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초고는 쓰레기입니다. 톨스토이뿐만 아니라, 제 스승인 이은경 작가님도 말씀하셨고요, 모든 작가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쓰기를 시작하세요. 감사로 물드는 삶을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강연도 무사히 마쳤다. 연이은 강연에 피곤이 몰려오지만 <봄빛라라의 감사한 하루> 책에 사인을 받고자 기다리는 독자들 앞에 고마운 마음으로 마주해 본다.
"작가님, 오늘 강연 정말 좋았어요."
"작가님 책 읽고 저도 이제 써 보려고 해요."
"저도 작가님처럼 감사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작가님 사진 같이 찍어요. 브이~"
글을 쓸 용기를 얻었다. 에너지를 받았다. 다음 강연은 언제냐. 어떻게 하면 작가님처럼 긍정적일 수 있냐...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강의 후기를 찬찬히 살펴본다. 흔들리는 차 안이라 그런지, 50대 들어 노안이 더 심해진 건지 자꾸 눈물이 맺혀 폰을 닫았다.
"김작가님, 나 이 앞에서 세워주세요. 아이들 먹을 빵 좀 사가려고요. 오늘 기사역할 해 줘서 고마웠어요~ 다음에 맛난 저녁 함께 해요 알았죠?"
출고대기 중인 차가 일주일 더 연기되는 바람에 발이 묶였지만 다행히 후배 김작가가 기사를 자처하는 덕분에 지방 강연에 편히 다녀올 수 있었다. 작가와 팬으로 시작된 만남이 후배 작가에서 좋은 동료 작가로 발전했다. 아직까지도 내 팬을 자처하는 귀여운 김작가다. 사양하는 김작가 손에 기어코 케이크를 들려 보내고서야 안식처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이여사님,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이번주는 강연이 없어서 더 안 오셔도 될 거 같아요. 여사님도 푹 쉬세요"
"작가님 정말요? 내가 이래서 나작가님을 못 떠난다니까"
마다하는 이여사님 손에도 케이크 하나를 들려 보낸다. 이여사님의 손끝에서 탄생한 맛있는 반찬들이 어서 와서 먹어 달라고 손짓을 하는듯하다. 초등학생 입맛인 나에게 여사님의 불고기는 하루의 피곤을 다 녹이는 천상의 맛이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미역국 불을 끄고 먼저 욕실로 들어가 하루의 피로를 씻어낸다.
고1이 된 영웅이(가명)는 하교 후 수학학원을 지나 영어학원에서 공부하고 오는 것이 일과가 되었고 6학년 가인이(가명)는 피아노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이다. 한동안은 아들한테서 찬바람이 불다가 잠잠해지더니 요즘에는 딸내미한테서 찬바람이 느껴진다. 으이그 이 사춘기 상전들 같으니라고.
"어? 당신 벌써 왔어? 지방 강연이라 늦게 올 줄 알았더니"
"김작가님이 집 앞까지 데려다줬어. 빨리 씻고 와서 밥 먹어 오늘따라 미역국이 너무 맛있네"
오랜만에 집에 일찍 들어온 남편 얼굴에 화색이 돈다. 무슨 좋은 일이 생겼나? 주인 만난 강아지처럼 보이지 않는 꼬리를 흔들며 손만 잽싸게 씻고 와서는 내 앞에 앉는다.
"오늘 1층 마지막 집 분양됐어. 이제 다 끝났어. 아~ 홀가분하다"
분양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마지막 호수 계약이 성사됐나 보다. 건물 땅 보러 다닌다고 고생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럴듯하게 올라가서 벌써 분양이 마감 됐다. 야근도 많이 하고 현장 사람들 상대하느라 한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 수고했노라고 엉덩이를 팡팡 쳐 주니 기분이 좋아 보인다. 결혼한 지 20년이 다 돼 가는데도 한결같이 애교 많은 남편이다.
"이번 휴가는 한 달 정도 가는 게 어때? 하와이를 갈까? 아니면 괌은 어때?"
