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쓰레기통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ntrea Jul 04. 2019

10. 그럴 수도 있지

경고: 읽고 싶은 사람만 읽으세요.

누구나 자신은 인식조차 못하지만
습관처럼 내뱉는 말들이 있다.
 
캄보디아에서 알고 지내던 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친한 동생이 나에게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자주 쓴다고
나의 언어 습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처음 나의 언어 습관에 대해서 인식하게 되었고
그 후에도 이해와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할 때면 그날을 떠올린다.

나 역시도 나의 말버릇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터라
꽤 깊은 시간 동안 그 생각을 이어갔다.

이해와 받아들임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같은 의미로 여기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꽤 다른 의미가 아닌가 한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언가를 조건 없이 그저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해라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지식 등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기반으로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느낌이 크다.
때로는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해의 과정이 끝난 후에 이루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이해와 받아들임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언어 습관의 이유를 찾던 생각의 끝에서 떠오른 어떤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나는 자존감과는 별개로 스스로의 생각에 대한 주관 혹은 고집, 때로는 아집까지 있는 편이다.
나의 언어 습관인 ‘그럴 수도 있지’는 그런 내 성격을 기반하여 튀어나오는 것들이 아니었을까.
이해와 받아들임의 중간에서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고 고민스러울 때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오는 말인 듯싶다.
 
또 더욱 솔직히 말해보자면
나와 다른 것에 대해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나의 몸부림이라고 해야 할까.
또 어쩌면 남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나만의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나와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해야 하는 일이며
특히나 직업의 특성상 그래야 했으니 그 언어습관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타인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할 나이기에
나는 앞으로도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통해 누군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가지 않을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9. 일이 삶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