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미국 공립학교 Pre-K 졸업
드디어 지난주 쌍둥이들이 미국 학교 Pre-K 졸업식을 했다. 이제는 대세가 되어버린 zoom 졸업식이었다. 먼저 교장 선생님의 격려와 칭찬이 있었다. 그런 다음 각 반 선생님이 차례로 돌아가며 자기 반 아이들에게 상장을 주는 순서였다. 그래서 졸업식 이름도 Awards Ceremony였다. 나는 어렸을 적 받았던 개근상, 특별상, 우수상 같은 상을 주나 보다 했다. 그리고 작년에 와서 영어 한마디 못 하지만, 학교를 열심히 다닌 우리 아이들에게도 상이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상이 있었다.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반의 모든 아이들이 상을 받았다. 상의 내용도 다양했다. 과목별 학습에 대한 상도 있었고 매너가 좋다는 상도, 친절상도 있었다. 예술상도 있었고 모든 면에서 발전을 했다는 발전상도 있었다. 우리 아이들의 경우 한 명은 수학을 잘한다는 상이 었고, 한 명은 읽기를 잘한다는 상이 었다. 수학은 한국에서 유치원을 다녔고, 미국 아이들보다 한국 아이들이 수 개념이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영어 한 마디도 못하는 아이가 읽기 상을 받는 것은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애들한테 물어봤더니, 읽기 상을 받은 둘째는 심심해서 쉬는 시간에 반에 있는 영어책을 몇 번 그림만 봤다고 했고, 첫째는 영어로 말 한적도 없는데, 잘 모르겠다고 했다. 어쨌든 낯선 학교를 성실히 다닌 아이들에 대한 칭찬과 격려로 생각됐다.
각 반별 어워드 순서가 끝나고 아이들 모습을 담은 영상을 틀어줬다. 우리 아이들도 나왔다. 학교에서 수업하는 사진도 나오고, 젖소가 있는 차 주위에서 반 친구들과 같이 찍은 사진도 있었다. 만들었던 작품을 들고 복도를 퍼레이드 하는 사진도 등장했다. 아이들 표정이 나쁘지 않았다.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데,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해서 학교 다니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군소리 없이 학교를 잘 다녀준 쌍둥이들이 대견하고 기특했다. 아빠보다 낫다. 아빠는 미국 생활이 낯설고 사람들이 호의적이지 않고 차별하는 것 같아 마트 가는 것도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아이들은 학교를 정말 잘 다녀줬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유연했고, 강했다.
작년 10월 초 미국에 와서 2주간 적응기간을 마치고 10월 중순부터 학교를 알아봤었다. 근처 공립학교는 쌍둥이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지역 교육청을 찾아갔고, 교육청 직원의 도움으로 집과 가깝고 아이들 입학이 가능한 지금의 학교를 소개받았다.
처음 두 달은 등교 시간이 7시 30분인 줄 알고(7시 50분까지였다), 6시 50분에 아이들을 깨웠다. 계란 프라이와 누룽지, 사과로 아침을 먹고 양치를 하고 차에 태우면 7시 20분이 되었고, 7시 30분에 학교에 도착했다. 등교하던 첫날만 반까지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었다. 다른 것은 대충 눈치껏 하면 되는데, 화장실이 걱정이었다. 선생님께 미리 이메일로 물었더니, 다행히 화장실 가고 싶을 때 선생님께 하는 표시가 있어서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땐 손가락을 엇갈리게 하면 된다고 했다.
등교 첫날 아이들을 반에 데려다주고 마지막 화장실 연습을 했다. 그리고 나서 말 한마디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완전한 낯선 세계에 아이들을 두고 나왔다. 교실을 나오는데, 마음이 먹먹했다. 나의 수심어린 얼굴을 보고 복도에서 어떤 선생님이 다가와 아이들은 강하고 잘 해낼거라고 위로의 말을 해주기도 했다. 수업이 오후 2시 20분에 끝나는데, 2시부터 와서 미리 기다렸다. 나올 때 아이들 표정이 좋아 나도 마음을 놓으며 활짝 웃었다. 그렇게 미국 학교 생활을 시작해서 코로나로 일주일에 3번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졸업을 하게 된 것이었다.
지난 7개월 동안 아이들은 부쩍 성장했다. 키가 많이 컸고 몸무게도 제법 늘었다. 신체 발달뿐만 아니라 학습적인 발전도 꽤 있어서 한글을 떼고 동화책을 스스로 읽게 됐다. 천자문을 일독하고 덧셈 뺄셈 곱셈을 할 정도로 소위 머리가 트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실 무엇보다 가장 대견하고 흐뭇한 것은 아이들의 버티기 능력, 지구력과 적응력의 신장이다. 말이 통하지 않은 상태로 시작해서 결국 말이 통하지 않은 채로 학년을 마쳤지만, 언어의 불통 속에서도 기죽지 않았다. 눈치와 정신력을 최대한 끌어내면서 학교에서 주는 패스트푸드를 벗삼아 학교를 다녔다. 쌍둥이 동생이 형에 비해 미국 학교를 좋아했는데, 이유는 한국 유치원과 비교해서 햄버거를 주고 학교 놀이터에서 많이 놀게 해 주며 그리고 낮잠시간이 있다는 것이었다.
쌍둥이라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낯선 세계에 처음 발을 디딘 쌍둥이들은 똘똘 뭉쳐 자신에게 닥친 인생 최초의 위기를 극복했다. 그래서 낮잠을 잘 때는 서로 포개져서 자고, 쉬를 하러 갈 때는 한 명이 갈 때 같이 갔다. 다른 미국 친구들을 사귀기보다는 둘이서 놀면서 형제 사랑을 몸으로 실천했다. 그 결과, 영어가 하나도 안 늘어서, 선생님은 다음 학기 Kindergarten으로 올라갈 때, 반을 나눠서 가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지만, 언어 소통 제로에서 시작해서 제로로 끝난 미국 학교를 견뎌낸 아이들은 분명 어느 곳에 가더라도 버티고 이겨낼 자신감과 적응력, 생존능력을 몸으로 익혔을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아이들의 졸업식은 쌍둥이들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었던 뿌듯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이렇게 나무처럼 자란다. 나무는 춥고 더운 계절을 견디고 거센 비바람을 맞아내며 땅 속으로 깊이 뿌리를 박아 아름드리 거목으로 성장한다. 우리 아이들이, 아니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뿌리가 깊고 든든한 나무처럼 자라났으면 좋겠다. 뿌리 깊은 나무는 웬만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 꽃은 아름답고 좋으며 그 열매는 풍성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