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단어 수집> - 아이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갈등
명.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함. 또는 그런 상태.
갈등.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타인 혹은 집단과의 충돌이 발생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이 단어는 우리 삶 내내 우리 곁을 맴돌며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꽤 우릴 괴롭히는 편이기도 한데 잘만 이용하면 우리의 하루를 더욱 값지게 완성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우린 반드시 ‘원인’을 밝혀야만 한다. 무엇 때문에 생긴 것인지 시작점을 알아야 엉킨 고리를 풀어낼 수 있을 테니까. 하나 쉽게 찾아내기가 어렵다. 왜냐고? 그렇게 쉽게 발견될 것이었다면 애초에 갈등이 발생하지 않았을 테니! 자, 그렇다면 왜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걸까? 그건, 갈등의 원인을 자꾸 타인에게만 두기 때문이다. 내 책임이란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게 어른, 아이를 넘어 모든 인간의 공통적 습성이다.
“열심히 해, 최선을 다해, 넌 할 수 있어!”
아이들에게 건네는 흔한 말. 그런데 과연 이게 용기를 주기 위한, 격려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는 말들일까? 실제로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는 상황에서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고 가정해보면 사실, 별 도움이 안 된다. 입에 발린 소리에 불과하다고 여기지 않을까? 그런데도 우린 늘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아이들을 독려했다고 여긴다. 듣기 싫은 잔소리만 늘어놓고선 말이다.
“열심히 하라고 했잖아! 왜 말을 안 듣니?”
결국 모든 대화는 이렇게 이어진다. 격려인 줄 알고 시작했던 말이 사실은 잔소리였고, 이내 ‘화’로 승화되는 결과를 어른이라면, 다들 겪어 보았을 것이다.
교사 경력 초반에 만난 윤미소양은 정말 미소가 예쁜 해맑은 친구였다. 친구들끼리도 사이가 좋아 세상 걱정 없어 보이는 그런 친구들, 하나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미소양에게도 나름의 고민거리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엄마’였다. 정확하게는 엄마와의 관계. 미소양의 어머니는 근처 중학교의 교사셨고 심지어 나와 같은 국어 과목을 담당하고 계신 분이라 지역 연수에서 종종 만나 뵌 적도 있었는데, 워낙 진취적인 성격이셔서인지 수석교사도 하시고 강연도 적잖게 하시는 아주 훌륭한 선배 교사셨다. 다만 교사 대 교사로 만날 때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는데 교사 대 학부모의 관계로 대화를 나눌 땐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미소양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찬찬히 말씀드려도 좀처럼 납득하지 못하시고 결론은 늘 ‘내가 알아서 한다’란 말만 되풀이하실 뿐. 학부모 상담임에도 후배 교사를 대하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게다가 마치 문제 상황의 원인이 엄마에게 있다는 듯한 뉘앙스가 전해지는 바람에 이후 미소양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 더 나빠졌다. 사실, 모든 건 나의 판단이 조금 섣부른 탓이었다. 교직 후배이자 인생 후배이며 미혼이라 자녀도 없는 사람이 담임이랍시고 무어라무어라 하는 말이 좀처럼 와닿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리하여, 방법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미소양은 끝까지 엄마와의 관계 회복을 원하고 있었기에 아직 포기할 수 없었다.
“엄마 잔소리가 더 심해졌어요. 자꾸 왜 그러는지 몰라.”
“미소야, 엄마가 잔소리를 그만하셨으면 좋겠어?”
“네. 당연하죠.”
“그럼 그렇게 부탁해보긴 했어?”
“네?”
잔소리를 듣기가 힘들다면 잔소리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최대한 ‘나의 책임’임을 인지하며. 미소양은 ‘열심히 하라’란 엄마의 말에 그저 건성으로 대답만 했을 뿐 엄마가 진정으로 원하는 방식 혹은 정말 열심히 하는 게 무엇인지, 방법적인 측면에 대해 질문을 하지 않았다는 걸 일깨워 주었고 그렇게, 엄마를 엄마이자 공부 조언자로 삼을 수 있는 노하우를 전수해주었다.
“엄마가 열심히 하라고 하시잖아?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방법을 여쭤봐. 엄마도 선생님이시니까 자세하게 알려주실 거야.”
부모와 자식 간이라 하여 갈등의 원인이 반드시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지 않을 것이다. 그게 누가 되었든 어느 한쪽에서 그 갈등의 고리를 풀기 시작하면 반드시 모든 엉킴은 풀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실 그건, 어른이 먼저 시작하는 게 훨씬 더 수월할지 모른다.
미소양과 엄마는 그 이후 ―구체적으로 어떤 대화들을 나누었는지는 모르지만― 다행히 부쩍 관계가 호전되었다고 했다. 일단 부드럽게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게 적중한 듯했다.
정작 난 내 주변의 얽히고설킨 수많은 갈등의 고리를 제대로 풀어내고 있지 못하지만 무언가 해결하고자 할 때, 미소양의 되찾은 미소를 떠올리며 반드시 ‘나의 책임’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좀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