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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지구, 위기는 인간이 자초하는 중(1)

청소년을 위한 골 때리는 인문학

by 웅숭깊은 라쌤

택배기사, 2023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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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터전이 사막이 된다면


온 세상이 사막으로 변해버린 대한민국. 심각한 대기 오염으로 생필품은 물론 산소까지 택배 기사를 통해 전달받는 사회 시스템이 생겨버립니다. 지옥이 따로 없는 꼴이겠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택배기사>는 혜성 충돌로 급격한 사막화가 진행된 지구를 배경으로 합니다. 산소가 제때 배송되지 못해 위급한 상황이 초래되는 모습도 그려지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러한 사막화는 혜성 충돌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유럽위원회 공동연구센터가 발표한 세계사막화지도(World Atlas of Desertification)에 의하면 지구 육지 면적의 75%에서 이미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몽골 같은 국가에선 이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하죠. 언제부턴가 일기예보에서 ‘황사’라는 표현이 자주 언급되지 않았었나요? 우리나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사막화, 대체 원인은 무엇일까요? 물론 자연적 요인도 있겠으나 우린 당연히 인위적 요인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입니다. 환경오염, 삼림벌채, 과도한 경작 등으로 인해 스스로 사막화를 초래하고 있으니까요.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위기감이 조성되면서 유엔에서는 세계 사막화 방지를 위해 1994년, 프랑스 파리에서 ‘사막화 방지 협약(UNCCD)’을 체결하고 매년 6월 17일을 ’세계 사막화 방지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모르셨죠? 이젠 아셔야 해요! 우리의 환경오염에 대한 안전불감증을 고쳐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 당장 달력에 표시해두세요. 6월 17일은 세계 사막화 방지의 날! 그날 우리 다 함께 나무 심기라도 해보면 어떨까요? 근처 꽃시장이나 화훼 단지에 가서 화분 모종을 구매하는 것도 강력히 추천해 드립니다.



‘아포칼립스’를 아시나요?


상상은 자유 아니겠습니까! 먼 미래엔 순간이동으로 아침엔 이탈리아 나폴리 항구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파스타와 피자를 즐기고, 점심엔 오사카 유명 레스토랑에서 초밥을 꿀꺽, 마지막으로 저녁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맛있는 바비큐 요리를 즐기는 상상을 해 봅시다. 언젠간 가능한 일이겠죠? 쓸데없는 생각이라며 비난하셔도 할 수 없습니다. 상상은, 자유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행복하고 아름다운 미래만 상상할 수 있는 건 아니죠. 지구 곳곳이 불에 타 사라지고, 온통 황폐해진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물론, 가능합니다. 실제로 영화나 게임에선 이런 세계를 구현하여 우리에게 위기의식을 느끼게 해줄 때가 있죠. 세상의 종말, 멸망, 대재앙과 같은 의미를 담은 단어, ‘아포칼립스 Apocalypse’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아포칼립스는 그리스어 ‘아포칼립시스(apokalypsis)’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가려졌던 것이 드러난다’란 의미를 담고 있고, 아포칼립스 자체는 사실 ‘계시, 암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죠. 그런데 성경의 마지막 챕터인 요한묵시록에 종말에 관련된 내용이 다뤄지면서 이 단어의 의미가 새롭게 바뀐 채로 굳어졌습니다.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성경에 종말이라니, 대체 우리의 종말은 어떤 형태로 언제 실현될 것인가!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일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의 ‘상징’이란 점을 간과한 것이죠. 이 안에 담긴 내용은 실제 사건이나 사실을 기록한 게 아닙니다. 그래서 우린 성경을 해석할 때 이런 내용을 왜 썼는지, 누구에게 썼는지 따위의 것들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요한묵시록이 쓰인 시기의 로마 황제는 도미티아누스라는 인물이었습니다. 당시는 황제를 신격화하는 의식이 아주 짙게 퍼져있는 때여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극에 달한 상태였죠. 요한묵시록은 그들을 위해 쓰인 것입니다. 단순히 재앙을 통해 인류를 멸망시키겠다는 계시를 담은 게 아니라 박해받는 이들에게 끝까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라며 위로하며 희망과 용기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었죠.

물론 묵시록에 담긴 재앙에 대한 묘사들은 굉장히 잔인하고 적나라하여 위로나 희망, 용기보단 한 편의 공포물을 보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는 합니다. 특히 6장에 등장하는 4명의 말을 탄 기사들은 아주 무시무시한 대상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죠. 흰 말을 탄 기사는 적대자의 지배, 붉은 말을 탄 기사는 전쟁, 검은 말을 탄 기사는 굶주림, 푸른 말을 탄 기사는 전염병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상징적 의미는 해석의 방향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이해해주세요!)

요한묵시록 4기사.jpg 요한묵시록 4기사. (빅토르 바스네초프, 1887년)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일곱 천사가 차례로 무언가를 붓는데, 그때 사람들에게 고약하고 지독한 종기가 생겨나고, 모든 바다 생물이 죽어 나가고, 모든 물이 핏물로 변하며, 태양이 끓어 사람들이 불에 타 죽고, 세상이 어둠으로 변해 사람들이 스스로 혀를 깨물어 죽는가 하면, 천둥과 지진으로 세상이 파괴되고, 엄청난 크기의 우박이 하늘에서 쏟아지기도 합니다. 정리하고 나니 조금 무섭긴 하네요.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이러한 재앙은 하느님을 믿지 않고 신앙인들을 박해하는 ‘악인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뜬금없이 이 세상 모든 이들을 제거하겠다는 건 절대 아니라는 것! 그래서 늘 착한 마음씨를 품고 사는 우리에겐 위로와 희망, 용기의 의미가 될 수 있는 것이고요.

물론 가장 좋은 해석은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나의 삶이 선보다 악을 더 추구하고 있다면 요한묵시록의 재앙이 다름 아닌 나에게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니 언제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바르게 살아가야 한다, 뭐 이런 경계의 의미로 말이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당신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그리스도께 알리셨고, 그리스도께서 당신 천사를 보내시어 당신 종 요한에게 알려 주신 계시입니다.”


요한묵시록 1장 1절, 가장 첫 번째 구절입니다.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일들’이란 표현이 있죠? 지금 지구는 아포칼립스가 도래하기 전 풍전등화의 상황입니다. 머지않아 진짜 아포칼립스가 올 수도 있다고요! 전 지구가 사막화의 위험에 빠져 있고, 인류는 그러한 위기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꼭 성경 속 기사들이 아니더라도, 어쩌면 우리 스스로 재앙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건 아닐지 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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