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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핌 Dec 07. 2022

여름에서 가을, 그리고 겨울로

Daily life

찬바람이 부는 겨울, 안부를 묻는 친구들은 간혹 제주의 날씨를 궁금해한다.

'제주도는 어때?'

'제주도도 겨울은 추워!'




코로나 확진이 빼앗아간 여름


주말마다 빠짐없이 물놀이를 즐기며 여름을 만끽하던 지난 8월의 어느 날,

코로나 확진이라는 어둠이 드리웠다.


전날부터 감기 기운이 있던 나,

회식을 다녀온 후 목소리가 변해버린 신랑,

불안한 마음에 저녁에 둘이 나란히 앉아 자가검사 키트로 간이 검사를 해 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둘 다 음성

안심을 한 나는 다음날 출근을 하였다.


그런데, 오전 11시쯤 신랑에게 전화가 왔다.

살살 아파오는 목의 통증에 아무래도 꺼림직한 기분이 들어 병원에 가서 신속항원 검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결과는 확진!


신랑의 전화를 받고 나도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병원에서의 재 검사에도 나는 여전히 음성!


혹시 몰라 회사에 이야기하고 재택근무로 스케줄을 바꾼 후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약간의 목의 통증과 미열만 있던 신랑의 증상은 점점 악화되기 시작했다.

39도가 넘는 고열에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과 타이레놀을 계속해서 먹어댔지만 좀처럼 열이 내리질 않았다.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지새운 다음날, 더욱 심해진 목의 통증 때문에 아무것도 넘기지 못하는 신랑을 위해 죽을 사다 주고는 다시 한번 검사를 위해 보건소로 향했다.


이번에는 확진자 밀적 접촉자로 PCR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하루 동안, 이미 나에게도 코로나 확진의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증상은 있지만 확진 판정은 받지 못한 애매한 상태로, 환자와 간병인의 모호한 경계 속에 물먹은 솜 마냥 몸은 점점 무거워만 졌다.


다음날, 확진 판정 문자와 함께 자가격리 안내 문자가 요란스레 도착했다.

집에서의 자가검사 키트 음성

병원에서의 신속항원검사 음성

보건소의 PCR 검사 양성


유증상 미확진 상태로 양성 판정을 받기까지 3일이 걸린 것이다.

신랑은 이미 3일째 고열과 목의 통증을 호소하며 약을 먹고 있었고,

비슷한 증상의 나는 이제야 병원에 갈 수 있었다.

나는 확진자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검색해 진료 후 약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확진 판정을 받고 나니 왠지 더 많이 아픈 것만 같아 입안에 약을 털어 넣고 이불속으로 몸을 눕혔다.

8월의 한여름 날씨에 으슬으슬 떨려오는 한기를 느끼며 솜이불을 싸고 누웠다가, 끊임없이 흐르는 땀에 범벅이 되어 에어컨을 틀고, 다시 전기 찜질팩의 온도를 한껏 높여 껴안고 있다가, 이번에는 냉동실에서 얼음팩을 꺼내 열을 식히기를 반복했다.

누가 누구를 돌보는 건 불가능한 상태, 환자 둘이서 생존을 위해 즉석 죽을 데워 겨우 한 숟가락 입에 욱여넣고는 약기운을 빌어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통증도 점점 약해져 가고, 어느새 일주일의 자가격리기간은 끝이 났다.

감기나 독감이 그러하듯이 코로나 증상도 격리 일주일이 끝났다고 씻은 듯이 말끔히 나아지진 않았다.

계속해서 남아있는 몸살 기운과 목의 미약한 통증으로 인해 말할 때마다 허스키한 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8월의 마지막 주, 나는 아직 완전하지 않은 몸상태로 마스크를 꽁꽁 둘러맨 채 출근을 했다.


그렇게 8월의 절반을 코로나로 잠식 당한채 날려 버리고, 곧바로 9월 첫째 주 태풍 힌남노가 찾아왔다.

태풍이 지나고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에 추석명절까지 쇠고 나니 9월도 절반이 흘러버렸다.

여름의 끝자락을 느껴보기도 전에 매서운 바람이 불어닥친 것이다.


