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스티드 게코도 집사를 두나요?
지난여름, 아파트 단지 내에 열린 장터에서 크레스티드 게코 한 마리를 입양했다.
장터를 무심히 둘러보던 아들이 매대 위에 놓인 어린 게코를 보자마자 걸음을 멈추고 내 소매를 끌어당겼다.
옅은 베이지색과 크림색이 섞인 새끼 게코가 둥글납작한 투명 플라스틱 통 안에서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내가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고 우물거리자 아들 얼굴이 점점 달아올랐다. 초조하고 애가 닳는지 내 입만 올려다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팔다리를 출렁출렁 흔들었다.
아이가 조른다고 때맞춰 급여가 필요한 다리 달린 생물을 집에 들일 생각은 없었다.
아이의 흥미라든가 호기심이 한 김 식으면 뒤치다꺼리는 결국 내 몫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다.
그러나 야행의 습성을 가진 그것이 뙤약볕 아래 마땅히 피신할 데도, 적절히 운신할 수도 없는 플라스틱 통 안에서 눈꺼풀이 없는 눈알을 작은 혀로 초조하게 핥는 것을 보니 마음 쓰였다.
판매업자조차 암수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어린놈이었다. 길이 5cm, 무게 10g이나 될까.
우린 게코 사육이 처음이라 판매자에게 이것저것을 물었지만 그는 자꾸 “괜찮아요.”, “상관없어요.”라고 말했다. 기껏해야 혈통도 모르는 작은 파충류일 뿐인데 살아도 죽어도 그만이지 뭐가 대수냐는 걸까.
그는 크레스티드 게코를 죽일 만한 사람이면 어떤 식물도, 심지어 선인장도 기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단언했고, 나는 왠지 무안해서 더 묻고 싶은 말을 그대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나는 불안과 의구심, 약간의 후회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속절없이 기뻐했다. 여섯 살. 부모라는 깊은 산 아래 복잡다단한 걱정이 없어서 예쁘고 그래서 짠한. 불완전하고도 완전한 ‘아이라는 세계’.
덜컥 객식구를 집안으로 들이고 난 뒤에야 남편의 반응이 걱정되었다.
그는 짙은 숲 냄새를 머금은, 묵직한 고목 같은 사람이라 화를 좀처럼 내진 않지만 나는 그의 기분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 그가 불쾌해하면 왠지 시무룩해지기 때문에 그의 기분을 날씨 예보처럼 살피곤 한다.
다행히 남편 반응은 덤덤했다. 게코가 본래 제가 살던 따뜻하고 햇살 좋은 뉴칼레도니아와는 거리가 먼 어두컴컴한 인공 번식장에서 알을 깨고 나왔을 생각에 마음이 상했을 뿐 우리에게 그 다친 마음을 올려두고 탓하진 않았다.
그는 아이에게 이왕 데리고 왔으니 게코가 자연사할 때까지 책임지고 사육해야 한다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15년. 크레스티드 게코의 평균 수명이라고 한다. 소화력이 약해 먹이는 이틀에 한 번만. 단백질이 섞인 건조된 무화과 가루를 물에 되직하게 개어 청포도 사탕만 한 급여통에 조금만 준다. 적정 사육 온도는 24도. 습도가 높은 환경을 좋아하니 하루에 두세 번 분무기를 분사해 사육통 안을 촉촉하게 만들어 준다.
나는 판매업자가 알려주지 않은 정보를 유튜브에서 찾아보고 아들과 남편에게 공유해 주었다.
아들은 게코의 이름을 하양이라고 지었다. 직관적으로 지었다기엔 전혀 하얗지 않은 외양이지만 크면서 하얘질 것 같아서 하양이란다. 뾰족한 입과 가는 꼬리와 다르게 이름에 동글동글한 운율이 느껴져서 웃음이 났다.
봄꽃이 지고 숲의 초록이 더 짙어지면 하양이가 우리 집으로 온 지 1년이 된다.
제법 눈빛도 또렷해지고 뼈도 단단해지고 실루엣도 분명해진 느낌이다.
마음을 서로 주고받을 수 없는 파충류지만 날짜를 계산해 먹이를 주고, 집을 청소해 주고, 적정 온도라든가 습도를 살피다 보니 처음 들일 때와는 다른, 없었던 마음이 생긴다.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식물에도 마음이 쓰이는데 하물며 내가 주는 밥을 기다리는 생물은 말해 무엇하랴.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이 그들을 마땅히 가족으로 품는 마음을 나는 이제 이해한다.
얼마 전 좋은 옷을 살 수 있는 돈으로 하양이의 비바리움을 샀다.
천연숯을 가공하여 만든 백스크린, 코코넛 그루터기, 최적의 은신처가 될 최고급 인공 나뭇잎과 줄기, 덩굴로 이어진 도마뱀 펜트하우스!
하양이를 새집에 놓아주자 이제야 악몽에서 깨어나 다행이다 싶은 얼굴로 펄쩍 뛰어 나뭇잎 뒤로 숨어버렸다.
남편은 하양의 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너도 나랑 비슷한 처지구나.'
나는 이게 무슨 의미인가, 생각하면서도 그의 슬프고 외로운 마음이 어느새 내게도 번져서 남편의 등을 쓸어내렸다.
하양이는 그렇게 우리에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