로 잠들지 않았다. 병이나 증상에 대한 일본어 공부에도 신경을 썼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혼자서도 괜찮을 수 있도록. 적어도 바지를 입지 못해 누군가를 찾아야 하지는 않도록.


10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친구는 바지 입었니? 하는 문자를 보내오곤 한다. 밉지 않은 그 잔소리는 그 날 달려와 주지 못한 친구의 걱정 어린 마음이었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지금, 혹시 같은 일이 생기더라도 곁에서 도와줄 가족이 있지만, 언제나 마음의 다짐처럼 되새긴다. 바지를 입자. 꼭 어디가 아파서 실려가야 할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언제나 준비된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일수록 더더욱. 요즘은 부끄러운 생각, 잘못된 생각을 남에게 드러내는 것을 바지를 내린다, 영혼의 바지를 내렸다고 한단다. 내가 그렇게 영혼의 바지를 내리고 있을 때, 그 바지를 올려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있더라도 당장 달려와 올려줄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바지를 입는다는 것은 남에게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을 가려야 한다는 의미이고, 언제든 도움을 받고 소통할 수 있는 준비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앞으로의 인생에 예상치 못한 수많은 일들이 또 기다리고 있겠지. 그 모두에 대비할 수는 없겠지만, 마지막 바지 한 장은 꼭 입어두기. 그렇게 다짐하며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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