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를 가벼운 마음으로 나갈 수 있는 계절은 누구에게나 좋은 계절이다.
6월. 여름의 초입.
모기 회피제라든가 긴바지, 팔토시, 챙이 넓은 모자, 얼음물을 준비하고, 또 뭐가 빠졌나 거실을 분주히 오가며 가방을 챙기지 않아도 가뿐히 나들이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장마가 끝나고 대담한 빛이 하늘 중앙에서 정수리에 내리꽂듯 쏟아지면 진짜 여름이 시작된다.
지난해 여름을 생각하면 겁이 난다.
작년 8월 말이었나, 9월 초였던가.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완전히 항복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름 손님,
이만하면 되지 않았나요?
그래요, 당신 여름 맞아요.
충분히 당신의 존재를 증명했고, 우린 당신을 인정합니다. 훌륭해요.
그러니 이제 그만 돌아가시고 다음에 다시 오세요.
영업 마감 시간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더울 거라는 예보가 들린다. 어떻게 그보다 더 더울 수 있을까.
이젠 조상들이 김장으로 겨울나기를 준비하듯, 그런 마음가짐으로 여름을 대비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든다.
땅을 기고, 나무 기둥을 오르고, 꽁지에서 나온 실에 대롱대롱 매달린 벌레들은 우리와 나들이를 동행하는 친구가 되지만 흡혈로 종족 번식을 하는 날벌레가 옷과 피부의 틈을 노리기 시작하면 나들이 가는 마음이 가볍지 않다.
비장한 마음으로 단단히 준비해서 나가야 한다. 뭐랄까. 장마 전까지는 기꺼이 나가는 마음이지만 녹음이 검푸르게 짙어지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가는 마음이 된다.
나무에 귀를 대고 수액이 흐르는 소리를 찾고, 폭탄먼지벌레 꽁무니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는 일곱 살 아이가 집에 있으니까 한여름에도 애미 애비는 나간다.
12월에도 손톱만큼의 틈이라도 창문을 열고 자야 하는, 더위에 취약한 남편은 매번 더위를 먹으면서도 아이와 여름 나들이를 동행한다.
너를 사랑한다고 애써 말하지 않아도, 그게 사랑이 아니면 뭘까.
아이는 여름이 제일 좋다고 말한다. 땅과 하늘에 사는 그 모든 것이 생동하는 시기라서.
생물의 종류도 많고, 사이즈도 크고, 물고기나 개구리, 고둥 같은 걸 잡을 때 소매나 바짓단이 젖어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좋은 때니까.
6월이 되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물기를 머금은 눅눅한 바람이 불기 전에 좀 더 많은 생물을 찾고 관찰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오늘도 숲으로 들어간다.
오늘은 뒷다리, 앞다리가 나온 아기 개구리와 하늘소를 찾았다.
그리고 집에서 키우던 넓적사슴벌레 수컷을 참나무에 놓아주었다. 나무 기둥에 붙여주었더니 나무 밑동 부엽토 아래로 몸을 숨긴다.
땀을 식히려고 잠시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았는데 아들이 점심밥을 차려주겠다며 기다리라고 한다.
넓적한 돌을 옮겨 밥상을 만들고, 도토리받침에 밥을 담고, 작은 돌 위에 샐러드며 김치, 시금치나물을 올려두었다.
얇은 나뭇가지를 주워 젓가락을 나란히 놓고 소박한 밥상을 차렸다.
“밥 다 됐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냠냠”
나는 아이가 차려준 밥상을 받고 슬며시 미소가 나는 걸 거두고, 밥을 먹는 데 열중했다.
“밥이 고슬고슬 잘 됐네요. 시금치나물은 제 입에 간이 딱이에요.”
아이의 어깨가 봉긋 위로 솟는다.
애가 우리에게 밥상을 차려주고, 틈만 나면 까르르 웃고, 내 손을 놓칠세라 발을 동동거리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아이의 성장 호르몬이 왕성해지면 우리와 거리를 두고 싶어질 테니까, 방문을 꼭 닫고 제 사적 공간으로 들어가는 게 아주 중요한 일이 될 테니까.
나는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해져서 다가올 7월이나 8월도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것이다.
시간과 존재의 유한함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올 여름손님을 맞이하는 자세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