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요. 한라봉을 받아주세요.
개인적으로 연고가 있거나 가족이 사는 것도 아닌데 나는 매년 제주도를 간다.
사람들이 함부로 내 마음을 손톱으로 움켜쥘 때, 계절의 분기점에서 달력을 넘길 때, 신제주성당 앞에 핀 신부의 부케 같은 벚꽃나무를 보고 싶을 때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제주의 봄 여름 그리고 가을, 겨울.
제주에 매년 가봤자 단 며칠을 머무르는 ‘육지것’이니 특별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계절은 없다.
벽지에 들꽃처럼 번진 곰팡이에 한숨 쉴 일도, 침대 위에 똬리 튼 지네를 볼 일도 없으니.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비가 한나절 내린다 해도 내 안의 소음이 묻혀 고요한 가운데 머무르니 좋고,
오선지 같은 동네의 윤곽이 무거운 눈 아래에 사라져도 그 핑계로 방구석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제주의 겨울을 창으로 멍하니 들여다볼 수 있으니 좋다.
1월이라고, 8월이라고 제주에 가기를 망설일 땐 없었다. 언제나 한 자리에 머무르는 제주를 좋아한다. 사계절은 제주를 지나갈 뿐이다.
결혼을 하고 남편에게 제주를 소개해 주고 싶었다. 내게 특별한 이 섬을 함께 경험하고 싶었다.
차갑고 물기 없는 바람이 매서운 겨울, 남편과 나는 회사에 휴가를 내고 일주일간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우린 결혼하고 오랜 시간 아이가 없어서 차에 여권을 두고 다니자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언제나 충동적으로 지금 당장 어디든 떠날 준비를 했다.
비행시간에 상관없이 가장 싼 표를 예약하고, 작은 차를 렌트하고, 에어비앤비에서 구옥을 빌렸다.
우리가 빌린 집은 단독주택으로, 해안도로와 인접한 바닷가 마을 어귀에서 코너를 돌자마자 보이는 키가 낮은 촌집이었다.
어른의 허리 높이쯤 되는 돌담 안으로 자그마한 마당이 딸려있고, 차를 마시거나 간단히 밥을 먹을 수 있는 파란색 테이블이 마당 끄트머리에 놓여있었다.
남편이 집안으로 들어갈 때 고개를 푹 수그렸다. 제주는 거센 바람이 많이 불어 지붕이 낮은 것일까, 집이 마치 겁먹은 아이처럼 땅에 잔뜩 웅크리고 앉아있는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지붕을 받치는 서까래가 갈빗대처럼 드러나있었다. 어쩌면 여기에서 오랜 시간 밥해 먹고 아이 낳고, 부엌과 마당을 종종거리며 살던 노인이 돌아가신 뒤 손주가 차마 이 집을 부수지 못하고, 뼈대라도 남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우리는 짐을 거실 구석에 몰아놓고 저녁 장을 보러 집을 나섰다. 근처에 하나로마트가 있었다.
우리는 누가 봐도 여행객이었다. 제주에서 일을 하고 밥을 먹고사는 사람들의 표정엔 오늘도 무사히 넘겼다는 단단함과 안도감이 입가에 스며있었지만 우리의 얼굴은 가벼운 바람에 나풀거리는 흰 종이 같았으니까.
라면을 사고, 라면에 넣을 전복 한 팩을 사고, 햇반 몇 개와 맥주, 생수를 카트에 넣었다. 매대에 탑처럼 쌓아놓은 한라봉과 조생귤도 한 봉지씩 넣어 담았다.
마트가 숙소와 가까워 언제든 올 수 있는 거리니 장을 보는 데 품을 많이 들이진 않았다.
남편이 양손에 장거리를 들고, 나는 그보다 두어 걸음 앞장서 걸으며 주차된 차로 향했다. 마트에 올 때만 해도 텅 빈 주차장이 차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 차 양편에도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장 본 봉투를 뒷자리에 놓을 생각으로 차문을 열었다. 주차 칸이 좁아 차문을 옆 차 문에 닿지 않게 조심스럽게 열었는데 무슨 조화인지 ‘때맞춰’ 부는 짧은 돌풍에 밀려 잡고 있던 차문을 손에서 놓쳤다.
