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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핌 Apr 08. 2022

17. 제주도의 타운하우스

10년간의 제주 이주의 여정, 정착

새로운 터전으로


매일같이 제주도의 곳곳을 여행 다니며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한편으로는 공사 소음과 야밤의 방문에 밤잠을 설치던 어느 날, 우리는 다른 해법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결혼 후 1여 년 간의 재택근무를 마치고 나는 백수 상태였고, 컨테이너 주택이라 아무래도 겨울을 나기에는 수월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 머리를 맞대고 여러 방면으로 고심을 해 보았다. 어느 정도 돈을 모아 새롭게 집을 지을 계획도 있었지만 2년간 옆집 공사에 시달리다 보니 그런 생각은 사라져 버렸다.


처음 내 힘으로 사게 된 땅이라 그런지 왠지 팔면 안 될 것만 같은 애착이 있었지만, 현 상황을 고려하여 여러 고민을 거듭한 끝에 집을 새로 짓는 것보다, 잘 지어진 집을 사는 것이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이사를 갈만한 집이 있나 알아보기로 했다. 

당시 제주도는 타운하우스 붐으로 크고 작은 타운하우스들이 많이 지어지고 있었는데, 그중 몇 곳을 돌아보며 이사하는 쪽으로 점점 마음이 기울었고, 예쁜 타운하우스의 유혹에 이사를 결심하고 집을 내어 놓았다.


얼마 후 나의 첫 땅은 카페를 운영하겠다는 임자가 나타나 팔리게 되었고, 얼마 후 그 자리에는 멋진 카페가 생겼다.



타운하우스


집이 팔리고 우리는 새로운 터전을 찾기 위해 집을 보러 다녔다.

조천 애월 소길 표선 교래 할 것 없이 제주 전 지역으로 돌아다녔는데, 결국은 돌고 돌아 처음 집과 10여분 거리에 있는 조천의 한 타운하우스로 결정이 되었다.

섣불리 모르는 동네로 가기에는 우리는 이미 조천의 중산간 환경에 익숙해져 있었다.


주변 소음으로부터 시달렸던 우리는 보다 프라이빗한 공간을 중심으로 집을 보았다.

타운하우스는 의외로 그 마당이 너무 인접하여 옆집과 붙어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런 곳은 우리의 선택에서 배제되었다. 단지 내에 공사가 끝나지 않은 타운하우스들도 후보에서 제외하며 여러 곳을 보러 다닌 끝에, 공사가 완전히 끝나고 분양 매물이 몇 개 남지 않은 곳들 중 우리가 찾는 프라이빗한 마당을 가진 매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네모 반듯한 모양의 마당을 가진 집들 중 중 유독 한채만 높은 밭담을 경계로 안쪽 마당이 돌담으로 둘러싸인 집이 있었는데, 반듯하지 않은 마당 모양 때문에 선택되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매물이었다. 오히려 프라이빗하게 안쪽으로 숨어있는 마당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이사를 결정하고 4월의 봄, 불안했던 컨테이너 주택을 벗어나 더 이상 주변의 소음으로부터 시달리지 않는 콘크리트 주택에서 두 발 뻗고 잘 수 있었다.



마당이 있는 집


이사 후 프라이빗한 우리의 마당에는 꽃과 나무가 하나씩 심겼다.

매실나무, 금귤 나무를 시작으로 배나무, 무화과, 개복숭아, 미니사과 등 과실나무 묘목을 하나씩 심어 주었다.

벚나무와 동백나무도 심어 주었는데, 모두 어린 묘목들이라 자리를 잡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전 집의 마당에서도 나무와 텃밭을 가꾸기는 했지만 본디 서울 태생인 우리 둘은 자칭 '식물 무식자'들이었기 때문에 나무들이 자리잡기까지, 모종과 묘목을 여럿 죽여가며 식물에 대해 하나씩 채득 할 수 있었다.


한 해 한 해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마당에는 꽃들이 채워졌다.

꽃치자의 하얀 꽃이 피어나면 달콤한 향기가 마당을 가득 매웠고, 여름이면 수국이 만발했다. 

꽃향기를 따라온 나비와 벌들로 마당 한쪽은 붕붕 요란했는데, 일부러 건드리지 않는 한 벌들은 꿀을 따느라 정신이 팔려 사람 따위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면 마당 데크에 앉아 피어나는 꽃들을 감상하며 커피 한잔 하는 게 낙이었다.


돌담 사이사이 송엽국의 보라색 꽃들은 아침이면 활짝 피었다가 저녁이면 수줍게 오므리기를 반복했는데, 처음 이 모습을 발견했을 때는 너무나 신기해 밤마다 관찰을 했다.

식물 무식자였던 우리는 매실나무의 꽃이 매화꽃이라는 것도 제주도에 와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매화꽃이 핀 후 꽃핀 자리마다 통통하게 올라오는 열매를 보며 또 한 번 자연의 신비에 감탄을 하였다.

열매가 모두 익으면 하나씩 따서 매실청을 담아 두었다가 탄산수를 타서 먹기도 하고 요리에도 넣으며 알차게 활용하였다.

허브를 키워보겠다며 심어놓은 애플민트는 잔디보다 더욱 왕성하게 자라 마당 한쪽을 차지하였고, 그 덕에 한 움큼씩 따다가 모히또를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고 묘목을 심으며, 해가 뜨고 지고 계절이 바뀌며, 경험을 통해 하나 둘 식물들의 이름과 생태를 알게 되면서 식물 무식자에서 아주 조금 눈곱만큼의 지식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예쁘게 마당을 꾸미기 위해서는 필수의 노동이 동반되었는데, 잡초를 뽑고 잔디를 깎고 가지치기를 하는 일을 게을리했다가는 금방 폐허의 풀숲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남들 눈에는 아름다운 마당, 우리에게는 노동, 하지만 해 놓고 나면 뿌듯해지는 아름다운 마당에서 우리는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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