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제주 이주의 여정, 정착
대문을 기준으로 왼쪽은 원 토지에서 분할된 땅으로 우리가 이사하고 6개월 여만에 집을 완성하고 입주를 하였다. 문제는 오른쪽 집의 공사였는데 우리에게 큰 피해를 준 그 목수가 하고 있는 공사였다. (13화 참조)
(왼쪽 옆집을 A, 오른쪽 옆집을 B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흙집을 짓는다는 B의 공사는, 펜스도 가림막도 설치하지 않았고, 오전 오후 할 것 없이 뚝딱거리며 소음을 자아내고 있었다. 건물이 높이 올라갈수록 걱정이 되어 펜스 설치를 요청하였더니 불만을 쏟아내며 허름한 천 몇 조각을 가져다가 듬성듬성 나무에 연결해 놓았을 뿐이었다.
B는 경계가 잘못되었다며 측량으로 여기저기 말뚝을 박더니 소송을 통해 마을도로로 편입된 땅을 되찾아 결국은 마을 입구의 공원을 반쯤 철거하고 도로를 새로 놓았다.
우리 땅과 인접한 부분의 경계도 다시 정의하고 새로 돌담을 쌓기로 하였는데, 원래 있던 돌담을 새로 쌓는 것은 돌담이 포함된 땅 주인이 하는 것이라 하여 B가 쌓기로 하였다. 동네 아는 지인에게 부탁을 하였는지, 어느 날 옆집에서 사람 한 명이 오더니 두어줄 높이의 경계의 흔적만을 만들어 놓는 것으로 돌담 공사는 끝이 났다.
옆집 B는 자매가 함께 와 있었는데, 동생은 카페를 언니 부부는 가게를 연다고 하였다. 소송을 통해 얻어진 땅까지 포함하여 좁은 땅에 건물 3개를 짓기 위해 경계의 끝가지 벽을 쌓아 올렸다.
아침 일찍 뚝딱거리는 공사 소음에 늦잠은 꿈도 꾸지 못하였고, 최대 볼륨으로 틀어 놓은 일꾼의 음악소리에 취향에도 맞지 않는 음악을 강제 청취해야만 했다. 흙집에 사용되는 건축자재의 먼지는 바람에 날려 진회색 자동차를 뿌연 회색으로 만들기 일수였다.
공사가 끝나지도 않은 건물 한쪽에서는 그 식구들과 공사 일꾼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시끌시끌 떠드는 소리와 생활소음은 방음은커녕 공간의 울림에 증폭이 되어 우리 집까지 생생하게 들려왔다.
마감이 덜된 건물에서는 바람이 불 때마다 탕탕 부딪치는 소음이 울려 퍼졌으며, 해가 지고도 무슨 작업이 남았는지 깜깜해진 밤 조용한 마을 안으로 뚝딱거리는 망치질 소리와, 윙윙 드릴 가는 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울려 퍼졌다.
역시나 편견을 안 가지려야 안 가질 수 없는 것이, 옆집 B와 관련된 사람들은 2012년 우리가 처음 땅을 샀을 당시 나무를 파간 그 문제적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3화 참조)
공사를 하면 당연히 소음이 날 수 있다고 이해하는 것도 한두 번, 2년 동안 지속된 옆집의 공사는 우리를 지치게 만들며 크고 작은 무수한 피해를 주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들은 모르는지 모른척하는 것인지 독실한 교인의 선한 모습을 가장하고 선량한 이웃인 양 마을 사람들에게 되려 우리에 대하여 좋지 않게 말하고 다녔다.
그러는 와중에 우리 집과 100여 미터 거리 대각선 방향으로 이자카야가 하나 오픈을 하였다.
오픈 당시 나이 많은 마을 어르신들은 늦은 저녁 술에 취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을 걱정하여 우려와 유감을 표현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가까운 곳에 걸어가 한잔 할 수 있는 곳이 생긴다며 기뻐하고 반겼다.
문제는 알 수 없는 곳에서 벌어졌으니, 주차 문제였다. (이자카야를 C라고 부르겠다.)
C는 넓은 마당을 가지고 있었으나, 마당이 훼손되는 것이 싫어 주차장을 따로 만들지 않고 마을 앞 공원에 주차를 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B가 도로를 새로 깔기 위해 공사를 하였으니 주차를 할 곳이 마땅치 않아졌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간판도 없던 C를 찾아온 손님들은, 밤늦은 시간 불을 환하게 밝힌 우리 집 마당에다 차를 세우곤 불쑥 들어와 사람을 불러대기 일수였다.
'여기 영업하나요?'
밤 12시 사람들의 외침에 잠옷 차림으로 뛰어나간 것이 몇 번, 그나마 차만 세우고 이자카야를 찾아갔던 사람들도 집으로 돌아갈 때면 거나하게 취하여 큰소리로 인사를 나누는 통에 새벽 2시 잠을 깬 것이 몇 번이나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니 우리는 담벼락에 '주차금지'라는 푯말을 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일로 돌아온 건 열심히 사는 이자카야를 부부의 영업을 훼방 놓는 예민한 부부라는 질타였다. 알고 보니 B와 C는 이미 짝짜꿍이 되어 뒤에서 우리를 흉보고 다녔던 것이다.
옆집 A가 초대한 연말 파티, C는 대놓고 싫은 내색을 하며 사람들을 주도하였고, A는 나에게 미안해하며 자신이 초대한 것이니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나는 알 수 없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마을 앞 표지판이 생기고, C의 마당 안에 주차장을 만든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러고도 한참 동안 우리는 B와 C로 인한 각종 피해를 감내해야 했다.
우리는 제주도에 정착하고 2년 동안 정말 매일같이 제주의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생각해 보니 주변의 분란들을 피해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더 편해서 이기도 했었던 것 같다.
나중에 이사를 간 후 들은 소식으로는, C의 집 옆으로 새로운 카페가 먼저 완공이 되었고, 그 공사에 B가 트집을 잡으며 고소를 하겠다며 괴롭혔다는 이야기와, 마을 안에 카페와 식당 민박집 이자카야 등 상업시설이 늘어나며 서로 주차문제로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자신들이 피해를 주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 탓만 하는 이들이 모여 있으니 없는 문제도 만들어 냈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