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찜이 사라졌다.
#에세이. 엄마의 명절 음식 04
명절 음식 편
어린 시절 먹었던 기억 속의 갈비찜.
내가 정말 맛있게 먹은 것 중에 손에 꼽히는 음식이다.
하지만, 지금은 기억 속의 그 갈비찜을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도 엄마가 해주는 갈비찜은 정말 맛있다.
내가 먹고 싶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고기를 사다 만들어 주실 엄마이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 정말 맛있게 먹었던 그 기억 속 갈비찜의 맛을 갱신할 수는 없으니, 이유는 간단했다.
어린 시절 내가 먹었던 갈비찜은 한우 갈비찜이었던 것이다.
엄마의 큰 손 덕에 우리 집 갈비찜은 가장 큰 냄비 한가득 했었는데 대략 5~6kg는 했던 것 같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갈비 3대를 샀었다고 하신다.)
다섯 식구가 한우 갈비찜을 배불리 먹으려면 지금은 얼마가 필요할까?
100g 당 1만 원씩만 잡아도 고깃값만 50만 원이다!
무엇보다 요즘 세상에 누가 한우로 찜을 해 먹는단 말인가!
내가 10대였던 시절 (80~90년대쯤) 한우가 등급으로 나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어릴 때라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한우는 그냥 국내산 소를 통칭하지 않았을까 싶다.
- 소 전문가도 역사 전문가도 아니니 세세하게 따지고 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희미한 기억 속의 기록이다. -
우리 집은 그렇게 부자는 아니었지만, 정육점에서 한우고기를 살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소위 중산층이라고 불리는 그때의 식탁에는 자주는 아니어도 큰 부담 없이 한우를 올릴 수 있었다.
어느 때 인가 규제가 풀리고 수입육을 늘어나고, 농가들이 시위를 하고, 한우의 브랜드화를 외치며 '한우'는 정말 넘사벽 고가 브랜드가 되었다. 그러면서 한우는 더욱 좋아지고 맛있어졌지만, 우리 집 식탁에서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 집 갈비찜도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딸 셋이 모두 대학생이던 시절, 아버지는 IMF 정리해고로 회사를 그만두셨다.
우리의 식탁에는 더 이상 한우 갈비찜이 오르지 못했다.
어쩌다 한번 갈비찜을 할 때면, 소가 아닌 돼지갈비찜이었다.
같은 양념 엄마의 솜씨지만 왠지 아쉬운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언니들이 결혼을 하고 조카들이 뛰어다닐 무렵 '꼬마갈비'가 탄생했다.
엄마는 꼬마갈비라고 부르시지만, 실제는 돼지 쪽갈비 부위였다.
쪽갈비가 들어간 갈비찜이 절반쯤 완성이 되면 냄비를 둘로 나눠 한쪽에는 매운 고추를 한쪽에는 달달한 양념을 추가하여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 어린 조카들을 위해 따로 만들어 주셨다.
나는 옆에 서서 맛을 본다며 식구들이 오기 전 한 개씩 두 개씩 꼬마갈비를 쏙쏙 빼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또 한참의 시간이 흘러, 내가 제주도로 떠나 온 후 엄마의 음식을 먹을 기회가 점점 줄어들었다.
한동안은 새로운 것들에 취해 잊고 지냈었는데, 요즘은 왠지 엄마의 음식이 종종 생각이 난다.
제주에서 서울로 엄마를 보러 갈 때면 엄마는 내가 좋아하던 갈비찜을 만들어 기다리신다. 호주산 갈비로 대체되고 양도 반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맛있는 엄마의 갈비찜.
그걸 또 신랑 맛 보라며 통에 담아 제주도로 가지고 오는 나도 참 팔불출이다.
그날 저녁 엄마의 정성이 담긴 맛있는 갈비찜이 신랑의 술안주가 된다.
함께 마시는 술이 참 달다.
엄마의 갈비찜
소갈비 핏물 빼서 푹 삶기
무 밤 통마늘 피망 넣고 계속 삶기 (이때 사과 반쪽 넣기)
간장 베이스 양념을 넣고 졸이기
맛을 보고 모자란 간 맞춰 고추 넣고 마무리
더 늦기 전에 돈을 많이 벌어 한우로 갈비찜을 해 먹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열심히 돈을 모아 한우갈비 한 짝을 사서 엄마를 보러 가는 상상을 해 본다.
▶ 사진은 엄마의 레시피와는 다른, 내가 만든 갈비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