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제주 이주의 여정, 다시 시작
우여곡절 끝에 컨테이너 주택의 설치가 완료되고 준공이 떨어졌다.
진정한 나의 집이 생긴 것이다.
이제는 정말 결혼식만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도 양가 부모님의 믿음과 지지가 큰 힘이 되었다.
우리의 스몰웨딩은 연예인들이 하는 무늬만 스몰인 결혼식이 아니라, 비용 그 자체도 완전 스몰이었다.
부모님과 나는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혼배성사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 가톨릭 신자라면 알겠지만 일반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했더라도 혼배성사를 위해 한 번 더 성당에서 혼인 미사를 드리게 된다. 이때 드리는 미사는 성당에서 정해진 날짜에 단체로 드리는 것으로 별도의 비용은 들어가지 않는다. -
성당 결혼식은 예식장에서 하는 결혼식만큼이나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우리는 성당 결혼식이 아닌 혼배성사만 드리기로 하였다. 다행인지 그날 미사를 신청한 커플이 우리뿐이라 여유롭게 우리만의 결혼식을 치를 수 있었다.
그래도 결혼식 기분을 내기 위해 하얀 원피스와 면사포와 구두 하나를 장만했다.
오빠는 양복과 나비넥타이.
동네 꽃집에서 부케용 꽃다발도 주문하였다.
사진은 꼭 찍어야 한다는 엄마의 의견에 따라 동네 사진관에 당일 스냅사진을 맡겼는데, 나중에 인화된 것을 보니 내가 찍은 것보다 엉망으로 찍어놓아 이건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
직계가족과 증인을 서줄 친구만 참석을 했기 때문에 15명 남짓, 성당 앞 한식당에 예약을 하고 예식이 끝난 후 모두 함께 식사를 나누며 이야기할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니는 정신없는 결혼식 보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조촐한 우리의 결혼식이 나름 만족스러웠다. 우리의 작은 결혼식 비용은 다 해봐야 총 100만 원을 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2015년 11월
독신주의자 남자와 비혼 주의자 여자가 만나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여행도 조촐했다.
친정집에서 하루를 보고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향했다.
집은 제주의 동쪽에 있으니, 여행은 서쪽으로 가자며 '신혼여행'의 명목으로 서귀포의 자쿠지가 있는 고급 펜션으로 예약을 했다.
산방산이 올려다 보이는 멋진 풍경 속 한가로운 펜션 마당에는 커다란 강아지가 뛰어놀고 있었다.
조식으로는 치아바타 샌드위치가 제공되었고, 11월 말이었지만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한 날들이었다.
당시 송악산은 휴식년이라 둘레길이 막혀 있어 올라가지 못하고, 산방산으로 향했다.
산방산에 올라 보문사의 커다란 불상에 감탄을 하며 남쪽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감상했다.
물때가 맞아야 들어갈 수 있다는 용머리해안도 시간이 맞아 바로 입장할 수 있었는데, 층층이 쌓인 암벽이 부드럽게 이어지며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암벽을 따라 한참을 걸어갔다 돌아 나오는 길 하멜상선 전시관에도 들렀다. 배에 올라 하멜표류기의 이야기를 나누며 타이타닉에 탄 듯 닭살커플의 면모를 보여주며 사진을 찍었다.
운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낡은 놀이동산 입구에는 '페퍼톤스'가 산방산 바이킹에 매료되어 '바이킹'이라는 곡을 썼다는 뜬금없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어 우리를 빵 터지게 했다.
얼마 전, 7년 만에 같은 코스로 나들이를 나섰다. 이번에는 송악산 둘레길을 올라가 볼 수 있었다.
산방산 앞 도로는 주차를 하고 전망대를 올라갈 수 있도록 훨씬 넓게 잘 정비를 해 놓았으며, '산방산 랜드'도 재정비를 하였는지 보다 깔끔해져 있었다. 썰렁했던 산방산 주변은 봄이면 유채꽃 명소가 되어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당시 제주 입도 초보답게, 흑돼지 근고기, 옥돔구이 등 제주 대표음식 맛집도 한 곳씩 다녀왔다.
그때 먹은 근고기가 참 맛있었다며 신랑은 아직도 가끔 이야기하곤 한다.
나 역시 그때 먹은 옥돔 구이가 종종 생각난다며 이야기한다.
마지막 날에는 숙소 근처 멋진 레스토랑을 예약하여 분위기 있는 저녁식사도 즐기며 신혼여행 분위기를 만끽했다.
며칠간의 여행을 끝내고, 다시 제주공항.
아직 마무리되지 못한 회사일로 나는 출근을 위해 서울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영영 헤어지는 것이 아닌데도 우리는 또 손발 오그라들게 유난을 떨며 눈시울을 붉혔다.
3월 퇴사를 계획하고 있었지만, 신혼여행을 마치고 회사에 출근하여 바로 퇴사의 의사를 밝혔다.
회사에서 나름 능력에 대해 인정을 받았는지, 퇴사 대신 재택근무를 제안해 주셔서 12월 짐을 싸서 완전히 제주도로 내려갈 수 있었다.
2012년부터 시작된 방황의 여정이 2015년 드디어 제주도 정착의 결실로 새롭게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