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핌 Apr 09. 2022

엄마의 도시락

cooking essay

세상 사람들이 가장 힘들다고 추켜세워주는 고등학교 3학년

우리 집은 잠실에서 일산으로 이사를 갔다.


마지막 일 년 만을 남겨두었기에 나는 전학을 가지 않고 조금 멀더라도 전철을 타고 다니던 학교에 계속 다니기로 하였다.

그렇게 일산에서 잠실까지 아침 자율학습 시간에 맞춰 등교를 하려면 새벽 6시에 일어나 전철을 타야만 했다.


이른 시간에도 전철에는 늘 사람이 많았고 콩나물시루 같은 전철 속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부대끼며 등교를 하고 나면 다시금 피로가 몰려와 책상에 앉아 졸기 일수였다.

기다리던 점심시간, 나는 도시락을 열며 황당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밥, 김치, 참치캔


나의 도시락은 대략 이런 식이었는데 반찬통에는 김치만 달랑하나, 3단 보온밥통 속 국통은 빠져있고 그 자리에는 참치캔이 들어있었다.

어느 날에는 국통에 볶음밥이 가득 채워져 있었고, 또 어느 날에는 전날 저녁에 먹었던 백숙의 닭죽이 담겨있기도 했다.

밥과 김 김치 된장국만 넣은 도시락도 여러 번, 나의 도시락은 김, 참치캔, 슬라이스 치즈 같은 인스턴트식품과 전날 저녁에 먹은 국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딸 셋 중 막 네 딸이었던 나는 언니들의 도시락을 싸지 않게 되자 내 도시락 반찬에 소홀해졌다며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다.

2년 터울의 언니들과 빠른 생일인 나까지 최소 12년 이상 매일 아침 세 개의 점심 도시락을 싸왔던 엄마는 언니들이 모두 졸업한 마지막 일 년 나의 고3 도시락 하나만 싸면 되었다. 뭘 줘도 잘 안 먹는 편식쟁이 막네딸 도시락 하나 남았으니 엄마도 꾀가 나셨던 것 같다.


맘에 들지 않는 도시락 반찬은 어김없이 남겨 보내는 나였으니, 사실 치즈에 김만 줘도 할 말은 없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50이 가까운 나이에 나의 도시락 하나 때문에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를 하시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그때는 나만 힘든 줄 알고 괜스레 투정을 부려댔던 것이다.




결혼 초,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꼬박꼬박 먹던 신랑은 나의 생활 패턴에 맞춰 아침을 안 먹는 사람이 되었다.


일이 없으면 깨울 때까지 자는 나의 습관 때문에 일찍 일어난  신랑은 아침도 거르고 홀로 멍 때리며 내가 깨기만을 기다렸다.

12시를 훌쩍 넘겨 느지막이 일어난 내가 이것저것 씻고 준비를 하다 보면, 아침 겸 점심도 아닌 늦은 점심 겸 저녁으로 첫끼를 먹기 일수였다.


신랑은 빈속에 때아닌 위장병을 겪어야만 했다.


일찍 일어나 같이 아침을 먹겠다며 여러 번 다짐을 해 봤지만 나는 아침잠을 이기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 누군가를 위해 밥을 하는 일!

내가 밥을 해보니 이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한 일인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매일매일 우리의 도시락을 싸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셨을 엄마는 단 한 번도 우리에게 힘들다 말하신 적 없었으니 그 마음도 알 것 같다.


아침잠이 조금씩 줄어들어 10시에는 일어나게 되고, 신랑도 아침잠이 조금은 늘어나 함께 아침 겸 점심을 먹을 수 있게 된 지금, 나는 일어나자마자 부지런히 밥을 차린다.


내가 해준 밥을 먹여 든든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

'맛있는 거 해줘야지'하는 마음에 힘들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 것을 보면, 가족을 위해 밥을 해주는 즐거움을 엄마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공유하게 된 것 같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역시나 나는 잠에게 늘 지는 편이라 또 늦잠을 자고 후닥닥 아침을 차리면서, 다음에는 더 맛있는 걸 해줘야지 하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속으로 다짐하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김밥은 집에서 싸야 제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