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게 산다고 양심도 소박할까?
그날은 뭐 때문에 신이 났을까, 아니면 화가 난 날이었을까.
회사 출입문 앞에서 우편물 박스를 카트에 싣는 걸 보고, 우체국까지 차로 데려다주겠다며 시동을 거는 회사 동료에게 나는 쉬어가는 숨도 아깝다는 듯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동료는 운전에 집중하랴 내 말을 흘리지 않으랴 애를 쓰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복직을 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없던 애사심이 솟아나고 근로 의욕이 마음을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일 때다.
흥분의 역치가 낮아서 작은 자극에도 팝콘처럼 팡팡 튀어 오르던 때다.
똑바로 서도 기마자세가 되는 무릎 발사형 추리닝과 분유 토냄새가 진동하는 티셔츠 바람으로 아기를 안고 업고 2년 가까이 집 안팎을 서성이다가 회사로 복귀하니 흑백의 세상이 알록달록한 컬러로 전환된 것 같았다.
단정한 셔츠와 재킷을 입고 구두를 신은 내 모습이 근사해서 버스에 오를 때도 허리를 곧추세웠고, 어깨에 ‘나 성실‘ 을 얹고 구두소리를 또각또각 내며 바로 걸었다.
근무 환경이라든가 근무 조건은 바뀌지 않았는데 내가 바뀌니 아침 출근길을 기다리고, 퇴근길이 매일 새롭게 행복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것은 오직 마음에서 지어낸다는 ‘일체유심조‘가 이런 것이구나, 깨닫고 감탄했다. 비록 알록달록 효과는 3개월이었지만.
동료는 전방 주시를 한 채 내 말에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래요?’라고 답했는데, 나는 몸을 완전히 운전석 방향으로 틀어 그에게 더 깊은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과하게 제츠서를 했다.
차는 우회전을 해서 작게 코너를 돌았다.
직선거리로 100m를 더 가면 우체국에 닿을 참이었다.
코너를 돌 때 아주 가까운 데서 하지만 바깥에서 가벼운 물체가 낙하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뭐 떨어지는 소리 나지 않았어?”
“그러게요. 툭-소리? 뭐지?”
나는 툭- 낙하하는 소리를 듣고 회사 주차장에서 동료와 우편물 박스를 나눠 들고 트렁크에 싣던 5분 전으로 돌아갔다.
손이 어쩐지 허전해서 비어있는 양손을 펴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없는 호주머니를 뒤지듯이 바지 옆춤을 더듬었다. 지금 손에 쥐고 있어야 할 지갑과 핸드폰이 없다.
어?
어!
동료와 박스를 같이 들기 위해 잠깐 차 지붕 위에 지갑과 핸드폰을 올려두었는데 까맣게 잊어버리고 차에 탄 것이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흥분하면 간단한 일도, 단순한 일도 제대로 못하는 멍청이다. 흥분하면 비가 쏟아지는 날 베란다 창문을 닫을 줄도 모른다.
나는 동료에게 호들갑을 떨며 차를 세워달라고 했고 왔던 길을 질주해 차가 코너를 돌았던 곳으로 돌아갔다.
없다.
코너의 ㄴ자를 몇 번씩 오가며 연석 아래, 보도블록 위, 쪼그려 앉아 하수구까지 내려다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핸드폰은 복직하면서 새로 산 아이폰 최신형이고, 지갑은 남편이 내 기를 세워준다고 사준 선물이라 나는 둘 다 꼭 찾고 싶었다.
사람씩이나 돼서 무슨 정신으로 사는가 싶어 하얘진 머리를 쥐어뜯으며 그 자리를 뱅뱅 돌았다.
이 자리에서 분명히 떨어졌는데 없다면, 아무것도 없다면 누가 가져간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불과 몇 분 만에 이 자리에 아무것도 없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는 막연한 의심을 품은 채 코너 옆자리에서 노점상을 하는 가게 주인을 바라보았다.
이른 책망이었을까, 반쯤은 확신한 의심이었을까.
