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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핌 Mar 23. 2022

12. 제주도, 장거리 연애

10년간의 제주 이주의 여정, 다시 시작

새로운 인연


제주도를 떠나와 서울과 제주도를 오가며 삶의 밸런스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던 시간, 제주도의 아련한 꿈을 미뤄두고 서울의 외로운 밤을 살아 내기 위해 나는 방구석을 빠져나왔다.


요가를 다니고 경락을 받으며 몸을 만들어 나갔다.

홍대의 새로운 댄스 동호회에 가입을 했다.

강남으로 드럼을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다이빙 동호회를 따라 강원도로, 울릉도로 다이빙을 떠났다.

쉽 없이 나를 불태우며 도심의 한가운데로 밀어 넣었다.


그중 홍대의 댄스 동호회는 운동을 위한 선택이었다.

오래전 살사를 배운 적이 있었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고 싶어 시간과 요일이 맞는 동호회로 선택을 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춤을 추고 뒤풀이를 하며 다시 수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 갔지만 왠지 모를 공허함은 항상 마음속 깊이 존재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아닌 내 사람, 연인이 필요했던 것일까?


2013년 여름밤.

에어컨으로 감당이 되지 않는 댄스바의 열기 속 우리는 서로에게 이끌리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30대 중반의 나이, 당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결혼 적령기가 훨씬 넘었기 때문에 일단 연애를 시작하면 곧 결혼으로 이어져야만 한다는 인식들이 있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때이다.

나는 비혼 주의 까지는 아니었지만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에 결혼의 부담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연애는 OK, 결혼은 글쎄.. 같이 살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할 수도 있겠지'

나에게 결혼에 대해 물어보면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나보다 4살 위였던 오빠는 스스로 '독신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는데,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지 10년이 넘었다고 했으니 어느 날 갑자기 독신주의자가 된 사람은 아니었다.


이런 두 사람이 만났으니, 서로 결혼에 대한 부담 없이 연애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민을 꿈꾸는 자


토지 분할 사태가 일단락되고(11화 참조), 제주도의 땅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차에 오빠와 함께 제주도로 가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해 보기 시작했다.


오빠의 꿈은 쿠바 이민이라고 했다.

쿠바는 아니지만 아름다운 섬나라 제주도로 이민을 가는 건 어떨까?

언제부터인가 이런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돌아가겠다며 제주도를 드나들고 있던 나였으니, 함께 제주도 이민을 생각하게 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년간의 연애를 거치며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고, 어느 순간 제주도에서 함께 살기로 결심을 했다. 일산과 성남을 오가는 장거리 연애도 함께 살고 싶다는 결정에 한몫을 했던 것 같다.


집을 떠나 둘이 함께 살면 '동거'가 되려나?

아직은 보수적인 우리 사회에서, 부모님을 납득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형식으로 우리는 '결혼'을 선택하기로 했다. 결혼에 회의적인 두 사람이었지만, 함께 살기 위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결혼을 해서 제주도로 간 것이 아니라, 제주도에 함께 살기 위해 결혼을 선택했다.


결혼의 형식만 빌렸기 때문에 결혼식은 큰 의미가 없었다.

결혼식은 최소한으로 간소하게 하기로 하고, 결혼식이 아닌 함께 제주도로 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선발대


일단, 제주도에서 함께 살기 위해서는 살 집 마련과, 생업이 필요했다.

이번에도 예산은 여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가능한 여러 가지 대안들 중에 작은 컨테이너 주택을 짓고 민박업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2015년 8월의 여름, 오빠의 옥탑방 원룸이 비워지고, 우리는 작은 승용차에 짐들을 싣고 완도로 향했다.

완도의 해산물 가득한 한상으로 육지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다음날 제주행 배에 올랐다.


이렇게 큰 배는 처음이라는 오빠는 약간의 들뜸과 긴장감을 안은채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육지를 떠나는 여운을 오래도록 감상하고 있었다.



함께 하는 제주 여정의 첫 시작이라 생각해서 일까, 제주항에 도착하여 차를 내리는 순간이 왠지 특별하게 다가왔다. 미리 계약한 함덕의 한 달 살기 집에 짐을 풀어놓고 산적해 있는 숙제들은 미뤄둔 채 제주도의 관광지를 돌며 여행을 즐겼다.


하지만, 제주 입도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잠시, 며칠 뒤 오빠만을 남겨 둔 채 나는 출근을 위해 다시 서울로 올라와야만 했다. 바로 퇴사를 할 수 없어 회사일을 병행해야 했기 때문에 온전한 이주가 아닌 반쪽짜리 이주였다. 나는 다시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완전한 이주를 위한 준비를 하나씩 마무리해 나갔다.


홀로 제주에 남겨진 오빠는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며 고군분투 애쓰고 있었다.

함께 살기로 했는데, 그 준비가 우리를 더 멀리 떨어트려 놓았다.

D-DAY 11월 28일까지 3개월간 우리는 생 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2주에 한번,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제주도에 가기 위해 시간을 쪼개어 비행기에 올랐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도, 우리는 맛집으로 오름으로 데이트를 하며 여행을 다녔다.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제주공항에서 이별을 할 때면 오빠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곧 다시 보게 될 텐데도 홀로 남겨질 외로움에 우리는 손발 오그라 들도록 유난을 떨었다.


다행히 그 시절의 손발 오그라드는 로맨스는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 1편부터 정주행

https://brunch.co.kr/brunchbook/andjeju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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