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전어

by 교호

집 나간 며느리는 전어의 맛에 따라 돌아올 수도 있고 안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집 나간 전어’였다. 여기에는 어떤 희망도 가능성도 없다. 집 나간 전어는 어떻게 돌아오게 할 것인가. 그것은 이 길 잃은 문장들만큼 답이 없는 것이다. AI도 기가 막힌 문장을 쓰는 이런 시대에.


말 나온 김에 챗 GPT에게 이 문장을 가다듬어보라고 시켜보았다. 결과물은 이렇다.




이 문장의 매력은 전어라는 익숙한 속담을 비틀어, 갑자기 **‘집 나간 전어’**라는 불가능한 이미지로 밀어붙이는 데 있어요.

그 감각을 살리면서 조금 더 매끈하게 다듬으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원문의 결을 최대한 살린 버전:


집 나간 며느리는 전어 맛에 돌아올 수도 있고, 끝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집 나간 전어’라는 말이었다.

그 말에는 어떤 희망도, 가능성도 없다.

집 나간 전어를 어떻게 돌아오게 할 것인가.

그것은 길을 잃은 이 문장들처럼, 끝내 답을 찾을 수 없는 일이다.

AI 마저 기막힌 문장을 써내는 시대에.


조금 더 문학적으로 다듬은 버전:


집 나간 며느리는 전어 맛에 돌아온다고들 한다.

물론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 맴도는 말은 ‘집 나간 전어’였다.

그 말에는 기다림도, 희망도, 어떤 가능성도 없다.

전어가 집을 나갔다면, 대체 무엇으로 그것을 불러들일 수 있을까.

길을 잃은 이 문장들처럼, 그 또한 끝내 답이 없는 일이다.

AI 조차 기막힌 문장을 써내는 시대인데도.


조금 더 날카롭고 압축한 버전:


집 나간 며느리는 전어 맛에 돌아올지 모른다.

하지만 집 나간 전어는 다르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하필 그 말이었다.

그 말에는 희망도 가능성도 없다.

집을 나간 전어를 불러들일 방법은 없다.

길 잃은 문장들처럼, 그저 답이 없을 뿐이다.

AI도 번듯한 문장을 척척 써내는 시대에.


원하시면 제가 이걸

1) 더 시적으로,

2) 더 냉소적으로,

3) 더 담백한 산문처럼

톤을 나눠서 다시 다듬어드릴게요.




아니 됐다. 재료가 별로라서 그런가, 거기에 양념을 쳐봤자 영 별로인 것 같다. 아니, 세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가 점점 이 녀석이 더 잘 쓰기 시작하면 자괴감이 들어서 아무것도 쓸 수 없을 것 같다. 자괴감이 들 만큼의 무엇도 아닌 나지만. 그나마 이런 범인일지라도 글 한 줄 공개적으로 적을 수 없게 되면 어쩌겠는가. 어떤 글들은 지금 읽어보아도 '제법 괜찮네' 이런 글들도 있었는데. 브런치 앱에서 계속 보내던 메시지가 떠오른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답니다.” 옳습니다. 하여 또다시 몇 번이고 했던 다짐을 한 번 더 해봅니다. 어떤 말이라도 하겠습니다. 어떤 약이라도 달게 삼키고,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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