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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숭깊은 라쌤 Oct 23. 2024

아이들은 기억한다, 그게 상처든 감사든

<교사의 단어 수집> - 아이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기억하다


동.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내다.




교사라는 직업이 가진 매력이자 고통인, 참으로 역설적인 한 가지 사실은 매년 다양한 아이들을 만난다는 점이다. 특히나 담임 업무를 맡게 되면 아이들의 ―스스로 감춰놓고 싶을― 모든 정보를 모조리 알게 된다. 유력 정치인 혹은 꽤 알려진 기업의 오너를 부모로 둔 아이들이 있는 반면 장애가 있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친구들도 있다. 물론 아예 부모님 없이 할머니 밑에서 자란 경우도 있다. 중요한 건, 그들 모두 교사에겐 똑같은 ‘학생들’이란 점이다. 부유한 집안의 자제라 하여 특별 대우를 하거나 편견을 가질 필요도 없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하여 무조건 관대함으로 대할 필요도 없다. 담임이란 이유로 학생의 개인정보를 그렇게 쏙쏙 알아가도 되느냐, 하며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담임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한다. 담임은 그들에게 부족한 내적 혹은 외적 요인들을 채워주기 위해 노력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기에 그들을 위해 담임이 할 수 있는 일은 적지 않은 편이다. 학교 동문회를 통해 마련된 장학금, 지역 사회 크고 작은 단체들의 기부금, 더불어 청소년들의 꿈을 응원하는 대기업의 지속적인 지원 사업 등등. 금액만 보면 소액일 수 있겠지만 40대의 10만 원과 10대의 10만 원이 지니는 가치가 다르듯 교사가 굳이 금액이 얼마인지를 판단할 필요는 없다. 무조건, 무조건 신청하고 본다! 가끔 복잡한 서류 작성으로 진이 빠질 때도 있지만 (서류 간소화를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받고 나면 뿌듯하다. 그 뿌듯함에 관하여, 이야기를 전해보고자 한다.     


그러니까 정복지군(이 친구는 꿈이 사회복지사였다)을 만난 건 2학년 문과반 담임을 맡았을 때였다. 원래도 이 친구가 어떤 스타일의 학생인지는 알고 있었다. 좋게 표현하면 밝은, 조금 안 좋게 표현하면 까불이 정도? 성격이 쾌활하고 남들 웃기기를 좋아하는 녀석 주위엔 늘 친구들이 가득했다. 그래서일까, 담임 반 명단에 정복지군의 이름을 확인하고선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있다. 원래 이런 시끄러운 녀석 한두 명이 있어야 학급 분위기가 훤하게 잘 유지되는 편이니까. 

3월 말, 여느 때처럼 한 명 한 명 개인 상담을 실시했고 녀석의 차례가 왔다. 그리고, 겉으로 확인되지 않았던 복지군의 아픔이 여실히 드러나고야 말았다. 그의 밝음은 내면의 어둠을 감추기 위한 오랜 노력의 결과였던 것. 그의 가정사를 상세히 설명할 순 없으나 어쨌든 그의 부모는 가난했고, 힘이 없었다. 그런데 사실, 그날 이후로 복지군을 위해 무언가 특별한 것을 제공해주거나 하진 못했다. 하필이면 그 해에 우리 반 멤버들 중에는 자살 위험군에 포함된 녀석 하나, 몸에 문신까지 한 사고뭉치 둘, 흡연 애호가 셋, 거기에 학폭 가해자도 한 명 있었고 업무는 그 어느 해보다도 과중했다. 흉년에 윤달이라 했던가, 고생에 고생이 더해진 아주 격한 한 해여서인지 솔직히 정복지군을 더 많이 신경 써서 챙겨주진 못했다. 녀석이 또 워낙 밝은 탓도 있기는 했지만.   

  

그러던 어느 날, 공문 하나를 받게 되었고 그건 장학생 신청과 관련한 것이었다. 맞다, 정복지! 정말 다행히도 그의 이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금방 서류를 작성해 제출했다. 신청하면 누구나 오케이, 는 아니었고 복잡한 심사 절차를 통해 학생이 선발된다고 했다. 그리고 합격자 발표일, 두근두근, 결과는 합격! 정복지군에게 총 100만 원의 장학금이 제공되었다. 그런데 또, 그러고는 끝이었다. 장학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들여다보질 못했다. 말했지만 그 해에 우리 반 멤버들 중에는 자살 위험군 하나, 문신 둘, 흡연 셋……     


세월이 흘러 골칫덩이들도 철이 들었고, 철이 들자마자 모두 둥지를 떠나 세상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복지군은, 학비가 싸단 이유로 ―꿈도 포기하고― 자기 성적에 못 미치는 저 멀리 지방 국립대에 입학했다. 한 학기가 지났을까, 방학을 맞아 굳이 시간을 내 모교에 찾아온 녀석과 저녁 식사 자리를 가졌다. 멀리서 왔는데 제대로 먹여야겠다 싶었으나 담임의 주머니 사정으로 인해 저렴한 삼겹살집으로 향한 우린 고기 대신 술을 아주 많이 마셨다. (참고로 제자와의 술자리는 딱히 추천하고 싶지 않다. 담임의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술자리에서 복지군은 학자금 대출을 받아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학업에 열중하고 있단 이야기를 전해주었는데, 조금 취기가 오른 뒤에는 거의 오열할 것 같은 수준으로 자기가 겪었던 지난날들의 고통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끝에서, 복지군은 내게 뜬금없이 ‘정말 감사하다’란 말을 했다. 그때 그 장학금 덕분에 포기했던 수학여행을 갈 수 있었다는, 평생 이 마음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말. 내게 전한 그의 메시지는 역시나 나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게 하였다.      


“나 말고, 세상에 갚아라.”     


멋있는 척하려고 뱉은 말이 아니라 정말 진심이었다. 내가 해준 게 아니었으니까. 그저 서류 작성한 게 전부였으니까. 그럼에도 복지군은 별거 아니었던 나의 그 사소한 업무처리로 인해 많은 것을 얻고 더 크게 성장했다.      

문득 생각한다. 세상에 사소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과연 있을까? 그게 일이든 말이든 그리고 마음이든. 어느 것도 하찮은 것은 없다. 아니, 그렇게 여겨야만 한다. 내게 별것 아니더라도 상대에겐 그것이 깊은 상처 혹은 감사로 남을 수 있을 테니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을 수 있다. 또한 무색무취에 전혀 인지되지 않는 산소라는 존재에게 누구도 관심 두지 않지만, 그게 없다면 우린 소멸한다.     

 

이번엔 문득 바라본다. 당신과 내가 세상 모든 것, 모든 순간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그래서 어느 누구도 절대 사소해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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