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핌 Mar 19. 2022

11. 제주도로 향하는 발걸음

10년간의 제주 이주의 여정, 다시 시작

서문


2022년 새해가 밝아오는 아침, 문득 제주에 온 지 10년이나 됐구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대로 두면 잊힐 것 같아, 지난 10년간의 제주 이주의 여정을 남겨 보기로 하였습니다.


1부에서는 2012년 제주에 홀로 여행을 왔다가 친구와 함께 제주살이를 결심하게 되기까지의 일들과, 여러 사건들로 인해 다시 제주를 떠나야 했던 일, 그리고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며 느꼈던 당시의 감정들을 담아 보았습니다.


2부에서는 다시 제주로 돌아오게 되는 험난한 여정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온전히 정착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아 보려 합니다. 위기의 순간은 강한 기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자칫 제주 이주의 여정이 힘든 일만 있었던 것처럼 비칠 수도 있으나, 힘든 고난 속에서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제주도의 자연으로부터 마음의 위로를 받았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듯 옆에 있었기 때문에 표현하지 않아도 위로가 되었던 그 시절 제주의 모습을 함께 추억하길 바라며 미흡한 글에 오류가 있더라도 너그러이 이해 바랍니다.


제주 이주, 상상을 현실로! 1부




혼돈의 시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14년, 아직 토지가 D와 공동명의였을 무렵의 일이다.

D와 함께 토지의 이용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고민하고 있었다.


이대로 그냥 방치한다.

대출을 받아 집을 짓는다.

땅을 팔고 떠난다.


나는 서울에 D는 제주에 살며 이미 '그냥 방치한다' 상태였고, 그 상태로 계속 두는 것이 좋을지, 다른 방법을 찾아볼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제주도 이주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출을 받아 집을 짓는 것이 가장 유력한 방법으로 떠올랐고 친구와 뜻을 모아 대출을 알아보기로 하고 은행과 약속을 잡은 후 제주도로 향했다.


대출을 알아보러 제주도에 도착했을 당시, D는 우리 땅과 200여 미터 거리의 제주 시골집에 살며 남자 친구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고, 땅은 텃밭을 일구며 마을 사람들에게 빌려주기도 하였으며, 농막 컨테이너에서는 친구들과 모여 캠핑장으로 이용을 하며 제주도에서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서울로 떠나 있는 사이 많은 것이 달라져 있던 것이었다.

D는 이미 제주도민이 되어 그 속에서 적응하며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었다. 오히려 오랜만에 방문한 내가 객 식구이자 손님이었으며, 현 상황을 벗어나고자 집을 짓자고 의견을 내는 것은 나만의 이기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편으로는 또 다른 생각도 들었다.

나는 서울에 살고 있는 채, 대출을 받아 공동명의의 땅에 집을 짓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나와 D가 사는 집이 아니라, D와 그의 남자 친구가 사는 집이 될 터였다.

서울에서 돈을 벌어 D와 남자 친구가 살게 될 집에 대출금을 갚는다? 셋이 살 큰 집을 짓는다? 어떻게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서울에, D는 제주도에 살게 되면서 둘 사이에 '공동'이라는 말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일단, 대출을 취소하고 집을 짓는 것을 보류하기로 했다.

땅을 팔아야 할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토지분할


얼마 후, D는 전화로 결혼 소식을 전하며 자신만의 집을 짓겠다고 하였다.

갑자기 멍.. 해졌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결혼을 축하한다는 인사도 잊은 채 구체적인 계획을 물었지만, 공동명의의 땅이라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는지 자신만의 구상을 통보하듯 이야기하는 친구에게서 약간의 서운함을 느꼈다.


한참의 고민 끝에 지인들의 조언을 참고하여 토지분할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찌 되었든 공동으로 투자한 땅이었으니 절반으로 나누어 각자 원하는 바 대로 하면 되는 것이었다.

토지 분할을 이야기하는 내게 D는 마당이 좁아진다는 둥 마치 내가 자신의 땅을 빼앗는 사람 마냥 불만을 터트렸다. D의 이야기만 들으면 나는 친구 관계에서 내 이익만 챙기는 나쁜 사람처럼 여겨졌다. 그렇다고 집을 짓던 캠핑을 하던 텃밭으로 쓰던 D 마음대로 하라고 나의 권리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처음 매매 당시부터 토지 분할을 하였으면 깔끔했을 텐데 여러모로 미숙했던 탓이다. 그저 '내 탓이오'를 외치며 현 상황을 원만하게 수습해 보기로 하였다.

