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제주 이주의 여정, 정착
목수가 어설프게 작업해 놓은 것들을 하나씩 직접 마무리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목수가 만들어 놓은 온수기 함은 문고리가 없어 바람이 불 때마다 덜컹거렸기 때문에 신랑이 문고리를 사다가 새로 달아야만 했다. 기존에 농막으로 쓰던 컨테이너의 수도관 연결도 마무리가 되지 않아 사람을 불러 다시 연결했다.
옆집 공사로 인해 새로 측량을 하니, 기존의 돌담 경계가 맞지 않는다고 하여 돌담도 새로 쌓고 대문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대문이 없는 오픈 마당이었는데, 수시로 불쑥불쑥 들어와 예의 없는 질문을 던져대는 마을 주민들 탓에 대문을 필수로 달아야만 했다.
제주도의 겨울은 따뜻하다는 말이 무색하게 그해 겨울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고, 목수의 착오로 노출되어 있었던 수도관은 모두 얼 수밖에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기둥 위에 걸쳐진 컨테이너가 내심 불안했던 우리는 안전을 위한 보강작업을 하면서 수도 배수관 단열작업까지 모두 새로 하였다.
전기 공사도 다시 하였는데, 컨테이너 총 4동의 누진세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각 동별 개별 계량기를 설치하여 분리하자 전기요금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분명 확인을 하였는데도, 읍사무소에서는 민박사업자 기준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건축설계사무실과도 대판 싸움을 하였고, 할 수 없이 민박 사업자가 아닌 임대사업자로 등록을 해야만 했다.
바람의 오르다는 원룸형 두 개의 방만 빌려주었기 때문에 수익은 크게 되지 않았지만 시간적으로는 여유가 많았다. 우리는 이 여유로운 시간 동안 제주도의 곳곳을 누비며 여행을 다녔다.
오름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용눈이오름을 시작으로 이름난 오름을 찾아 오르고 또 올랐다. 백약이오름, 다랑쉬오름, 아끈다랑쉬오름, 거문오름, 물영아리오름, 따라비오름, 원당봉, 별도봉, 어승생악 등 오름 방문 리스트가 하나씩 늘어났다.
제주의 오름은 둥글고 완만한 오름부터, 작은 숲길을 걷는 듯한 우거진 오름, 갈대가 예쁜 오름, 숨을 헐떡이게 하는 가파른 오름까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고 정상에 오르면 어김없이 멋진 풍경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틈만 나면 오름에 올라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했다.
함덕해수욕장은 집과 10여분 거리에 있어 자주 들르곤 했었다. 여름이면 수많은 축제가 열리는 함덕의 해변은 언제나 사람들로 떠들썩하고 북적거렸지만, 지금의 유명세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에 구석구석 한적한 에메랄드빛 바다가 언제나 우리를 반겼다. 서우봉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함덕의 바다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함덕 말고도 곽지, 삼양, 신흥, 김녕, 평대 등 제주도 곳곳의 해수욕장을 돌아다니며 물놀이를 즐겼는데, 물을 무서워하던 신랑도 어느새 가슴 깊이까지 저벅저벅 거침없이 걸어 들어갈 정도로 바다와 친해지게 되었다.
오름과 바다 외에도 미술관이여 휴양림, 박물관, 이름 없는 명소 등 하루가 멀다 하고 밖으로 돌아다녔다.
집을 나설 때면 신랑은 근처의 맛집을 검색하여 꼭 한 곳씩 방문하곤 했었는데, 열심히 검색을 한 덕에 언제나 성공적인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신랑의 성공률이 높다며 나는 맛집 찾기를 신랑에게 일임하였는데, 신랑이 운전해주는 차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언제나 맛집으로 대령해 주었다.
아직도 신랑은, '가만 앉아 있으면 좋은 곳 구경시켜줘, 맛있는 집 데려다줘, 이런 신랑이 어디 있냐!'며 자랑스럽게 으스대며 날 놀리곤 한다.
이렇게 제주 전역을 돌아다니며 당시의 사진첩은 제주도의 수많은 여행지와 맛집들로 넘쳐났다.
우리는 고민과 시름은 잊은 채 매일을 여행처럼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