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판자를 타고 표류하는 자와 같은 망망함을 느끼고 있다. 그 판자 위에서 나의 상념 또한 물살과 같이 멈출 줄을 모른다. 언젠가는 이 판자가 가라앉거나 무언가에 부딪혀 부서질 것을 안다. 그렇게 되면 이 상념 또한 따라 멈출 것을 안다. 이 얄팍한 판자 위에서 내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나. 다만 조건부의 시간 동안 멈추지 않고 생각할 뿐이다. 그 생각을 기록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예전엔 기록할 가치가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전처럼 글을 열심히 적지 않게 된 지금으로선 무엇이라도 적는다면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곳엔 얼마나 많은 죽은 사람들의 글이 남아있을까? 아직 판자는 부서지지 않았고 그렇기에 나는 적는다.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들이 있다. 그렇지만 얼마 전 내가 적었듯이 지나고 보면 사건 자체보다는 거기에 대응하는 방식이 더욱 결정적임을 알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흘러가지 않고 평생 머무는 것이기에. 그것이 보다 본체에 가까운 것이기에. 이 판자 위에 탄 것은 사건이 아닌 대응 방식을 선택하는 한 존재이기에.
처음에 느끼는 망망함은 이제서야 비로소 고요함이 된다. 홀로 타고 있기 때문에 이 작은 판자가 가라앉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고독함은 도리어 안도감이 된다. 만일 내게 동행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의 불안과 우울을 덜어주려 애쓰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나는 지금 혼자 물 위에 앉아 있으니까.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존감을 키우라고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자존은 조금 다르다. 그 자존은 외부의 침략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 기인한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홀로 앉아 물안개에 놀라거나 구름의 그림자에 놀랄 것인가? 눈을 바로 뜨고 보면 침략이고 무엇이고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이 절망으로 다가오는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관계없으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선택하는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건 변하지 않으리라. 그것이 내 자존의 감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