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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

<교사의 단어 수집> - 아이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by 웅숭깊은 라쌤


자세히


부. 사소한 부분까지 아주 구체적이고 분명히.




국어 수업의 매력은 누가 뭐래도 ‘토론’이다. 각자가 가진 생각들을 늘어놓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생각의 지도가 펼쳐진다. 특히나 단편 소설을 함께 읽은 뒤 나누는 독서토론 활동은 가히 최고의 수업이라 할 수 있다. 인물의 감정이나 행동에 관해 아이들의 감상은 제각각이다. 정답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렇고, 저렇게 생각하면 저렇다. 나만의 정답을 찾아가는 시간이랄까? 인간미가 철철 넘친다. 그렇게 아이들은 문학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서로를 이해하며, 좀 더 성숙하게 된다. 물론, 함께 하는 나도 마찬가지! 돌이켜보면 역시나, 수업의 주인공은 교사가 아니라 학생들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수업 준비를 하지 않겠다는 식의 말은 아니니…….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레스터 델 로이의 <헬렌 올로이>. 무려 1938년 작품이지만 작품의 소재는 휴머노이드, 그러니까 로봇인데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로봇이 등장한다. 자세한 내용은 설명할 수 없지만 어쨌든 수업에선 ‘로봇과 인간의 사랑은 가능한가?’, 라는 주제 의식으로 시작해 사랑의 참된 의미, 이상적인 반려자가 되기 위한 노력, 과 같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아, 생각만 해도 정말 즐거워진다! 또 하고 싶어! 다음 신입생들이랑 또 할 거야!


그나저나 말이다, 정말 인간은 로봇과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무조건 ‘불가능하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하다. 워낙 이 세계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고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펼쳐지는 혼돈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으니. 챗 GTP 등장 이후 이젠 중국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미국 내 기업들의 주식이 폭락하기까지! 이거, 까딱 잘못했다간 순식간에 도태될 수도 있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에 미리미리 대비해야만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나저나 로봇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인공지능과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은 확실히 알고 있다. 아무에게나 쉽게 말해주는 게 아니지만, 특별히 비법을 아주 몰래 공개해보자면 그건, ‘자세히’ 말하는 것이다.

자세히? 그래, 자세히! 그러니까 앞으로의 시대에선 아주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챗 GTP 등장 이후 주목받게 된 것 중 하나가 ‘질문법’이다.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잘 질문하면, 그만큼 원하는 것 아니 원하는 것 이상의 명쾌한 해답을 얻어낼 수 있다. 이미 눈치챈 사람들이 많았는지, 챗 GTP 등장 직후 서점가에서 ‘질문법’과 관련한 책들이 꽤 인기이기도 했다.


물론 시간은 좀 더딜 수 있지만 토론을 통해 생각들이 교환되면서 더욱 이상적인 나만의 정답이 완성되듯, 질문의 과정이 거칠고 고될수록 얻게 되는 답의 질이 높아진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내가 가진 질문을 잘 이해하고 더 넓은 영역에서 해답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의 환경을 구축해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들 뭐가 그리 급한지, 빨리 답을 내놓으라고 안달이다. 간혹 아이들 중에도 그런 경우가 있다. 과정 없이 결과만 얻으려는 잘못된 접근방식으로 인해 조급함이라는 잘못된 버릇이 생긴 듯하다. 대학생들이 리포트를 작성하면서 챗 GPT의 잘못된 답을 그래도 베껴 제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하니(모교 교수님께서 알려주신 사례이다), 기술 발전의 어두운 면이 자꾸 확장될까 걱정이다.


그래서,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토론이란 경험은 정말이지 중요하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또 그걸 상대에게 자세히 전달하는 능력을 키워내는 토론의 시간이야말로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의 중심에 있다. 물론 토론 수업을 할 시간에 수능 대비 모의고사 문제를 푸는 게 더 효율적이라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교육의 목표는 대학이 아니라, 참된 지성인을 키워내는 것이다. 조금 느리더라도 그렇게 나아가려 한다. 심지어 즐겁다니까? 또 하고 싶어! 다음 신입생들이랑 또 할 거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했던가. 역시나 시인의 말은 장소, 시대, 나이, 이유를 불문하고 언제나 옳다. ‘자세히’라는 키워드가 앞으로의 시대를 이끄는 핵심 역량이 될지도 모르니, 이제부터라도 우리 함께 자세히 말하고 자세히 들으며 자세히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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