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골 때리는 인문학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절대 불가능할 것이란 이론을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2009년 6월, 이를 입증하기 위한 기가 막힌 실험을 구상했죠. 이름하여 ‘시간 여행자를 위한 파티’. 호킹은 파티 초대장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초대장에는 파티의 장소와 시간이 적혀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초대장은 파티가 끝날 때까지 그 누구에게도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왜냐고요? 이 파티는 시간 여행자들을 위한 행사였으니깐요! 스티븐 호킹은 파티가 끝난 뒤에서야 초대장을 공개합니다. 초대장의 메시지가 충분히 먼 미래까지 존재할 수 있다면, 더불어 시간 여행이 가능한 미래가 도달했다면, 누군가는 초대장에 적힌 시공간의 좌표를 보고 파티에 참석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 에피소드를 처음 접했을 때 적잖은 오해를 했습니다. 스티븐 호킹 할아버지, 너무 꼰대 아닌가? 본인이 오라고 하면 다 가야 해? 바쁠 수도 있고, 귀찮을 수도 있지! 그런데 과학적 이론으로 판단해 보면 스티븐 호킹의 접근이 마냥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간 여행자가 이 파티에 참석할 확률이 아무리 적다고 해도, 무한한 시간 속에선 확률 역시도 무한대로 커질 수 있기 때문이죠. 생각해보세요. 대략 2500년 즈음에 시간 여행 기술이 개발되었다고 칩시다. 한 번 개발된 기술은 2600년에도, 2700년에도 변함없이 존재하고 있을 테고 무엇보다 전 세계에 기술이 전파되면 수십억 명의 시간 여행자 중 몇몇은 파티에 참석하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죠. 그런데도 단 한 명의 참석자가 없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미래에도 시간 여행 기술은 개발될 수 없을 거란 추측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시간 여행 기술 개발 전 이미 인류가 멸망했다’ 따위의 여러 가설이 세워질 수 있었는데, 호킹 박사의 설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바로 이 한마디였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어떤 자연법칙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막고 있다.”
알려지지 않았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알고 보면 자연은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존재한다는 ‘인과율의 법칙’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해지면 이러한 법칙에 모순이 생기죠. 앞서 언급했던 할아버지 역설과 같은 것들 말입니다. 원인이 결과에 영향을 끼쳐야 하는데 반대로 결과가 원인에 영향을 끼쳐선 안 되겠죠? 그래서 이러한 시간 여행 기술은 끝까지 신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도 듭니다.
조금 엉뚱한 이야기를 해 볼게요. 영국의 화학자 존 돌턴은 1803년, 원자 모형을 제시합니다.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이자 자연의 근본이 되는 단위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100년쯤 지난 뒤 조지프 존 톰슨이라는 학자가 원자 안에 ―마치 빵에 건포도가 박힌 것처럼― 전자가 존재하고 있음을 처음으로 발견합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11년에는 어니스트 러더퍼드가 또 새로운 원자 모형을 제시했고 이번엔 최초로 원자핵의 존재를 밝혀냈죠. 몇 년 뒤에는 닐스 보어라는 학자에 의해, 이후에도 여러 학자들에 의해 계속해서 이론은 수정되었습니다. 더불어 원자보다 더 작은 단위에 대한 연구도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요.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인류의 역사를 바꾼 수많은 사건들은 끊임없는 질문과 탐구 정신을 바탕으로 성립되었다는 말입니다. 훨씬 오래전 과거에도 천체를 관측하고 연구하기는 했습니다. 고대 이집트나 잉카 문명에서도 관측소가 있었고 천체의 운행을 바탕으로 시간을 측정하여 달력을 만들기도 했죠. 피라미드의 구조나 스톤헨지의 배열에서도 태양에 대한 연구 흔적을 찾아볼 수 있고 말이죠. 하지만 우주라는 공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아인슈타인이 1915년, 일반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이후부터죠. 인류가 가진 세계관이 우주 너머까지 확장된 그야말로 혁명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시간 여행은 불가능할 거란 전제를 깔고 나면 더는 어떠한 고민도 이어지지 못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고민이 마찬가지겠죠. 그러다 보면 인류의 발전도 딱 거기서 그치게 되지 않을까요? 단 1%의 가능성밖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우린 계속해서 그 확률을 높이기 위한 처절하고도 치열한 고민을 던져야만 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말이죠. 그리고 이게 비단 인류라는 큰 범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세상은 지금 무척이나 만족스럽습니까?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고 싶지 않으신가요? 그럼 가만히 있지 말고 계속해서 물음표를 던지세요!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무얼 해야 할까?’, ‘성공한 어른들은 어떤 노력의 과정을 거쳤을까?’와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언젠간 불가능하다 믿었던 비현실적인 장면들이 아무렇지 않게 당연한, 여러분의 시간과 공간으로 펼쳐질 수 있을 테니 말이죠.
그나저나 말입니다. 사람들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뭘까요? 제 생각엔 아마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하기 위하여! 후회로 남은 당시의 선택을 바꾸어 새로운 삶이 펼쳐질 수 있게 하겠다는 거죠. 만일 여러분이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시간 여행은 딱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고요? ‘지금, 바로 여기’라는 시간과 공간에 집중하면 그만이거든요!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가면 된다는 말이죠.
현실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다가올 내일을 훤히 밝히기 위해서겠죠? 그런데, 그 현실을 잘 살아내기 위해선 어제의 잘못과 실수, 후회와 같은 장면들이 양분이 되어야만 합니다. 늘 완벽한 순간만 가득했다면 거기서 만족하고, 자만하고, 나태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굳이 과거를 돌리려고 하기보단 현재를 통해 미래를 바꾸려고 하는 편이 더 나은 선택이 되리라고 믿어봅시다. 이것이 시간 여행 기술 개발이 우리에게 주는 참된 교훈이라니까요?
계속 시간 여행 어쩌고 저쩌고를 운운했지만, 사실 이 영화는 ‘가족 영화’라고 부르는 게 가장 적당할 듯합니다. 원래 10대면 다들 겪는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 다 기억나시죠? 아, 현재진행형이려나……. 하여간에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고 거기에 새로운 SF적 요소가 적절히 잘 가미되어 보는 내내 흥미를 자아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잘 아실 라이언 레이놀즈의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 대사 처리도 이 영화를 더욱 빛내는 요소이기도 했죠.
왜 주인공 애덤은 2050년에서 2022년으로 와야 했는지, 미래의 ‘나’와 과거의 ‘나’가 만났을 때 어떤 결과가 펼쳐질 것인지, 그래서 그들의 주어진 과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인지, 수많은 궁금증에 대한 답을 직접 찾아보세요!
참, ―영화를 보고 나면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만― 여러분! 우리네 어머니들은 겉으론 괜찮은 척하시지만, 절대 괜찮지 않으세요. 엄마한테 잘합시다!
Q. 시간 여행이 가능해진 미래, 과거로 가서 히틀러를 죽이겠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우린 그를 말려야 할까?
Q. 시간 여행처럼 인류가 꿈꾸는 새로운 미래 기술엔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그것들은 실현 가능한 기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