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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핌 Apr 01. 2022

김밥은 집에서 싸야 제맛

cooking essay

"김밥은 집에서 마는 게 가장 맛있는데.."


주말 나들이를 위해 제주의 맛집 유튜브를 검색하다가 김밥집 영상을 보던 신랑이 한마디 흘린다.

생전 먹고 싶다, 뭐 해달라 소리를 잘 안 하는 신랑이라, 내가 해주는 김밥이 가장 맛있다는 그 한마디를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김밥을 말아준지 일 년도 넘은 것 같다.

며칠 뒤 마트에 들러 김밥의 기본 재료를 사 왔다.


김밥김, 단무지, 우엉조림, 김밥햄.

나는 김밥을 쌀 때 시판 단무지와 우엉조림을 꼭 넣는데, 다른 재료를 아무리 채워도 이 두 가지가 빠지면 왠지 김밥 본연의 맛이 빠진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김밥의 기본재료와 더불어 색다른 맛을 내줄 특별한 재료를 하나씩 넣어주면 맛있는 김밥이 완성된다.

속 재료를 구상하며 냉장고를 열어보니 넣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한동안 반찬 만드는 것도 게을리했나 보다.


김밥을 만들기에 앞서 멸치를 볶고, 집밥 백선생의 레시피대로 돼지고기 맛나니를 만들었다.

계란도 빼먹지 않고 부친 후, 냉장고에 방치해둔 양배추가 눈에 띄어 채를 썰어 준비했다.


항상 간이 조금씩 부족했던 기억이라 이번에는 밥에 참기름을 넣고 맛소금을 살살 뿌려 충분히 간을 해 주었다. 한 김 식힌 밥을 김에 살살 펴고, 갖은 속 재료를 채운 김밥!


처음 싼 김밥의 꼬다리를 집어 입에 넣으니 '참 맛있다'.

내가 싼 김밥을 내가 맛있다 자화자찬을 하며 나머지 재료로 열심히 김밥을 말았다.


재료 준비
김밥김, 밥에 참기름 소금 간

1. 땡초멸치 김밥
단무지, 우엉, 김밥햄, 계란, 멸치, 청양고추

2. 고기 김밥
단무지, 우엉, 김밥햄, 계란, 돼지고기 맛나니, 청양고추

3. 야채 김밥
단무지, 우엉, 김밥햄, 계란, 양배추, 마요네즈

4. 모둠 김밥
단무지, 우엉, 김밥햄, 계란, 멸치, 고기, 고추, 양배추, 마요네즈


그렇게 말다 보니 네 줄이나 완성이 되었다.

아직 재료가 많이 남았지만 두 사람이 먹기에는 네 줄도 많기 때문에 나머지 재료는 며칠 뒤 다시 싸기로 하고 통에 담아 보관을 하였다. 생각해 보니 이러려고 김밥 통까지 사놓고는 그동안 왜 김밥을 안 써줬나 모르겠다.


늦은 퇴근 후 야식으로 맛있게 김밥을 먹는 신랑을 보니 나 역시 뿌듯해졌다.




편식이 심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의 김밥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언니들의 소풍날이면 다섯 식구를 위한 김밥이 20여 줄 식탁 위에 탑처럼 쌓였다.

나는 오이를 쏙쏙 빼고 하나씩 집어 먹었지만 그리 많이 먹지는 못했다.

찰진 밥과 오이 당근 시금치는 김밥을 멀리하는 일등 공신으로, 워낙 밥 먹는 양이 적었던 나에게 밥 한 공기 분량의 김밥 한 줄은 너무나 많은 양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도시락통에 담긴 김밥을 절반도 먹지 못하고 돌아오기 일수였다.


언니들이 졸업을 하고 엄마는 더 이상 김밥을 말지 않으셨던 것 같다.

운동회가 있던 어느 날 엄마는 동네 상가에 뛰어가서 김밥을 한 줄 사다 건네주셨는데, 잘 먹지도 않으면서 나만 김밥을 안 싸준다며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서운했는지 모르겠다.


당시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침 일찍 딸 셋에 아빠까지 챙기셔야 했을 고단함을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잘 먹지도 않으면서 왜 나만 김밥을 안 싸주냐며 서운해했던 철부지 막내딸은, 이제 신랑 먹이겠다며 열심히 김밥을 만다.


남아있는 김밥 재료로 신랑이 좋아하는 계란이 듬뿍 들어간 계란 김밥을 한번 더 말아줘야겠다.



★ 엄마의 요리 정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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