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ing essay
보양식의 대명사로 불리는 장어를 처음 접한 건 우리 집 솥단지였다.
기관지 천식이 있으셨던 아빠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마른기침을 시작하셨다.
'캑캑' 아빠의 기침소리를 걱정스럽게 듣던 엄마는 다음날 살아있는 민물장어를 사 오셨다.
당시에도 건강원 같은 곳에서 장어즙을 팔기는 했으나, 뭐가 섞여 들어가는지 모르겠다며 굳이 살아있는 장어를 사다가 거의 매년 집에서 고으셨다.
그렇다고 엄마가 장어의 달인이 되었거나 능숙하게 손질을 하시는 건 아니었다. 매년 잡는 장어지만, 엄마는 할 때마다 서툴게 장어들과 사투를 벌이셨다.
시장에서 사 온 커다란 장어는 투명 비닐에 물과 함께 담겨 있었는데, 힘이 얼마나 좋은지 순식간에 뛰쳐나갈 것처럼 파닥거렸기 때문에 입구를 꼭 잡고 있어야만 했다.
봉지 입구를 꼭 잡고 부들부들 거리는 손으로 물을 빼고 소금을 한 움큼 뿌리고 나면 장어는 더욱 거칠게 파닥거리다가 조용해졌다. 그 틈에 대충 헹궈 커다란 솥으로 넣으면 일단 성공이었다.
그리고는 뚜껑을 잘 잡고 있어야 하는데, 방심하면 뚜껑을 열고 뛰쳐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솥을 뛰쳐나온 장어들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난 일이 있었다.
"으악! 주여 주여!"
비명을 듣고 부엌으로 가니 엄마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엄마는 놀랄 때 '주여'라고 외치는 버릇이 있다.)
장어 두 마리가 바닥을 힘차게 기어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으악! 어떻게! 어떻게!"
나도 같이 비명을 지르다가 일단 장어를 맨손으로 잡았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엄마의 너무 놀란 모습에 나도 모르게 용기를 냈던 것 같다.)
후루룩 힘차게 물을 튕기며 순식간에 손을 빠져나갔다. 그 촉감이 너무 이질적이라 몸이 부르르 떨려 왔다.
"악!"
"도망간다! 싱크대로 숨으면 어떻게!"
엄마의 다급한 외침에 두리번거리다가 재빨리 수건으로 장어를 감싸 집어 올렸다.
"뚜껑! 뚜껑!"
겨우 한 마리를 잡아 솥에 넣었고 엄마는 뚜껑을 닫았다.
나머지 한 마리는 가스레인지 아래로 숨어드는 중이었다.
다시 수건을 감싸 장어를 잡으니 빠져나가려 버둥거리는 힘이 어찌나 세던지 온 몸이 떨려왔다.
온갖 비명이 난무 한 끝에 겨우 장어 두 마리 모두 솥에 넣을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넋이 나가 한동안 숨을 고르며 앉아있었다.
그렇게 솥에 넣고 몇 시간을 고아 채에 걸러 완성된 장어즙은 형체를 알 수 없는 걸쭉한 회색 물이었는데, 아빠는 이 소동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릿한 그 회색 물을 익숙한 듯 단숨에 꿀꺽 마셨다.
이후 엄마는 장어를 직접 사서 건강원에 고아달라 맞기게 되었다.
장어를 고아 먹는 것은 아빠뿐이었지만, 민물장어구이는 온 가족이 좋아했다.
파주 어딘가에 장어 양식장이 있다는 정보를 얻어 찾아간 이후 부모님은 이곳의 단골이 되셨는데 양식장 바로 옆에서 장어를 구워주었기 때문이다. 식당으로 운영하는 곳은 아니어서 이곳에 갈 때면 밥과 김치 등 함께 먹을 것들을 도시락에 싸가야 했다.
오랜 세월 단골로 드나들다 보니 어느새 꼬맹이었던 장어집 아들들은 장성한 성인이 되었고, 비닐하우스만 있던 장어 양식장은 큰 건물을 지어 유명한 민물장어 농원이 되었다.
장어 양식장이 너무 유명해져 사람이 많아지자 우리는 다른 곳을 찾아봐야 했다.
일산 재래시장에는 아빠의 장어즙을 위해 장어를 사러 다녔던 민물장어 직판장이 있었는데, 마침 그곳에 초벌구이를 해주는 기계가 생겼고, 우리는 초벌구이 된 장어를 사 가지고 와 집에서 구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초벌이라고 해도 90% 정도 완성된 것이기 때문에 프라이팬에 노릇노릇 익기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었다.
집에서 바로 구워 먹는 민물장어 소금구이는 담백하고 고소하면서도 장어의 육즙이 살아있어 정말 맛있었다.
집을 떠나와 제주도에 살게 되면서 장어를 먹을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물론 제주도에도 이름난 장어집이 있지만, 왠지 집에서 먹던 그 맛이 그리울 때가 많았다.
언제인가 친정집에 다니러 갔을 때 예전에 먹던 장어 이야기를 꺼냈더니 엄마는 금방 시장에 가서는 민물 장어를 사 오셨다. 집에 가서 먹으라며 초벌구이 된 장어를 진공 랩핑으로 포장까지 해 오셨다.
나는 엄마의 마음이 담긴 장어구이를 가지고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날 저녁 무려 육지에서 공수해 온 민물장어를 신랑과 함께 맛있게 구워 먹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엄마는 내 생각, 나는 신랑 생각뿐인 것 같아 왠지 엄마에게 미안해졌다.
다음에는 내가 부모님께 맛있는 장어구이를 사드리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