성공하면 호강시켜 주겠노라고 노래를 부르더니 이제는 시간만 나면 여행을 못 시켜줘서 안달이 난 사람 같다. 성공 = 해외여행 공식이 있는 사람처럼 세계일주를 할 기세다. 집에서 쉬는 게 제일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또 오래간만에 해외에서 만끽하는 휴식을 놓칠 거 같아 입을 꾹 다물었다.
"영웅이도 고등학생이고, 가인이도 중학교 입학 준비해야 해서 한 달은 힘들어. 그리고 나 2주 후에 강연 잡힌 게 있어서 멀리 못가. 우리 발리로 일주일만 다녀오자"
당신 편할 대로 하라는 남편의 말을 듣고 싱크대로 그릇을 옮긴다. 간단히 애벌 헹굼후 고마운 식세기 이모님께 설거지를 맡긴다. 주 3회 오시는 살림박사 이여사님의 손길에 거실에 먼지 한 톨이 없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 항상 감사하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 11시. 이제야 조용한 나만의 시간과 마주한다. 따끈한 카모마일 차 한잔을 마시며 노트북을 켰다. 2028년 11월도 저물어 간다. 올해도 달력 한 장 밖에 남지 않았다. 쉰 하나가 되고 보니 인생의 속도가 50km대로 달려가고 있는 듯하다.
이번주 토요일에는 오랜만에 슬초2기 작가님들을 만나기로 했다. 다들 출간회다 강연회다 공사다망해서 날짜 한번 맞추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동안 서로를 격려하며 꾸준히 읽고 쓰기에 매진한 보람이 속속들이 드러나는 요즘이다. 여고생들도 아닌데 만나면 깔깔깔 웃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단골 안주거리인 남편, 시댁 흉부터 시작해서 어느 집 자식이 사춘기로 애를 태우는지, 어느 작가가 무슨 책을 쓰기 시작했다는 뉴스도 빠지지 않는다. 읽기도 쓰기도 조금만 게으름을 피웠다간 나를 가만히 놔두질 않는 귀여운 시어머니들이다. 다이어리에 적혀 있는 그녀들과의 약속장소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본다.
5년 전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 무엇을 하며 살고 있었을까.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이은경 선생님을 만난 것도, 글쓰기의 동반자 동기작가님들을 만난 것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글쓰기와 함께 시작한 감사 다이어리가 벌써 다섯 권째 마무리가 되어 간다. 말씀을 묵상하고 하루를 감사하는 기도시간은 나를 돌아보고 정화시키는 소중한 일상이 되었다.
1. 지방 강연에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2. 남편의 건물 분양이 마감되어 감사합니다.
3. 우리 식구 모두 건강하고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4. 부모님의 감기가 나아서 감사합니다.
5. 꾸준히 쓰게 하시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다섯 가지 감사의 제목을 기록해 본다. 항상 기쁜 마음으로 늘 기도하며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때로는 시련에 부딪힐 때도 있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는 마음이 더 큰 감사의 제목으로 돌아온다.
출처 - pixabay
이번 책도 순조롭게 써 나가고 있고, 다음책의 계획서까지 마무리가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 주변 감사할 모든 것들이 글쓰기의 원동력이다. 끊임없이 나에게 글감을 주고 쉼 없이 쓰게 하심에 감사하다. 마침 다음 강연의 주제가 <감사하는 삶>이라고 하니 글쓰기를 하며 얼마나 감사한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강연을 준비해야겠다.
오늘도 감사, 내일도 감사. 살아온 날도 감사, 살아갈 모든 날이 감사뿐이다.
5년 후인 쉰여섯 살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실행하고 이루어질 꿈을 기록해 봐야겠다.
5년 전의 꿈이 지금 현실이 된 것처럼.
2028년 11월 어느 날 밤에 봄빛라라.
5년 후의 삶을 그리는 숙제로 작성한 미래 일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