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3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예언자의 임무을 계획하셨고, 예레미야의 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을 때, 처음부터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신이 아직 어리다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거절하는 예레미야에게 2가지 환상을 보여주신다. 하나는 살구나무 가지이고, 하나는 끓는 솥이다.
살구나무는 이스라엘에서 봄의 첫 징조로, '지켜보다' 혹은 '깨어나다'를 뜻하는 사카드(saqad) 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이제 막 꽃이 피어나는 살구나무 가지는 이제 막 소명을 받는 예레미야의 모습과 닮아 있어 보인다. 우리의 소명은 무엇일까? 끊임 없이 생각해보게 된다. 음악과 글쓰는 일에 소명을 받았다고 여기므로, 선한 영감을 담아 곡과 글을 쓰고 있다. 음악과 글로부터 살아가는 의미를 느끼고, 타인과 세상에 긍정적인 기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예레미야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예언자의 소명이 예정되어 있었듯이, 사람은 선천적 개성대로 살아내는 것이 소명을 이루는 일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개성대로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많은 경우 개성대로 살아내지 못하고, 경제적 압박 혹은 사회적 기대에 의해 형식화되고, 보편적인 안정성을 따라 살아간다.
소명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위태로워 보일지라도 아름답다. 꽃이 피어나는 살구나무 가지는 살구나무의 개성이자,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이지만, 세상에 아름다움이라는 의미를 채워준다. 꽃은 살구나무가 바라는 일이면서도, 세상에게 봄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로 세상도 바라는 일이다. 예레미야는 끓는 솥이라는 심판의 상징이 예언된 이스라엘 속에서도 음란하게 우상숭배 하지 않고, 자신을 지켜낸 아름다운 신부이다.
소명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위태로워 보일지라도 열정적이다. 불 붙은 떨기나무에서 소명을 받은 모세는 불처럼 열정적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애굽인을 죽일 정도로 미성숙했지만 불 같은 정의감이 있었으며, 돌판에 율법을 받아 내려오는중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돌판을 부수고 불 같이 분노한다. 불 같은 열정은 결국 거룩한 분노로 이어졌다.
꽃핀 살구나무처럼 아름다운 소명에 대해 예레미야는 어리다고 거절하고, 불 붙은 떨기나무처럼 열정적인 소명에 대해 모세는 말을 잘 못한다고 거절한다. 꽃핀 살구나무와 불 붙은 떨기나무를 보면, 소명은 어쩌면 능력과 무관할지 모른다. 능력이 부족한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신다. 살구나무의 어원처럼, 지켜보시고 깨어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모든 능력이 완벽하게 준비되어서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더욱 필요하다. 시련을 통해 강해지고, 성숙해진 소명자들의 영웅서사가 더욱 필요하다. 여전히 흔들리고 덧없는 32살의 봄을 이겨내야 하는 내게, 소명의 서사와 그 결말은 소망이다. 그러니 꽃처럼 아름답고, 불처럼 열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