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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숭깊은 라쌤 Oct 24. 2024

모든 꿈은 존중받아야 한다

<교사의 단어 수집> - 아이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명. 남이 아닌 자기 자신




누구나 성공을 원한다. 그런데 그 성공이 자꾸만 ‘부를 추구하는 것’으로 기울고 있는 요즘이다. 다들 알다시피 최근 이과 쏠림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으며 그 이과 쏠림에 있어 중심에 있는 직업군은 단연 ‘의사’다. 난 공공연하게 여기저기 칼럼이나 강연에서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 관해 부정적인 시선을 내비쳤다. 당신이 뭐라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냐고 말할 수 있겠으나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꼭 해줘야 할 말이라 생각한다. 물리적 성공보다 중요한 건 다름 아닌 꿈, 꿈에 대한 성취이니까. 10대들도 나름의 꿈을 지니고 산다. 그리고 우리 어른들은 이를 반드시 존중해줘야 한다.     


지금은 달라졌으나 생활기록부에 아이들의 진로 희망, 그러니까 정확하게 원하는 직업명을 적어야 하는 때가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학급 담임은 이를 하나하나 조사해야만 했고……. 그런데 종이 한 장 딱 내주고 ‘여러분이 원하는 직업명을 적으세요’라고 하는 건 너무 볼품이 없지 않나. 당연히 한 명 한 명 상담을 통해 꿈에 관한 설명을 듣고 나름의 조언도 해주고, 뭐 이런 식이었다.

아이들의 꿈은 실로…… 뻔하디뻔한 것들만 가득했다. 변호사, CEO, 군인, 교사 등. 나름 성적 좋은 친구들도 거대한 야망을 품고 있다거나 하지 않았고, 그래도 CEO 혹은 사업가를 꿈꾸는 이들은 특정 분야를 그려놓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도 했지만 그것마저도 너무 막연했다. 결국 이야기의 끝은 ‘대기업 입사’였고 그런데 CEO는 어쩌다 나오게 된 것이냐, 하고 물었을 땐 ‘회사원이라고 적긴 좀 그렇잖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한 명은 달랐다. 우리 반 1등이자 문과 전교 1등, 이믿음군과의 상담은 나의 교육관에 커다란 획을 긋는 것과도 같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믿음군은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꿈이 있었다. 그것은 천주교 사제, 그러니까 흔히 ‘신부님’이라고 불리는 그 직업. 신부님이 되기 위해선 가톨릭 대학교 신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보편적이므로 아마 대부분은 듣자마자 이렇게 되물었을 것이다.      


“그러기엔 네 성적이 좀 아깝지 않니?”     


적어도 나는 그랬다. 전교 1등이, 소위 말하는 ‘SKY 진학’이 가능한 학생이 다짜고짜 신학과라니. 내 머릿속에선 무분별한 계산부터 이뤄졌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건 내가 틀렸다.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 얼마나 깊게 품은 꿈인지, 이를 먼저 물었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신부님 되는 게 꿈이었고요, 무조건 신학교 갈 거예요.”     


여기서 나의 더 큰 잘못은 거기까지만 하고 받아들여야 했음에도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설득’을 시도했단 점이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있으니’와 같은 표현을 써 가며 그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던 내가 지금 이토록 부끄러운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이 친구는 신학교에서 사제가 되기 위한 수양의 과정에 있다. 아마 6학년쯤 되었을 것이다. 나중에서야 이믿음군을 설득하는 걸 포기하게 된 건 꿋꿋한 신념과 흐트러지지 않는 그의 마음가짐 덕분이었다. 공부하는 건 학생의 당연한 본분이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이 녀석은 학급 간부 역할까지 맡아 무엇보다 자기 역량을 학급 친구들과 나누는 것에 매우 열중했다. 학습 노트를 공유하는가 하면 심지어 시험시간엔 예상 문제를 만들어 배부하기도 했으며 걸핏하면 옥신각신하는 친구들 사이를 원만하게 조정하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특히 늘 힘든 일을 먼저 나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며 ‘아, 이게 사제의 참모습이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그러니, 설득은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내가 설득당한 셈이었달까.     


아이들이 어떤 모양의, 어떤 빛깔의 꿈을 꾸든 우선은 존중해주는 것이 맞다. 그게 틀렸다고, 그러니 다른 꿈을 꾸라고 말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하지만 어른들은 가끔 경솔하게 굴곤 한다. 자녀를 자기 소유물 정도로 여기며 꿈을 강요하고 그게 정답인 양 세뇌하는 부모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특히나 요즘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아이들은 왜 그런 꿈을 꾸게 되었는지 스스로 시작점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아이의 삶은 나의 삶이 아니니 스스로 ‘나’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고 꿈을 찾아 힘차게 달려 나갈 수 있도록 밀어주고 끌어주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 꿈이 부자든, CEO든, 사제든, 뭐든.     


물론 기왕이면 아이들의 꿈이 자기 욕망을 위하기보단 인류발전이나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것이면 좋긴 하겠다. 어른이 되어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들고 나타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그런 다음엔 우리 아이들이 그들의 아이들에게, 새로운 꿈을 물려주길 바란다. 그래서 이 세계가 영원토록 아름답게 지속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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