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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핌 May 31. 2022

엄마의 식탁에는 밑반찬이 없었다.

cooking essay

저녁식사시간 우리 집 식탁에는 항상 바로 한 밥과 따끈한 반찬이 올랐다.

밥상의 중심은 아버지로, 아빠의 퇴근시간에 맞춰 매일 저녁 압력밥솥에는 따끈한 밥이 지어졌다.

전날 먹은 반찬이 다시 상 위로 오르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모든 식사는 그날 저녁 바로 만들어졌다.




나와 같이 나이를 먹은 오래된 압력밥솥이 칙~소리를 내며 증기를 내뿜으면, 증기에 섞여 달달한 밥 냄새가 퍼진다.

"OO야, 삼단 올라왔는지 확인하고 불 줄여라"

식재료를 준비하시던 엄마가 나를 부르면, 나는 압력솥 꼭지의 빨간 선을 확인하고 가스불을 줄였다.


엄마는 생선 두 마리를 손질해 커다란 프라이팬에 올리고 그 위에 다른 프라이팬을 뚜껑처럼 덮으셨다.

지글지글 기름이 튀며 생선이 구워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모락모락 연기가 올라온다.


찌게인지 국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엄마의 강원도식 된장국이 완성되고, 베란다 김장독 속 시원하게 익은 김장김치 한 포기를 커다란 그릇에 담아 꺼내오면 식사 준비 끝.

퇴근하신 아빠가 씻고 나와 식탁에 앉으시면 우리는 모두 식탁에 둘러앉았다.


엄마는 상추와 고추 등 생 야채를 씻어 바로 식탁에 올리며 뒤늦게 식탁에 앉았다.

생선 한 마리는 말하지 않아도 의례 아빠 몫, 나머지 생선을 식구들이 나눠 먹는다.

내가 생선뼈를 바르기 귀찮아 깨작거리고 있으면 엄마는 옆에서 뼈를 바른 생선살을 밥 위에 올려 주셨다.

엄마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생선 대가리가 가장 맛있다며 남은 생선에서 능숙하게 뼈를 발라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결혼을 하고 처음 내손으로 밥상을 차리게 되었을 때, 신랑이 좋아하는 고기볶음과 정체불명의 국을 끓여 주었다. 맛있게 밥을 먹으면서도, 반찬의 부제에 대해 일깨워 주는 신랑이었다.


분명 고기반찬을 해줬는데, 왜 반찬이 없다 말하지?

속으로 '반찬, 반찬, 반찬'을 되뇌어 보았다.


이야기해 보니 나에게 '반찬'은 '메인 요리'였고, 신랑에게 '반찬'은 '밑반찬'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살면서 한 번도 고려해 본 적 없는 '밑반찬'

그렇다면 밑반찬은 무엇일까? 네이버 지식백과는 저장해 두고 먹는 기본 반찬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밑반찬

정의 : 만들어서 보관해 두고 언제나 손쉽게 내어 먹을 수 있는 기본적인 반찬을 뜻하는 말로, 젓갈, 자반, 장아찌, 포(脯), 마른반찬 등을 포함하는 저장식품의 통칭.

연원 및 변천 : 밑반찬이라는 말은 1960년대 초 이후부터 문헌상에 등장하는 용어이다. 통상 한번 만들면 보관해 두었다가 먹을 수 있는 기본반찬이라는 의미로 저장식품 중에서도 김치나 장류와는 구분하여 사용되고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 중앙연구원)




아주 어린 시절의 나는 워낙 편식이 심해 밥상에서 혼나던 기억뿐 반찬에 대한 세세한 기억은 거의 없는데, 어느 정도 크고 난 뒤 기억하는 우리 집 식탁에는 밑반찬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우리 집 식탁은 그날 바로 한 밥, 국, 메인 요리(생선 또는 고기), 김치, 생채(상추, 고추, 배추 등)로 이루어진 단순하면서 따뜻한 식단이었다.


엄마는 밑반찬으로 분류되는 마른반찬도 그날 볶아야 맛있다며 바로 볶아 그날 먹어 버렸기 때문에 며칠씩 저장해 두는 법이 없었다. 저장해 놓고 먹는 것은 김치와 몇 안 되는 장아찌가 전부였다. 그나마 장아찌도 매일 식탁에 오르는 것은 아니어서 베란다 밖 커다란 병에서 그때그때 먹을 만큼만 조금씩 꺼내어 먹었다.


엄마가 집에 없으면 냉장고에서 꺼내 먹을 수 있는 건 김치뿐이라 '냉장고에 있는 거 꺼내서 밥 차려먹어'라는 멘트는 우리 집에서 효용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전기밥솥이 없는 우리 집에서 오래된 압력밥솥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그래서 엄마가 없는 날 아빠의 저녁 메뉴는 늘 라면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저녁시간에 집을 비우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다른 식구들이 밥상을 차리는 일로 고민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늦은 퇴근으로 아빠와 같이 밥을 먹지 않더라도, 나를 위해 따뜻한 고기반찬을 새로 해주시던 엄마.

엄마의 밥상에는 밑반찬이 없는 것이 아니라 메인 요리로 가득 찬 밥상이었던 것이다.

전업 주부였던 엄마가 매일 성실히 주방 업무에 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따뜻한 밥상.

나는 푸짐한 메인 요리 하나로 밥을 먹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기 때문에 다양한 반찬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반면 신랑은 혼자서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꺼내 차려 먹는 일이 많았고, 한 달씩 같은 반찬과 같은 국을 먹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했다.


그러니, 내가 차려준 밑반찬 없는 밥상은 신랑에게 생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혼 7년 차, 나에게는 너무 당연했지만 신랑에게는 신기해 보였던 메인 요리뿐인 밥상 풍경은 점점 일반적인 식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부에게 엄마가 해주는 것처럼 매일 따뜻한 밥과 메인 요리를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뿐더러, 요즘의 반찬가게에는 맛있는 반찬이 너무나 잘 나오기 때문이다.

동네 반찬가게에서 한두 가지 반찬을 사 오고, 세화 오일장에서 젓갈도 빼놓지 않고 사 온다.

그리고, 주말에 시간이 되면 신랑이 좋아하는 밑반찬을 만들어 둔다.


집밥 백 선생으로 배운 멸치 볶음과, 북어채 무침은 신랑의 최애 음식이 되었고, 언제나 싱거웠던 메추리알 장조림도 조금씩 요령이 붙어 간다.

맛있는 집밥의 첫 기억이 내 음식이라며 치켜세워주는 신랑의 응원에 힘입어 하나씩 새로운 반찬에 도전을 해 본다.


그렇게 밑반찬을 모르던 나는 인터넷 레시피를 뒤져 하나씩 배워 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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