하지만, 토지 분할의 요구가 D에게는 서운함으로 다가왔는지 유쾌하지 않은 논쟁으로 서로 감정만 상하게 되었고, 어떠한 확답도 받지 못한 채 통화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D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땅을 팔자는 것이었다. 이랬다 저랬다 속을 알 수 없으니 혼란스럽고 답답했다. 나는 처음 말한 대로 토지 분할의 의견을 밀고 나갔다. 토지 분할을 하고 나면 D가 집을 짓던, 땅을 팔던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며 나와 의논하지 않고 혼자 마음대로 하면 되는 것이기에 그 편이 훨씬 좋다고 생각했다. 결국 D도 받아들이고 토지분할을 하기로 합의했다.


그렇게 결정은 했으나, 차일피일 서류 작업을 미루던 D는 또다시 분할을 못하겠다며 연락이 왔다. 분할을 하지 않고 한꺼번에 팔아야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데 나 때문에 제 값을 못 받는다는 주장이었다.

전체 240여 평, 분할하면 120평의 토지였다. 당시 작은 평수의 땅이 집을 짓기 좋아 더 잘 팔리던 때였으니 D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더 이상 휘둘리기 싫어 일단 분할 후 마음대로 하라며 서류를 요청했으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이제는 마냥 기다리고 있지 않기로 했다. 제주에서 D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하는 수밖에.

제주시청 민원센터에 토지분할에 대한 문의를 하고 필요 서류를 위해 제주도로 향했다. D에게 토지분할 합의서를 받는 게 먼저였다. D는 전날까지도 바빠서 시간이 없다는 둥 이런저런 핑계를 늘어놓았기 때문에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을 가득 안은채 제주도로 향했다. 다행히 D를 만나 그간의 투자비용과 대출 관련 내용들, 분할에 관한 합의 사항을 작성한 문서에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넌 참 추진력이 좋아'라며 빈정대는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이후 진행은 순조로웠다. 제주시청에 전화로 팩스로 신청할 수 있는 서류들을 처리하고, 분할을 위한 측량을 마쳤고, 법무사 사무실에 세금과 토지대장을 정리하는 일을 의뢰하였다.

그렇게 모든 사전 작업을 마치고 최종적으로 본인 서명을 위해 법무사 사무실에서 다시 D와 마주 앉았다.

우리는 최종 사인을 하고 토지 분할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드디어 절반이지만 나만의 온전한 땅이 되었다.



서로의 이기심


몇 개월 후 D는 토지를 팔고 제주시내로 이사를 간다며 소식을 전해 왔다.

분할의 경계에 있던 비닐하우스는 철거되었고, 농막 컨테이너 만이 남았다.


나중에 D에게서 땅을 매매한 돈으로 수익이 좋다는 투자회사에 위탁을 했다가 사기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투자회사의 속닥거림에 넘어가 돈을 확보하기 위해 땅을 팔라며 그렇게나 나를 들볶았던 것이었다. 문득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던 끝에 자신의 남편이 나를 싫어한다고 알려주는 D를 더 이상 편안하게 대할 자신이 없어 그 후로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당시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나의 입장에서 나의 기억에 의해 쓰인 것이라, 친구의 기억 속에는 또 다른 서운함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나로서는 D의 입장을 알 수 없으니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려는 것도 아니요, 그저 그 시절 미숙했던 모두의 잘못이며 각자의 입장에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애써 이해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한번 어색해져 버린 사이까지 다시 어쩌진 못하였으니, 그간 함께한 즐거웠던 추억이 참으로 아쉬울 뿐이다.




위안


서류 작업을 위해 서울과 제주를 부지런히 오가면서, 렌터카 없이 버스와 택시로 이동을 해야 했지만 그 덕에 제주의 아름다운 길과 더 가까이 만날 수 있었다.

비행기 시간이 많이 남은 어느 날에는 탑동의 편의점에 들려 병맥주에 빨대를 꽂아 시름을 달래기도 하였다. 맥주를 쪽쪽 빨아 마시며 제주도의 자연과 마주하고 앉아 있으면, 답답하고 짜증 났던 일이 모두 싹 날아가는 듯했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제주도로 향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 1편부터 정주행

https://brunch.co.kr/brunchbook/andjeju0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