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카쓰족>입니다.

by 라라앤글

남편의 외벌이로 허리띠를 졸라매며 하루하루 계산기를 두드리던 어느 날. 아이들을 돌보며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보다가 쇼핑몰을 운영하게 되었다. 돈 버는 재미도 잠시. 아이들은 뒷전이고 카톡 문의에 답하고 주문 신경 쓰느라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낮이고 밤이고 잠을 못 자니 간수치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아 입원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집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아이들이 방치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건강마저 잃고 보니 이건 아니다 싶어 병상에서의 고민이 깊어만 갔다.


그래! 집에서는 살림과 육아를 하고 일은 나가서 하자! 굳은 결심을 가지고 일을 구해 봤지만 10년 가까운 경단녀에게 사회는 호락호락하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맘카페를 통해 식당에서 서빙과 설거지를 하는 알바를 겨우 구할 수 있었다. 고정급을 받는 일이라면 설거지가 대수랴. 집에서 꽤 떨어진 거리였지만 아이들 간식 값이라도 벌자는 생각에 열심히 걸어 다니며 설거지를 했다. 서빙이나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는 힘들지 않았지만 손님이 없어도 짜증, 많아도 짜증, 배민 주민이 밀려도 짜증, 배달 기사가 늦게 와도 짜증, 온갖 짜증과 히스테리를 부리는 사장이 견디기 힘들었다.


식당알바 4시간에 몇 시간만 더하면 사무실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문을 두드려 드디어 사무실에 앉아 일을 시작 하게 되었다. 찬바람 쌩쌩 맞으며 언 손 호호 불어가며 설거지를 하다가 따뜻한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감사하던 사무실 근무도 하루만 쉬었으면 좋겠네 노래를 부르는 고달픈 일터로 변해갔다.






한 달에 단 하루. 40대 워킹맘의 월차는 귀하고 또 귀하다. 부지런 떨며 정신없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아도 되고, 지하철까지 바삐 뛰어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여유로운 아침이다. 그러나 직장인의 소중한 월차는 주부에게는 쌓인 집안일을 처리하는 대청소의 날이기도 하다.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던 이불의 얼룩이 보이고, 싱크대 물때가 유난히 신경 쓰인다. 이불 빨래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구석구석 눌러앉은 먼지를 닦아 내고 주방까지 한 바탕 뒤집어 놓으면 어느새 아이들이 돌아오고 하루가 다 가 버린다.

"집에서 좀 쉬었어?"

"내가 오늘 쉬었냐고? 반짝반짝해진 집을 보고도 지금 그 말이 나오는 거야?"

퇴근하고 인사치레로 한 마디 하는 남편에게 괜한 화살이 날아간다. 다음 날 잘 쉬었냐고 의미 없이 물어보는 상사에게도 미소 가면을 쓴 채 대청소를 해서 힘들었노라고 공허한 하소연을 날릴 뿐이다.

"쉬긴요, 집안 대청소 하느라 너무 힘들었어요. 차라리 나와서 일하는 게 나아요. 하하하"







<브런치작가>가 된 이후 처음 맞이하는 월차다. 평상시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서 "어서 먹고 가" 부르던 노래를 잠시 멈추고 샤인머스캣을 식초물로 깨끗하게 씻어 먹음직스럽게 담아 아이들에게 내밀어 본다.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나의 월차를 알리지 않았다. 오늘만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나만의 휴식을 즐기고 싶다.

모두가 떠난 집. 아침이 이렇게 고요했던가? <브런치스토리>의 수많은 이야기 세상에 빠져들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오늘도 여지없이 아이 책상에는 쓰레기가 가득이고, 싱크대 위는 정리되지 않은 식기들로 어지럽다. 얼룩 묻은 이불이 나 좀 빨아 주세요 부르고 있지만 애써 못 본 척 눈을 감았다. 해야 할 집안일을 주말로 미뤄두고 조용히 노트북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오늘만큼은 주부이고 싶지 않다.


카페에는 왜 이렇게 노트북을 켜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많을까? 옆에는 두꺼운 외국어 서적도 보인다. 과제를 준비하는 대학생인가?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직장인인가? 두꺼운 자격증 문제집도 많이 보인다. 일명 <카공족>이라고 불리는 그들 옆에서 평상시에는 책만 읽던 나도 오늘은 조용히 노트북을 펼쳐본다.

평일 환한 대낮에 카페에서 노트북을 켜고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타타타타 경쾌하게 키보드를 두드린다. 깜깜한 밤도 아니고 대낮에 말이다. 근무시간에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글을 쓰고 있다니! 이곳에서 나는 회사원도 아니고 집안일을 밀어놓고 나온 주부도 아니다.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 브런치 작가다. 오늘만은 카공족 사이에서 글을 쓰는 <카쓰족>이 되어 본다.


카스맥주 맛은 잘 모르지만 평일 대낮에 글을 쓰는 카쓰는 꽤 맛이 있다. 힘겨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벌컥벌컥 들이켜는 카스맥주 보다 더 시원하고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이다. 식구들 아무도 나의 월차를 모르기에 카페에서 실컷 글을 쓰고 책도 읽다가 퇴근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갈 생각이다.

TV뉴스에서 카공족 때문에 힘들다는 카페 사장님들의 하소연을 본 적이 있다. 나 마저 그들을 힘들게 해서는 안된다. 다행히 내 카톡 선물함에는 다양한 카페의 기프티콘이 잠을 자고 있다. 오늘은 그 기프티콘을 좀 깨워야겠다. 한 카페에서 3시간을 넘게 앉아 있지 않을 생각이다. 아메리카노, 허브티, 밀크티 글을 쓰며 물배를 채워보자.


카페에서 맘 편히 글을 쓸 수 있도록 기프티콘을 선물한 지인들에게 무한 감사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들 덕분에 오늘 나는 <카쓰족>이 되었다. 딱 기다려! 내가 글로 성공하면 카페 기프티콘 열개씩 파바박 쏴 줄 테니까!


그런 김에 내 최애 단톡방에 두근두근 선물게임으로 커피 기프티콘을 한번 더 쏴야겠다. 그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누군가에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줄 테니까 말이다. 비록 스타벅스 커피는 아닐지라도 오늘 기프티콘을 받은 작가님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카쓰족>이 되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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