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제주 이주의 여정, 다시 시작
제주 이주, 상상을 현실로! 1부
대출을 알아보러 제주도에 도착했을 당시, D는 우리 땅과 200여 미터 거리의 제주 시골집에 살며 남자 친구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고, 땅은 텃밭을 일구며 마을 사람들에게 빌려주기도 하였으며, 농막 컨테이너에서는 친구들과 모여 캠핑장으로 이용을 하며 제주도에서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서울로 떠나 있는 사이 많은 것이 달라져 있던 것이었다.
D는 이미 제주도민이 되어 그 속에서 적응하며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었다. 오히려 오랜만에 방문한 내가 객 식구이자 손님이었으며, 현 상황을 벗어나고자 집을 짓자고 의견을 내는 것은 나만의 이기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편으로는 또 다른 생각도 들었다.
나는 서울에 살고 있는 채, 대출을 받아 공동명의의 땅에 집을 짓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나와 D가 사는 집이 아니라, D와 그의 남자 친구가 사는 집이 될 터였다.
서울에서 돈을 벌어 D와 남자 친구가 살게 될 집에 대출금을 갚는다? 셋이 살 큰 집을 짓는다? 어떻게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서울에, D는 제주도에 살게 되면서 둘 사이에 '공동'이라는 말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멍.. 해졌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결혼을 축하한다는 인사도 잊은 채 구체적인 계획을 물었지만, 공동명의의 땅이라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는지 자신만의 구상을 통보하듯 이야기하는 친구에게서 약간의 서운함을 느꼈다.
한참의 고민 끝에 지인들의 조언을 참고하여 토지분할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찌 되었든 공동으로 투자한 땅이었으니 절반으로 나누어 각자 원하는 바 대로 하면 되는 것이었다.
토지 분할을 이야기하는 내게 D는 마당이 좁아진다는 둥 마치 내가 자신의 땅을 빼앗는 사람 마냥 불만을 터트렸다. D의 이야기만 들으면 나는 친구 관계에서 내 이익만 챙기는 나쁜 사람처럼 여겨졌다. 그렇다고 집을 짓던 캠핑을 하던 텃밭으로 쓰던 D 마음대로 하라고 나의 권리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토지 분할의 요구가 D에게는 서운함으로 다가왔는지 유쾌하지 않은 논쟁으로 서로 감정만 상하게 되었고, 어떠한 확답도 받지 못한 채 통화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D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땅을 팔자는 것이었다. 이랬다 저랬다 속을 알 수 없으니 혼란스럽고 답답했다. 나는 처음 말한 대로 토지 분할의 의견을 밀고 나갔다. 토지 분할을 하고 나면 D가 집을 짓던, 땅을 팔던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며 나와 의논하지 않고 혼자 마음대로 하면 되는 것이기에 그 편이 훨씬 좋다고 생각했다. 결국 D도 받아들이고 토지분할을 하기로 합의했다.
이제는 마냥 기다리고 있지 않기로 했다. 제주에서 D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하는 수밖에.
제주시청 민원센터에 토지분할에 대한 문의를 하고 필요 서류를 위해 제주도로 향했다. D에게 토지분할 합의서를 받는 게 먼저였다. D는 전날까지도 바빠서 시간이 없다는 둥 이런저런 핑계를 늘어놓았기 때문에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을 가득 안은채 제주도로 향했다. 다행히 D를 만나 그간의 투자비용과 대출 관련 내용들, 분할에 관한 합의 사항을 작성한 문서에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넌 참 추진력이 좋아'라며 빈정대는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이후 진행은 순조로웠다. 제주시청에 전화로 팩스로 신청할 수 있는 서류들을 처리하고, 분할을 위한 측량을 마쳤고, 법무사 사무실에 세금과 토지대장을 정리하는 일을 의뢰하였다.
그렇게 모든 사전 작업을 마치고 최종적으로 본인 서명을 위해 법무사 사무실에서 다시 D와 마주 앉았다.
우리는 최종 사인을 하고 토지 분할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드디어 절반이지만 나만의 온전한 땅이 되었다.
나중에 D에게서 땅을 매매한 돈으로 수익이 좋다는 투자회사에 위탁을 했다가 사기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투자회사의 속닥거림에 넘어가 돈을 확보하기 위해 땅을 팔라며 그렇게나 나를 들볶았던 것이었다. 문득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던 끝에 자신의 남편이 나를 싫어한다고 알려주는 D를 더 이상 편안하게 대할 자신이 없어 그 후로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당시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나의 입장에서 나의 기억에 의해 쓰인 것이라, 친구의 기억 속에는 또 다른 서운함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나로서는 D의 입장을 알 수 없으니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려는 것도 아니요, 그저 그 시절 미숙했던 모두의 잘못이며 각자의 입장에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애써 이해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한번 어색해져 버린 사이까지 다시 어쩌진 못하였으니, 그간 함께한 즐거웠던 추억이 참으로 아쉬울 뿐이다.
서류 작업을 위해 서울과 제주를 부지런히 오가면서, 렌터카 없이 버스와 택시로 이동을 해야 했지만 그 덕에 제주의 아름다운 길과 더 가까이 만날 수 있었다.
비행기 시간이 많이 남은 어느 날에는 탑동의 편의점에 들려 병맥주에 빨대를 꽂아 시름을 달래기도 하였다. 맥주를 쪽쪽 빨아 마시며 제주도의 자연과 마주하고 앉아 있으면, 답답하고 짜증 났던 일이 모두 싹 날아가는 듯했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제주도로 향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 1편부터 정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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