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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on May 10. 2020

“쌍둥이 아빠의 풀타임 육아기 - 슬기로운 육아생활”

8. 아빠와 가자미 구이

2020년 5월,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선을 구웠다. 그것도 미국에서 말이다. 육아를 하고 요리를 하게 되니 처음 해보는 것이 많다. 작년에는 처음으로 콩나물국을 끓였고 소고기 뭇국도 미역국도 끓여 봤다. 국 요리를 하다 보니 간을 잡고 맛을 내는 노하우가 생겨 이제는 아내도 국은 내가 더 잘 끓인다고 인정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모든 국의 맛은 엄마가 해준 맛과 거의 똑같다.      


결혼하기 전에 먹었던 엄마 음식이 여전히 나의 입맛을 지배하고 있다. 결혼 후 아내가 해준 음식이 적지 않았고 나도 어느 정도 아내의 음식에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입맛의 근원은 엄마에게 있었다. 세 살 버릇 여든을 가고 세 살 입맛이 평생을 가나 보다. 입맛뿐만 아니다. 나는 엄마가 했던 대로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다. 엄마처럼 반찬보다 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밥을 안 먹는다 싶으면 따라 다니면서 먹인다. 아이들이 밥을 먹고나면, 그제야 아이들이 남긴 밥과 반찬에 내가 먹을 것을 보태 식사를 한다. 과일도 마찬가지다. 애들 먹고 남은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맛을 본다. 엄마한테 제발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나 역시 똑같이 하고 있다.      


오랜만에 한인 마트에 가서 생선을 샀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에 갔으니 두어 달 만에 갔다. 보통 생선 요리는 아내가 하는데, 이번에는 내가 도전했다. 한국에 있을 때 엄마는 쌍둥이들이 할머니집에 오면, 가자미와 삼치와 고등어를 맛있게 구워 가시를 발라 아이들을 먹여주시곤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생선을 무척 좋아한다.  아빠가 처음 구워보는 생선은 가자미다. 처음이지만 왠지 모를 자신이 있었다. 옆에서 엄마가 생선을 구워 주시던 것을 하도 많이 봐서 그랬나 보다. 서당의 개는 3년이면 풍월을 읊고 엄마의 생선구이 45년이면 아들은 인터넷을 뒤지지 않고도 생선을 굽게 된다.

   

엄마가 하던 방식을 떠올렸다. 먼저 생선을 찬물로 씻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불로 달군 다음 가자미를 올려 놓았다. 그리고 조금 굽다가 다른 프라이팬으로 생선을 덮었다. 엄마가 생선 굽는 것을 옆에서 볼 때는 왜 프라이팬 2개가 필요한지 몰랐다. 직접 해보니 열손실을 막아 생선이 고루 잘 익었고, 생선 굽는 냄새가 덜했다. 한쪽이 노릇노릇해지면 뒤집어서 반대쪽을 굽고 똑같이 프라이팬을 덮었다. 이것을 몇 번 반복하니, 엄마가 해주셨던 맛있는 가자미 구이가 탄생했다. 아이들은 아빠의 가자미 구이가 할머니표 가자미 구이와 맛이 똑같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에가면 할머니 집에 가서 생선을 많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역시나 나는 엄마처럼 생선 가시를 발라주고 아내와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아내와 아이들이 다 먹고 남긴 가자미를 궁상스럽게 먹었다. 먹어 보니 엄마가 해주셨던 가자미 구이와 간과 맛이 거의 똑같았다. 뿌듯했고 그리웠다. 나에게 엄마는 적어도 자식을 위한 사랑과 헌신에 있어서는 절대선의 영역이다. 엄마가 나에게 주셨던 사랑과 헌신의 반만큼이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어서 매일 몸부림치며 슬기로운 육아를 해보겠다고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고 있지만, 엄마를 따라가려면 한참은 멀었다. 아니 따라갈 수도 없다.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는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아이들은 사랑한다. 그런데 그 방식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을 키운 부모님의 모습을 닮게 된다. 나 또한 자식을 기르면서, 외모뿐만 아니라 생활과 육아의 방식조차 부모님과 닮아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나이 먹을수록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닮아가고 나의 생각과 태도는 엄마를 닮아간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엄마와 아빠와 함께 추억과 경험을 쌓아가면서 아이들은 그 시간들을 눈에 담아 몸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이다음에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또 아이들을 낳아 기르게 될 어느날, 지금의 나처럼 엄마와 아빠를 닮아가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아빠는 늘 피곤해했고, 우리와 놀 때도 별로 웃지 않았고, 우리 얘기를 들어주기보다는 아빠 생각대로 시키고 지시했던 그런 아빠로 기억되지는 않을까? 확실히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은, 좋은 부모 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고 방기할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나 또한 가장 보람된 일이 바로 자식을 기르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여전히 모자라고 부족해도 좋은 아빠가 되고 싶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내가 할아버지가 되고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아빠가 미국에서 처음 구웠던 그 가자미가 너무 맛있었다고 말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며칠 전 어버이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엄마에게 생선을 처음 구웠는데, 너무 맛있게 잘 구웠다고 자랑도 하고 싶었지만 얘기하지 못했다. 감사하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쑥스러워 차마 꺼내지도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엄마는 나의 마음을 안다는 것을 말이다. 말하지 못해도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은 언어를 뛰어넘는다. 그 마음은 엄마의 삶에 심겨 깊이 뿌리를 내리며 엄마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나는 기꺼이 한없이 사랑하고 한없이 감사한 엄마의 시간으로 들어가 엄마를 향해 달려 간다. 그립고 보고 싶은 엄마. 엄마.


엄마의 생선구이가 이제 아들의 생선구이가 됐다. 엄마의 손맛도 아들의 손맛이 됐고, 엄마의 육아도 아들의 육아가 됐다. 그렇게 엄마의 시간은 아들의 시간이 된다. 그리고 또 그렇게 나의 시간은 우리 아이들의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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