만두, 떡볶이, 꽈배기, 찐빵, 도나쓰, 고로께. 포장 가능.
매대 아래에 기다랗게 달아놓은 빛바랜 노란색 플래카드가 간판을 대신했다.
높다란 흰 주방장 모자를 쓴 주인의 눈이 내 눈과 마주쳤다. 우린 잠시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혹시 핸드폰 떨어뜨리셨어요?”
“네! 보셨어요?” 나는 혀 끝에 울음을 매단 채 급히 대답했다.
그는 허리에 두른 앞치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내게 건넸다.
“아까 폐지 줍는 노인이 핸드폰 주웠다고 나한테 주더라고. 찾으러 오면 주라고. 요 밑에 도로가에 떨어졌었나 본데?”
나는 코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굽혔다.
“근데 혹시 지갑은 못 보셨어요?”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그의 까만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지만 그는 재차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그의 단단한 입매와 높다랗게 솟은 흰 모자에서 그의 교양이라든가 자존심을 느끼고서 그가 거짓말을 할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지갑에 아이 계좌에 넣어주려고 명절마다 모은 현금이 꽤 많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양심은 종종 현실 앞에서 무력해지니까.
나는 발바닥에 커다란 껌이 붙은 것처럼 천천히 몸을 돌려 회사 방향으로 발을 틀었다. 의심으로 개운치 않은 마음이 발길을 자꾸만 붙들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두어 번 고개를 돌려 가게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정신 사납게 음식 위에서 뱅뱅 도는 파리를 우아한 손짓으로 쫓아내며 가게를 지나치는 행인들을 텅 빈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핸드폰이라도 찾았으니 다행이라고 마음을 다독였다.
누가 쓰든 돈은 필요한 사람이 썼겠거니,
아니 그 노점 주인이 그간 밀린 월세를 내는 데 썼거나 폐지 줍는 노인이 쌀을 사는 데 썼다면 그만이라고 마음을 쓰니 흥분이 금세 식었다.
다음 날 출근하면서 부서 우편함을 열어보니 지갑이 있었다.
지갑이 하루 만에 돌아왔다. 지갑은 밤새 노숙을 했는지 물에 젖어 퉁퉁 불어있었다.
나는 기쁜 마음보다도 놀라고 황당한 마음에 지갑을 들고 관리실로 달려갔다.
“이거 혹시 관리장님이 넣어두신 거예요?”
“아, 그거 주차장에 떨어져 있더라고. 밤새 비를 맞아서 다 불어 터졌는데 어떡해? 가죽인가 본데.”
“찾은 게 어디예요.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지갑을 열어보니 돈도 그대로, 주민등록증, 신용카드도 그대로. 손 하나 대지 않은 채로 그대로였다.
차 지붕 위에 지갑, 핸드폰을 겹쳐서 올려두었는데 주차장에서 차를 출발하면서 지갑이 바로 떨어졌고, 떨어진 자리에 누가 다른 차를 세워서 발견할 수 없었던 것.
그리고 저녁때 그 자리에 세워둔 차가 빠지면서 밤새 비를 맞았고, 아침에 출근한 관리인이 떨어져 있는 지갑을 열어 신분 확인 후 우리 부서 우편함에 넣어둔 것이다.
나는 왜 쉽게 의심했을까.
순수한 마음으로 그를 의심하고 포기하고 이해했을까.
소박한 삶을 사는 이라고 그의 양심 역시 소박할 것이라고 짐작했을까.
나는 부끄러워 그에게 잊힌 얼굴이 되고 싶어서 며칠을 묵힌 뒤에 그의 가게를 찾았다.
설탕이 묻은 꽈배기와 고기만두를 한 봉지씩 샀다.
그는 나를 알아봤을까?
나는 그에게 미안하다든가 고맙다든가 이런저런 말을 하지 못하고 많이 파세요,라는 말만을 남긴 채 뛰듯 걸어 회사로 돌아와 동료들과 만두와 꽈배기를 나누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