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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핌 Mar 25. 2022

13. 험난했던 집짓기

10년간의 제주 이주의 여정, 다시 시작

목수란 무엇인가?

목수 | 木手 | Carpenter

직업으로서 나무를 다루어 집을 짓거나 각종 가구 및 도구를 만드는 사람. 작은 의미로는 나무만을 가공하는 사람이지만, 큰 의미로는 나무 이외의 건축도 포함한다. 집을 짓는 목수의 경우 건축기사 같은 개념이다. [나무 위키]


내가 생각하는 목수는 나무를 다루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집을 지으려고 알아보니 목수는 집을 짓는 전반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개념을 잘 몰라 의사소통에 오류가 있기도 하였다.


나는 제주도에서 처음 만나게 된 목수와의 끔찍한 인연으로, 자신을 목수라고 소개하는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고, 경우마다 다르기 때문에 섣부른 일반화는 문제가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목수를 믿지 않게 되었다.




컨테이너 주택


제주도 이주를 위한 여러 고민 끝에 우리는 컨테이너 주택을 짓고 민박업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은 하나씩 우리 손으로 해야만 했다.


먼저 관할 읍사무소를 찾아 관련 허가사항을 체크하고, 건축설계사무소를 찾았다.

엑셀로 그린 나의 도면을 전달하고 용도에 대한 상담을 받은 후 도면 작업을 의뢰했다.

컨테이너 주택이기 때문에 네모난 박스 하나 그리는 것인데도 견적이 꽤 나와 읍사무소에 문의하니 반드시 자격증이 있는 건축설계사가 그려야 한다고 하였다.

설계를 하여 짓는 집도 아니고, 다 지어진 컨테이너 주택을 사 오는 것인데도 설계비를 받는 이상한 구조였지만, 어쩌겠는가 법이 그렇다는데 따를 수밖에.


컨테이너 주택을 제작하기 위해 제주도 업체들도 알아봤지만 당시에는 다들 창고처럼 보이는 것들뿐이었다.

예쁜 미니 주택을 원했던 나는 인터넷으로 수많은 업체를 검색하고 사진을 찾아보며 전화를 돌린 끝에 한 업체를 선정하고 제작을 의뢰하기 위해 대전으로 향했다. 전화나 서면으로 계약을 해도 됐지만 그래도 내 눈으로 한 번 더 확인을 하기 위해서였다.

홀로 대전에 도착하여 현장에서 제작되는 컨테이너들을 확인하고 제주도까지 배송여부와 가격을 협상하고 3X6 짜리 3개의 컨테이너 주택을 주문하였다. 떨리는 손으로 사인을 하고 한 달 뒤 완성될 집을 상상하며 행복 회로를 돌려댔다.


다음 단계는 컨테이너 주택이 완성되기 전 토목공사였다.

토지를 정비하고 정화조 설치, 전기설비, 수도 연결 등 해결해야 할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컨테이너 주택을 올리기 위한 토목공사 견적을 알아보니 비용이 상당하였다. 두 곳의 견적을 받고, 몇 군데 더 견적을 받기 위해 알아보던 중 바로 옆 토지가 팔리며 곧 건축공사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하여 옆집으로부터 공사 업자를 소개받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문제적 목수이다.


그는 자신을 목수라고 소개하며 우리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자, 사람 좋은 웃음으로 위장하고 이런저런 구조에 대해 의욕적으로 의견을 내며, 재료비와 인건비만 주면 옆집의 공사가 시작되기 전 짬을 내어 작업을 해 주기로 약속을 하였다.

땅을 다지고 컨테이너가 올라갈 자리만 만들면 되는 단순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무슨 큰 문제가 발생할까 싶어 의심 없이 사람을 또 믿어 버렸다.

건축공사 표준계약서를 작성하긴 했지만 사업등록증도 내지 않았던 사람이니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내 심장도 쿵


시작부터 매끄럽지 않았다.

일을 시작하기로 한 날짜는 한참 지났는데 비가 온다며, 다른 곳에 일이 있다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컨테이너 완성 날짜가 임박해서야 공사가 시작되었다. 옆집 공사 시작 전 마무리를 해준다고 하였는데, 옆집과 동시에 일을 시작하게 된 상황이었다. 알고 보니 우리 집과 옆집 말고도 일을 봐주는 곳이 한 곳 더 있었다.

세 곳의 일을 한꺼번에 하니 일정은 더딜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컨테이너 완성일까지 토목공사가 끝나지 않으면 어쩌나 매일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목수는 작업한 사람과 일수를 기록한 작업일지를 보내오며 바로바로 재료비와 인건비의 정산을 요청했다. 목수는 일반 일꾼 인건비의 1.5배나 되었는데, 특별히 다른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딜 가나 기술자·관리자의 인건비는 일반 노가다 보다는 비쌌기 때문에 기술자 인건비라고 생각했다.

인건비 하나라도 아끼자며 오빠는 한 사람의 일꾼이 되어 그 작업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 계획은 땅을 평탄화하고 시멘트를 부은 바닥에 바로 컨테이너를 올릴 생각이었다. 목수는 반드시 기둥을 세워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집 짓는 것이 처음인 우리는 목수가 구조적으로 이게 맞다고 강하게 주장을 하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목수의 말에 따라 컨테이너를 올릴 네 개의 둥근기둥이 세워졌다.

나는 컨테이너 업체와 직접 연락하여 정확한 사이즈를 확인 후 기둥을 세우라며 연결해 주었는데, 그게 나중에 화근이 되었다.


지반을 다진 후 컨테이너를 올려놓을 자리에 철근을 엮고 기둥을 세워 시멘트를 부었다.