쾅-
나는 평소에 문콕을 하지 않도록 좌우에 주차가 되어있는 좁은 공간에서는 내 몸을 최대한 구겨서 문밖으로 나온다. 남편은 부딪치는 것만 아니면 살짝 닿을 정도로 열어도 된다고 하지만 혹시 나오다가 문콕이 될까 봐 아예 닿지 않게끔 문을 연다. 그런데 운이 없게도 바람이, 하필이면 그때 바람이 불어 문을 놓친 것이다.
“어떡해.”
남편이 뒷좌석에 장거리를 놓다가 쾅 소리를 듣고 토끼눈이 되어 나를 보고 ‘피해 차량’에 시선을 돌렸다.
“조심하지.”
“아니, 내가 안 닿게 하려고 틈을 조금만 벌렸는데 그때 바람이 불었어.”
나는 내가 말하면서도 어쩐지 변명 같아서 머쓱해졌다. 남편의 속마음은 알지 못 하나 그때 그의 눈은 왜 하필 그때 바람이 불었겠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 서러웠다. 진짠데.
나는 차주의 연락처를 차 앞유리에서 발견했고, 전화를 걸었다. 두어 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신호만 가고 받질 않았다.
“어떡하지? 전화기 안 갖고 나오셨나? 마트 주차장이니까 장 보러 오셨겠지. 좀 기다려 볼까? “
우리는 목을 빼고 끊임없이 여닫히는 마트 자동문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주차장에서 20여분을 기다렸다.
그러나 주위 차량이 모두 빠질 때까지 차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전화를 두어 번 더 해보고, 마트에 방송을 청해 보기로 했다.
“차량번호 xxxx 차주 분 마트 내에 계시면 잠시 고객센터로 와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평소 주차 문제로 방송한 경험이 많은지 마트 직원은 능숙하게 마이크를 잡고 차량번호를 몇 차례 불렀다. 우리는 그 직원 옆에 서서 차주가 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런데 차주라고 나타나는 사람은 없었다.
“장 보러 온 사람이 아닌가? 다시 나가볼게.”
나와 남편은 번갈아 주차장과 마트 안을 오갔다. 마트에 온 후로 1시간 가까이 지나 사위가 어둑했다.
그때 남편에게 전화가 왔고, 차주와 그의 아내가 건물 계단을 내려와 밖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전화 많이 하셨는데 죄송합니다. 저희 지인이 요 위층 뷔페집에서 잔치가 있어서 거기 참석하느라 전화 왔는지 몰랐어요. 음악소리가 워낙 커서.”
남편과 나는 고개를 연신 숙이며 죄송하다고, 문을 열다가 찍혀서 차가 긁혔다고 배상해 드리겠다고 말했다.
“에이, 제 차 똥차라서 흠집 난 거 눈에 띄지도 않아요. 여기저기 다 흠집 투성인데 거기 문콕 하나 여기 문콕 하나 거기서 거기고, 똥차는 똥차라서. 괜찮습니다. 진짜 괜찮아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 드려서 저희가 죄송하네요. “
나는 속으로 보험 처리를 하지 않고, 현금으로 배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터라 차주의 ‘똥차’ 소리에 조금 놀랐다. 아무리 똥차라도 문콕을 한 사람에게 도리어 미안하다니. 제주사람의 정은 이런 것인가. 나는 사람에게 정을 주지 말아야지 싶은 순간을 매번 겪으면서도 이런 사람들 때문에 다시 정을 느끼고 내 마음도 내어주게 되는 것이다.
“그럼, 이거라도 받아주세요.”
나는 뒷좌석에서 한라봉이 가득 담긴 봉투를 그에게 건넸다. 차주의 아내가 싱긋 웃으며 쑥스러워하는 차주 대신 그 봉투를 받아 들었다.
“잘 먹을게요. 고맙습니다.”
우린 그렇게 헤어졌고, 남편은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게 말했다.
“근데 여보 그거 8만 원어치도 넘는다. “
“에이, 무슨.”
“진짜야.”
“아… 다행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