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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도

세종시에서 우린

by ondo

2019년은 내게 특별한 해다. 처음이자 유일한(아마도) 아이를 출산한 해고, 남편과 주말부부를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어느 때보다 육아 파트너로서의 협력이 필요한 때 남편은 본사로부터 보건복지부로 파견 근무 발령이 났다.

출산 후 쪼그라든 호르몬 탓에 베이비 블루스(baby blues)를 겪을 때고, 친정 엄마의 보살핌으로 육아가 뭔지 뭘 모를 때라 나는 남편을 따라 세종시로 가겠다고 우겼다.

첫아이인데 가족이 매 순간 함께 하지는 못할 망정 1년 넘게 한 달에 두어 번 본다는 상황을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의 옥수수 알갱이 같은 첫니가 올라온 순간,

온 방구석을 기어 다니다 돌연 일어서서 시야를 넓히는 난데없는 순간,

우연히라도 입술을 모아 엄마, 아빠라고 처음 말하는 순간을 그와 함께 하고 싶었다.


아이가 태어난 지 5개월이 조금 지났을 무렵 우리는 세종시의 정부 청사 인근 오피스텔에서 월세살이를 하며 첫아이의 육아를 하게 되었다.

미닫이문으로 구분해 놓은 거실과 방(1.5룸), 소방청 맞은편 대로 옆 11평짜리 오피스텔.


세종시에 내려간 첫날 나는 이 도시가 영화 세트장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같은 공장에서 나온 조립품처럼 늘어선 직사각형의 회색 건물들, 간판은 걸려있지만 문 닫은 식당과 카페들, 다니는 사람 하나 없이 한산한 대로.

건물은 가로수만큼 많고, 도로는 정체를 허락하지 않을 만큼 크고 넓은데 사람이 없었다.

가끔 지나가는 행인은 영화 스태프가 아닌가 싶어서 나는 다음 컷에 등장하는 주인공 트루먼이 된 기분이었다.


남편과 함께라면 뭐든 해나갈 수 있다는 씩씩하고 긍정적인 마음 한구석에 그늘이 드리워진 날이, 애석하게도 첫날이었다.


나는 평일 11시 30분, 점심을 먹기 위해 건물에서 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공무원들을 베란다 창밖으로 내려다볼 때,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도시의 안녕을 느꼈다.


남편은 유령도시 같은 이곳에서도 허덕였다.

시간에, 사람에 쫓겨 다녔다.

주말에도 상사가 부르면 군말 없이 나가야 했고, 평일엔 아이가 잠들고 한참 뒤에야 집에 돌아왔다.

나는 집에 무사히 돌아온 그에게 불 꺼진 방에서 텅 빈 눈으로 ’오늘 잘 지냈어? 수고했어.‘라고 소리 없는 안부를 건넸다.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한 자리에서 잠이 들뿐, 그뿐이었다.

여기서 이방인 같은 존재지만 서로의 등을 다독이고 할 수 있다고, 잘하고 있다고 보듬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매일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아기띠를 한 채로 식재료를 씻고, 다듬고, 찌고, 갈고… 매 끼니 새로운 이유식을 준비하는 건 괜찮았다.

식탁 앞에 선 채로 오후 2시 첫 끼니를 라면으로 급히 때울 때 잠에서 깨어난 아이가 내 다리를 붙잡고 안아달라고 울부짖을 때도 괜찮았다.

동네 카페에 들러 후루룩 성급히 마시는 커피 한 잔에, 아이를 재우고 마시는 차가운 맥주 한 잔에 하루의 수고를 감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빠가 아이가 크는 순간을, 한 집에서 함께 하지 못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면서도, 이해하면서도 슬픈 나의 감정까지는 통제하기 어려웠다.


슬픈 마음이 꽉 차서 찰랑거리면,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무작정 아이를 유아차에 태우고 보건복지부까지 걸어갔다.

세상에 항의하듯이 화가 난 사람처럼 큰 발걸음으로 뛰듯 걸으며 유아차를 밀었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급히 달려 나온 남편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10분.

남편의 커다란 눈에 미안함과 서글픔, 체념 같은 여러 감정이 휩쓸린 채 스쳐갔다.

그는 아이를 위해 밥벌이를 하지만 밥벌이를 하느라 아이를 위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나는 10분 ‘면회‘를 마치고 그의 등을 쓸어내리며 ‘수고해’ 하고는 다시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그 자리 그대로 발을 붙이고 서서

시야에서 우리가 점이 될 만큼 작아질 때까지 우리를 눈에 담았을 테지만 나는 마음이 약해질까 봐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숨이 차게 걸었다.

뺨에 흐르는 눈물을 한 번씩 옷소매로 훔치며 괜찮다고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나를 다독였다.

자기 연민에 빠지는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아서 ‘다 호르몬 때문이야.’라고 속으로 말했다.

눈앞에 오피스텔이 보이자 다리 힘이 풀려서 포플러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다.

아이는 잠들어있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끝없이 지나가는 차들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불빛들이, 사람들이 밤의 어둠 속으로 녹아서 사라졌다.


나는 이 도시에 받아들여진 사람인가,를 생각했다.

나는 잘 울지 않는데 남편을 그렇게 이상한 방식으로 보고 온 날엔 어김없이 눈물이 났다.

소매로 닦다가 어쩐지 부끄러워서 아이 가제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냈다.

그때 아기가 깨어나 온몸을 비틀며 칭얼거렸다. 나는 아기를 안아 들고 엉덩이를 토닥였다. 한 손으로 유아차를 밀고 오피스텔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옆 건물 1층 빵 가게 문이 열렸다. 문에 걸린 종이 흔들리며 딸랑딸랑 소리를 냈다.

허리에 앞치마를 두른 나이 든 여자가 커다란 종이봉투를 들고 내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저기, 이거 집에 가서 드셔보세요. 오늘 만든 건데 저희 문 닫을 때 돼서. 지금 제일 힘들 때에요. 한 번씩 여기 유모차 끌고 가는 거 봤는데. 혼자 얼마나 힘들까. 지금이 제일 힘들 때에요. 돌 지나면 좀 낫고, 두 돌 되면 더 괜찮아져요. 힘내세요. 다 지나가요.”


여자는 아이의 볼을 쓰다듬으며 방긋 웃더니 내 등을 가볍게 토닥여주고는 몸을 돌려 가게로 들어갔다.


나는 염치도 없이 한번 사양하지 않고 빵이 잔뜩 든 봉투를 받아 들고 고맙다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목소리가 떨렸다.

우는 걸 남에게 보이기 싫어서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잠시 서있었다.


이 도시에서 사는 사람 중 누군가는 나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고,

언젠가 응원의 말을 해줄 시간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 도시에서 받아들여진 사람이었다.

사람은 결국 사람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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