유독 주말마다 흐린 날이 많았던 여름이라 올해는 제주의 푸른 물속에서 스노클링을 하지 못했더랬다.

인파로 미어터지는 한여름을 피해 8월 말~9월 초 물놀이를 가자며 새로 장만해 놓은 스노클링 마스크는 결국 꺼내 보지도 못했다.

아쉽지만 못다 한 물놀이는 내년을 기약하며 주섬주섬 물놀이 용품들을 정리해 넣었다.




가을여행


흐지부지 지나간 여름의 끝자락이 아쉬웠던 만큼 우리는 주말마다 제주의 곳곳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서귀포의 현대미술관도 다녀오고,

돌문화공원에서 열린 힐링스톤즈 공연도 보면서 문화생활을 즐겼다.

그리고 미뤄둔 제주도의 섬 투어를 위해 배편을 알아보았다.


섬 속의 섬

우도, 마라도, 가파도, 비양도, 추자도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섬들이 많지만 사람이 살면서 정기적으로 배가 다니는 곳은 이렇게 다섯 곳이다.

우도는 예전에 다녀왔고, 추자도와 가파도는 봄 여행을 준비했지만 배편이 맞지 않아 실패했었다.

그중 이번 가을에는 마라도와 비양도를 다녀올 수 있었다. (섬 여행기는 다른 편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제주도의 섬 여행을 준비하면서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섬은 날씨와 배편에 따라서 생각처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비 온 뒤 힘차게 쏟아지는 정방폭포를 감상하고, 올레 6코스에 위치한 소라의 성에서의 잔잔한 여운, 그리고 서복 전시관에서 바라보는 제주의 반짝이는 바다와 청명한 하늘에 감탄을 하였다.


관광객이 많아 가지 않던 허브동산에서 핑크뮬리도 보고, 우거진 숲길을 차로 가로지를 수 있는 서귀포자연휴양림을 지나며 단풍구경도 실컷 하였다.


그렇게 주말마다 즐거운 제주투어를 다녔지만, 코로나 보복심리로 TV마다 각종 여행지가 소개될 때마다 우리는 새롭게 여행욕구를 불태웠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도에서 여행을 다니는 것은 왠지 집 앞에 나들이 가는 기분이기 때문에 결혼 후 한 번도 가지 않은 육지 여행이나 해외여행이 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일단 만료된 여권을 새로 발급받았다.

여권을 받아 들자 왠지 바로 내일이라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저런 여건사 해외보다는 국내여행으로 눈을 돌렸다.


결혼 7년 만에 처음 떠나는 둘만의 육지 여행!

그 시작으로 선정된 여행지는 '경주'

3박 4일의 여정에 김해공항에 내리는 겸사 부산에서의 1박도 덤으로 넣었다.

육지의 추운 날씨를 걱정했지만 여행 내내 덥다를 위치며 외투를 벗어들 정도로 화창하고 맑은 날씨가 여행을 도와주었다. 오랜만에 육지 나들이에 들떠 모자란 체력을 쥐어 짜내며 열심히도 돌아다녔다.

그토록 먹고 싶었던 황남빵과 함께 보고 싶었던 경주의 신비로운 야경까지 모두 클리어하고 경주를 떠나는 마지막 날, 아쉬워하는 우리의 마음처럼 부슬비가 내렸다.





겨울의 시작


여행에서 돌아오니 차가운 제주의 밤공기가 우리를 반겼다.

미세하게 다른 공기의 질감과 풍겨오는 익숙한 향기가 왠지 모를 안도감을 주었다.


밭마다 익어가는 노란 귤나무

가게마다 꺼내놓은 파치 귤

마트마다 진열되는 방어회

집에서 보내준 김장김치

처음으로 꺼내 입은 패딩 점퍼


이제 정말 겨울이다.

가슴 설레고 활기차고 아름답고 충만했던 가을이 지나고 시작되는 겨울.


단지 차갑지 만은 않기를, 새로운 모험과 즐거움이 있기를,

몰려오는 피로와 추위에 잔뜩 웅크리고 재미없는 TV의 의미 없는 소음과, 휴대폰 속 세상에 갇혀 시간을 보내지 않기를, 혹독하지 않고 포근하고 따스한 겨울이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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