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단어수집> - 아이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함께
부. 한꺼번에 같이. 또는 서로 더불어.
왜 다들 싸워 이기려고만 하는 걸까. 그렇게 이기면, 정말 승리를 만끽하게 되는 걸까?
‘아동학대’라는 키워드가 뉴스 앵커의 입을 떠나지 않는 요즘이다. 잠든 아이를 깨우기 위해 그의 팔을 들어 올렸단 사실만으로 교사는 신고당하여 재판까지 가는 일도 있었다. 결국 5년 만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긴 하였으나 정말 삭막해진 교육 현장의 씁쓸함을 느낄 만한 커다란 사건이었다. 이뿐인가, 아이들끼리의 싸움이 번져 부모들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사건·사고도 굉장히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그저 부모 교육의 문제로만 치부할 순 없다. 교사들이라고 책임이 없겠는가. 교육은 삼위일체로 완성되는 것이다. 부모와 아이, 그리고 교사까지 모두가 한마음으로 함께 고난과 역경에 맞서 싸워나가는 것, 그것이 교육일 것이다.
방로봇군은 자폐증세를 가진 친구였다. 아예 심각한 자폐아라면 특수 학교를 보내거나 할 수 있었겠으나 그 정도가 참 애매해서 결과적으론 일반고인 우리 학교 학생이 되었다. 그와 대면했던 첫 수업 시간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난 초임 교사였고, 임팩트 있는 자기소개를 위해 다양한 유머와 목소리 변조를 준비했다. 그렇게 모든 소개를 마치자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기대했던 장면에 만족과 쾌감을 느끼려던 찰나, 교실 한구석에서 예상치 못한 한 마디가 들려왔다.
“우엑, 토 나와. 역겨워.”
순식간에 교실 안은 정적으로 채워졌고 초임 교사는 초임이라기엔 꽤 능숙하게 문제 상황을 해결해냈다. 어떻게? 못 들은 척 넘어가기! 장면을 얼른 새로운 장면으로 채워 정적을 지워버리는 방법이었다. 그날 오후, 당시 방로봇군의 담임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며 이 친구가 가진 문제 상황에 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자폐증세 중 하나가 공감 능력 부족이고, 이로 인한 대인 관계의 어려움이 일반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점도 알았다. 그리고 2년 뒤, 고3이 된 방로봇군의 이름이 우리 반 학급 명단에 실려 있었다.
학부모님과의 첫 상담. 어머니께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가지만 부탁하셨다. 고등학교 졸업. 무사히 졸업만 할 수 있다면 더는 바라는 게 없다는 어머님의 이야기는 부탁이라기보단 간절한 호소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그의 담임 역할을 통해 왜 그것이 그토록 절실한 문제였는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어려웠던 부분은 방로봇군이 스스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잦은 분노를 나타내곤 했다는 점이다. 일대일 상담을 통해 미래에 대한 비전 혹은 10대 이후 삶의 계획에 관한 키워드를 늘어놓으면 로봇군은 갑자기 자기 비하를 일삼으며 자해행위, 그러니까 자기 주먹으로 자기 얼굴을 가격하는 행동을 보였다. 심지어는 교실에서 친구들끼리 다투는 장면을 보고도 자기 때문인 것 같다며 머리를 책상에 찧는 행동도 했다. 안 그래도 고3 담임이라 신경 쓸 것이 많았는데 로봇군까지 챙기려니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한 친구에게 몰입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책임감이 더욱 커졌던 것 같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로봇군도, 대학에 가면 안 될까?
로봇군이 로봇군인 이유는 그가 로봇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평소 취미는 종이접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비행기 접기 수준에 머무는 정도가 아니었다. 머릿속에 특정 물체를 상상하면서 종이접기를 통해 그걸 만들어내는 아주 비상한 능력과 손재주를 지닌 로봇군. 아주 쉽게 접근해서, 로봇군이 로봇공학과나 기계공학과에 진학하면 훨씬 더 나은 20대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부모님을 설득, 아니 정확히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고민했다. 부모님께서도 대학 생활을 통해 행복을 찾아가는 로봇군의 미래를 그리며 덩달아 행복감을 느끼셨고, 꼭 대학에 보내자는 다짐을 했다. 친척이 사는 지역에 있는 대학과 학과 조사, 부모님께서 통학시켜줄 수 있는 거리 계산 등 수많은 고민이 이어졌으나 아뿔싸, 문제는 로봇군의 성적이었다. 고등학교처럼 통학하면서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없었다. 지방에 있는 학교로 진학해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 과연, 이게 가능한 부분일까?
가능, 했다. 방로봇군은 지방에 있는 모 대학의 로봇공학과에 진학했고 심지어 기숙사 생활을 했다. 로봇군도 스무 살, 성인이 되었기에 언제까지 부모님 그늘에서 머물 수는 없지 않은가. 비결이 뭐였냐고? 그건 그저 ‘용기’였다! 모두가 함께 용기를 내어 그의 이십 대를 응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행히 별문제 없이 대학 생활을 이어나갔고 지금은 졸업 후 이런저런 학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교육에 관한 수많은 격언이 존재하지만 내가 스스로 가슴속에 새긴 교육에 대한 첫 번째 구절은 ‘교육은 삼위일체’라는 것이다. 내 힘으로만 해결할 수 없고 무조건 내 책임일 수도 없다. 부모와 아이, 그리고 교사까지 한마음으로, 함께 싸워나가는 것, 그것이 진짜 교육의 모습임을 대한민국의 모든 이가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린 그 어떤 어려움도 능히 해결해낼 수 있을 것이다.
장담컨대 우린 모두, 같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