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yon Jul 03. 2020

“쌍둥이 아빠의 풀타임 육아기 - 슬기로운 육아생활”

10. 엄마가 좋아-아빠는 왜?

조금 더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시작했던 슬기로운 육아생활은 아내의 방학 시작과 함께 잠시 휴지기에 들어갔다. 아내는 학기가 끝나자 나에게 많은 자유 시간을 주었다. 또 요리의 부담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는데, 나는 아이들의 아침만 챙겨주면 됐다. 아침이라고 해봤자 누룽지, 계란, 과일, 미숫가루 정도니까 큰 부담이 없었고, 나는 예전 직장 다닐 때처럼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고 아내가 힘들 때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주기만 하면 됐다. 그러다 보니 다시 아내가 육아와 살림을 이끌어 나가게 됐는데, 아이들은 나와 시간을 보낼 때 보다 훨씬 표정이 밝아졌고,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통제적이고 잘 웃지도 않으며 아이들 입맛에 맞는 요리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은 아빠 대신, 아이들 얘기에 계속 웃어주고, 아이들 하자는 대로 행동하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리를 척척 만들어 내는 엄마가 하루 종일 옆에 있으니 쌍둥이들은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자식을 잉태하고 배에 품어 길러 낳은 엄마와 아빠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생명으로 연결된 엄마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사랑과 헌신의 삶 그 자체다. 문득 온갖 폼을 다 잡고 생색을 냈던 나의 육아는 한낱 잘 꾸민 포장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이 엄마에게 이끌린다는 본능의 요소를 제외하고 나와 아내의 가장 큰 차이점은 통제와 웃음이다. 이것은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여전히 나에게는 숙제다. 아내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 대체로 허용하는 편이다. 그런데 나는 여러 이유를 들어 제지하는 쪽이다. 아이들이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둘 다 먹고 싶다고 하면 아내는 괜찮다는 입장이고, 나는 몸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아이들이 10시가 넘어서 더 놀자고 하면 아내는 뭐 하고 놀까라고 하지만, 나는 불 끄면 잠이 온다고 하면서 불을 끈다. 이처럼 나는 거의 대부분 이성적인 이유를 제시하는데, 정작 아이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아마도 그것은 여전히 내가 아이들의 눈높이에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이해와 공감이 아닌 명령과 지시가 되고 만다.      


명령과 지시는 빠르고 효율적이다. 책임이 분명하고 주어진 일이 명확하며 비상 상황이거나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둔 긴장의 언어다. 나는 처음 해보는 육아와 살림을 그런 비상상황으로 여겼나 보다. 가뜩이나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는 위기상황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긴장상태로 육아를 했고, 많이 웃지 못했다. 어쩌면 슬기로운 육아생활을 하겠다고 목표를 세운 것 자체가 내면의 불안과 긴장이 반영된 증표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엄마는 별로 긴장하지 않는다. 낙천적인 성격 탓도 있겠지만 이미 축적된 경험을 통해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웃음을 안다. 또 엄마는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안다. 가끔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같이 먹어도, 또 가끔 잠이 안 올 때 조금 더 놀다가 늦게 자더라도 그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음을 알기에 엄마는 느긋하고 여유롭다.  

    

엄마가 주 양육자가 된 후, 쌍둥이들이 나에게 원하는 것은 레슬링과 싸움이다. 이건 확실히 엄마가 쉽게 해 줄 수 없는 영역이다. 몸으로 놀아 주는 것, 아이들의 공격을 피하며 다치지 않게 아이들을 신나게 안전한 매트 위로 던지는 것은 노하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경쟁력이 있다. 어쨌든 지금 나는,  지시와 통제가 아닌 땀과 웃음이 넘치는 레슬링과 싸움을 하며,  쌍둥이 아빠의 풀타임 육아 시즌1을 마감하고 있다.      


아빠는 엄마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엄마처럼 할 수는 있다. 아내처럼 해보자. 아내가 했던 것처럼 아이들의 얘기에 집중하고 반응하자. 아이들의 이야기를 수용하자. 어지간하면 아이들이 하자는 대로 하자. 아이들이 법질서를 무시하고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안 된다고 하지 말자. 아이들 눈높이에서 기준점을 두자. 아이들을 훈육하되, 잔소리가  되지 않게 반복되는 떼쓰기와 잘못에 대해서는 권위를 가지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많이 웃자. 계속 안아 주자. 이것이 나의 풀타임 육아의 결론이다.     

 

그런데,  쓰다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행동지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아이들에 대한 믿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직 어리다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불안하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아직 어리지만, 잘 모르지만, 비록 불안해 보이지만 쌍둥이들은 말 한마디 통하지 않던 미국 학교를, 학교 가기 싫다는 소리 하지 않고 거뜬히 다녔고, 코로나가 창궐하는 이곳 미국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즐겁게 생활하고 있지 않은가.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불안 대신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아이들은 이제 막 시작한 자신의 세계를 탐험하고 있다. 그러니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며, 모든 것이 궁금하고 신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내가 아이들을 믿는 만큼 아이들은 더 많이 탐험하고 더 넓은 인식과 경험과 세상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나의 역할은 아이들의 탐험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이다. 탐험에 필요한 것들을 제때 공급하며, 독사와 맹수가 우글거리는 쪽으로 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나는 쌍둥이 탐험가 아빠다.

매거진의 이전글 “쌍둥이 아빠의 풀타임 육아기 - 슬기로운 육아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