정화조와 수도 전기를 연결하기 위한 관도 뽑아 놓았다.

어찌어찌 컨테이너가 들어오기 전까지 작업이 완성되었다.


D-Day 우리는 들뜬 기분으로 3개의 컨테이너 주택을 기다렸다.

대형 화물트럭에 실린 색색의 집들이 도착을 하고 크레인으로 컨테이너가 들어 올려지는 순간,


쿵!


크레인에서 방금 도착한 집 한 채가 떨어지고 말았다.



손이 벌벌, 눈앞이 캄캄, 너무 놀라 순간 뭘 해야 할지 앞이 아득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천만다행으로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처음부터 불안했던 그 고물 크레인이 말썽이었던 것이다.

목수는 자신의 크레인으로 컨테이너를 직접 옮길 수 있다고 하였는데, 그가 가지고 나타난 크레인은 작동하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낡아 있었다. 나는 반신반의하면서 여러 차례 확인을 했다. 그는 문제없다며 거뜬히 옮길 수 있다고 장담을 하였다. 작업자가 하는 말이니 나는 또 당연 스래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나의 염려대로 크레인의 줄이 끊어지면서 집은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하는 수 없이 급하게 다른 크레인을 불러 부서진 컨테이너를 옮겨 놓고, 나머지 두 개의 집을 옮길 수 있었다. 나머지 집을 옮기는 것도 쉽지는 않았는데 잘못 계산된 기둥의 간격 때문 끄트머리에 겨우 걸리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이 달라붙어 오른쪽 왼쪽 최대한 정확한 위치를 맞춰 올리느라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목수는 컨테이너 제작자가 자신에게 사이즈를 잘못 알려줬다 탓을 하면서도 저 정도만 올라가도 괜찮다 말하며 자리를 피했다. 아슬아슬 올라간 컨테이너를 바라보며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이후 처리는 여러 가지로 골치가 아팠다.

목수의 잘못이니 배상은 해 준다 했지만 당장은 돈이 없다며, 부서진 컨테이너를 자신에게 주면 중고로 판 후 새 컨테이너의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하였다. 화물트럭도 충격을 입어 배상을 해 주어야 했는데, 목수는 크레인 기사들이 가입하는 화물 조합에도 가입되어있지 않아 보험처리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또한 사고 난 크레인은 폐차를 해야 할 지경이었다.


목수는 컨테이너 주택이 너무 무거웠다 핑계를 대며 우리로 인해 피해가 막심하다며 불만을 늘어놓았지만, 그게 어디 우리 탓이란 말인가!

정말 사람 안 다친 게 천운이라며,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약속의 무게


도착한 두 개의 집은 정화조도, 수도도 전기도 연결을 해주지 않으니 무용지물이었다.

날짜에 맞춰 한달살이 계약이 끝났던 오빠는 할 수 없이 급하게 다른 숙소를 알아봐야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흐르고 업체로부터 컨테이너 제작이 완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목수의 입금이 늦어지면서 속수무책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여러 날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새로 제작된 컨테이너 주택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목수의 만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정화조를 묻기 위해 땅을 팠는데, 깊이를 얕게 파서 정화조의 입구가 완전히 덮이지 않게 되었다. 컨테이너 주택을 기둥 위로 높이지 않았으면 정화조까지의 배수 각도가 안 나왔을 판이었다.

수도관과 배수관은 그렇게 허공에 노출된 채로 제주도의 겨울은 따뜻해서 괜찮다는 말을 들으며 마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기둥 위에 컨테이너를 올렸기 때문에 그 앞으로 데크와 계단이 필수였는데, 계단을 설치해 주지 않아 사다리와 돌을 놓고 올라가야만 했다. 며칠을 기다리고 닦달을 하여 겨우 데크 설치가 완료되었고 우리는 더 이상 목수에게 일을 맡기지 않기로 했다.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것 투성이었지만 이미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무엇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이 사람은, 제주도에서 진행하는 귀농귀촌학교의 일정기간 교육을 이수하고는 목수라고 자칭하며 다니는 사람으로, 실력은 없으면서 무조건 할 수 있다며 말만 뱉어버린 후 이렇게 저렇게 땜빵식으로 작업을 해왔던 것이다.

다른 곳에서도 '이 금액이면 이렇게 저렇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무책임한 약속을 뱉은 뒤 일정이 늘어지면서 초과 예산이 들어가고 누더기 집을 만들어 놓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생긴 빚을 갚기 위해 여러 곳을 일을 맡으며 또 악순환의 반복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이건 제가 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라든가, 이 비용으로는 이렇게 안됩니다.라고 정확하게 말했다면 우리도 다른 판단을 했을 것이고, 서로 얼굴 붉힐 일도 없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다 말하고 능력이 되지 않는 일은 의뢰를 받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본인은 실비만 받고 싸게 잘해주려 했는데 욕만 먹는다며 투덜댔지만, 이건 선의 도 뭣도 아닌 기만 그 자체였다. 고의는 아니라지만, 자신의 입으로 뱉은 약속을 하나도 지키지 못한다면 그것이 사기꾼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결국은 이렇게 호된 경험을 하고, 나머지는 우리가 직접 발로 뛰며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은 제주 이주의 여정 중 2015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목수라고 자칭하는 한 사람에게 입은 피해로, 정직하게 일하시는 다른 분들께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타이틀은 '제주도 목수를 믿지 마세요.'에서 '험난했던 집짓기'로 변경하였습니다.

일부 사고의 원인을 부주의한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시선에 대해 우려와 유감을 표하는 바입니다.



★ 1편부터 정주행

https://brunch.co.kr/brunchbook/andjeju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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