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편안해졌다.
엄마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이모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문자. 이모는 엄마랑 가장 친하고 내게는 한없이 편하고 좋은 이모였다.
너무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이렇게도 큰 아픔을 주었다.
믿을 수가 없고 가슴이 아려왔다. 내가 이정도면 엄마랑 사촌동생들 마음은 어떨까
그 생각을 하니 더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과 아픔이 하루종일 힘들었다.
죽음을 목도한 그들 옆에서 위로해주고 이모가 하늘 나라로 잘 가는 모습을 지켜야 했는데 그럴지 못해서 너무 슬펐다. 그러다가 마음공부하면서 많이 들었던 말들이 생각났다.
죽음은 삶의 시작이지 결코 끝이 아니다.
항상 생각해왔다. 뭔가 나쁜 행동을 한 사람들은 호화롭게 오래 오래 잘 사는데 반해
너무 착한 사람은 왜 이렇게 빨리 하늘에서 부르시는걸까 라고 말이다.
이번에도 정말 따뜻하고 정 많은 이모는 왜 이렇게 고생하시다가 가셨을까.
이렇게 죽음이 이 삶의 끝이라 생각한다면 이건 아무래도 불공평하다.
불공평하지 않으려면 정말이지 지금의 삶은 허상일지도 모른다.
죽음을 양자 물리학의 관점에 대입해서 생각해보니 꽤 괜찮은 결론이 나왔다.
김상운 작가의 <왓칭>을 보면 인간을 쪼개고 쪼개다 보면 분자 원자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텅빈 상태라고 한다. 결국 살아있는 몸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니 살아있어도 죽어있어도 결국 같은 것이다.
책에서는 우리들은 관찰자 입장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몸 속에 있다는 영혼은 밖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지구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이모는 결국 그녀의 영혼은 나와 함께 이 우주 안에 있다.
우리도 결국 아무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이걸 어렴풋이 이해하다보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죽음 자체를 슬퍼할 일이 아니었다. 슬퍼한다면 정말 이모가 이 세상에서 사라짐을 인정하는 것 밖에 안 되니까 말이다.
오늘은 그녀의 발인식이다. 가까운 치앙마이 절에 가서 그 하늘 나라에서 정말 여기보다 더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고 계시라고 말하고 결국 지금도 함께 있음을 느끼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